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느끼는 건 영화나 연극을 볼 때입니다. 분명 예전에 본 작품인데도, 볼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몰입하거든요. (나쁜 머리가 준 선물! ^^) 지난 주말, MBC 탤런트극단 창단 공연 '쥐덫'을 봤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소설도 읽었고, 연극으로도 워낙 유명하니 예전에 본 것 같은데, 이번에도 공연 내내 흥미진진하게 몰입해서 봤어요. 심지어 도중에 몇번이나 깜짝깜짝 놀라면서... '헐! 이런 반전이었어?'
이래서 고전과 걸작이 좋지요. 고전은, 한 번 본 작품을 또 봐도, 또 재미있어요. 스무살에 봤을 때, 받은 느낌과 나이 들어 봤을 때 드는 감정이 또 달라요. 텍스트가 풍부하고 다양한 인물 군상이 나오기에 그때마다 감정이입하는 인물이 다르거든요.
폭설에 고립된 산중의 게스트하우스, 그곳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살인 사건. 산장을 운영하는 부부와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하룻밤을 보내며 생기는 일. 밀실 트릭의 고전, 쥐덫.
이번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연극을 올린 배우들이에요. 이 공연은 MBC 공채 탤런트들이 모여 만든 탤런트 극단 창단 작품입니다. 배우로 사는 건 힘든 일입니다. 배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찾아줄 때, 비로소 현장에 소환되어 자신의 연기를 펼쳐보일 수 있지요. 배우는 늘 누군가의 부름을 기다리며 사는 직업이에요.
연출도 비슷합니다. 회사에서 기회를 줘야 연출을 하니까... 그런 점에서 가장 복받은 직업이 작가라고 생각해요. 일단 혼자서 글을 쓰면 되거든요. 블로그의 경우, 단 한 명이 읽어도 이미 완결성을 가진 콘텐츠가 되고요. 드라마 극본의 경우, 방송으로 제작되지 않으면 미완성인데요, 블로그는 달라요. 발행을 누르는 순간, 인터넷의 바다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과거에 공중파 방송사가 드라마 시장에서 독과점을 행사할 때, 탤런트 공채를 했는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대형 기획사나 연예제작사가 생겨나고 신인 발굴의 역할이 방송사에서 기획사로 옮겨갔어요. 시장 환경이 변했어요. 드라마 제작 요소 시장이 다변화한 겁니다. 연출도, 배우도, 작가도, 이제 다 기획사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이렇게 변화한 환경에서, 마냥 기회를 기다리며 사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요. 연기에 목말라 있는 공채 탤런트들이 모여, 직접 극단을 만들고, 공연을 올립니다. 어쩌면 이것이 갇혀있는 사람이 밀실 트릭을 깨는 최고의 방법이지요.
누군가 나를 찾을 때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위축되기 쉬워요. 세상의 눈치만 보거든요. '우리끼리 모여 무엇이든 만들어보자. 시청자를 만나러 낯선 무대이지만 연극으로 직접 찾아가보자.'
멋있어요. 이게 제가 꿈꾸는 삶의 자세입니다.
'세상이 내게 일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 무엇이든 시도해본다.'
TV에서 보던 친숙한 얼굴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양희경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값진 기회였습니다. 연기자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신구의 조화라고 할까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이라는 추리소설의 고전을, 탤런트 극단이라는 새로운 시도 속에 녹인 것이 참 좋네요.
기회가 되시면, 주말에 대학로를 찾아도 좋을 것 같아요.
공연 정보는 아래 링크로~
http://mticket.interpark.com/Goods/GoodsInfo/info?GoodsCode=18000485&app_tapbar_state=f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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