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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본령을 고민할 시간

by 김민식pd 2017. 9. 26.

PD연합회 신임 회장 취임식에 부치는 회원의 인사말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어요. 모든 글이 다 어렵지만, 그중에서 특히 동료 피디들에게 보이는 글이 어려워요. 매일 작가와 대본을 놓고 씨름하는 PD들이니 얼마나 글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고 뛰어날까요. 쫄립니다. 아, 어떻게 써야하나. 

힘들 땐 고수의 충고를 따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강원국 선생님이 해주신 충고가 있어요.

"다른 사람은 내 글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고, 글도 술술 나온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봤어요. '그래, 피디 연합회장 행사장에서 나눠주는 팜플렛을 누가 꼼꼼이 읽겠어? 나만해도 결혼식 가서 주례사는 안 듣고 누가 왔는지만 보잖아?' 그렇게 마음먹고 자판을 잡지만... 여전히 어렵네요.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를 의식하는 행위와 애써 의식하지 않는 행위 사이의 끝없는 줄다리기 같아요. 고민 끝에 써본 글입니다.


본령을 고민할 시간

 

화제의 카카오뱅크 앱을 깔았습니다. 높은 예적금 금리에 저렴한 수수료, 심지어 최적의 편의성까지 갖추었네요. ‘, 앞으로 은행들 힘들어지겠구나.’ 싶습니다. 은행이 힘들어지면 직원들도 힘들어지지요. 경비 절감을 위해 지점이나 창구 수를 줄여야할 테니까요. 이제 금융의 본령을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돈을 맡기고 빌리는 곳이 은행인데, 굳이 물리적 장소로만 존재해야 할까요?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소비자를 생각하면, 사용이 간편한 앱을 개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시장 환경의 변화와 대응방안을 직원 각자가 생각해 내기란 힘듭니다. 개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쁘거든요. 판의 흐름을 읽고 대처하는 건 조직이 나서야 합니다.

 

바쁘기로는 일선 피디들도 둘째가라면 서럽지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노동량의 투입은 줄어듭니다. 인건비를 줄여서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산업이 발전하거든요. 방송 산업은 반대로 기술이 발달할수록 일이 더 많아집니다. 디지털 편집, 자막, CG, 드론 촬영 등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PD들의 노동량은 늘어납니다. 개개인이 죽어라 일을 하는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시청률은 더 떨어지고 있어요. 드라마나 예능,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예전만 못함을 느낍니다. 인터넷 전문 은행의 약진을 보면서 은행 직원 걱정할 때가 아니네요.

 

피디의 본령은 무엇일까요? PD는 프로듀서 앤 디렉터라고 합니다. Produce, 무언가 만들고, Direct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지요. 피디 개개인이 방송을 만들고, 프로그램 제작 방향을 지시한다면, 피디 연합회의 본령은 무엇일까요? 저는 PD 연합회가 바쁜 회원을 대신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방안을 만들고, 방송 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조직이 되어주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몇 년, 피디의 자율성이 극도로 위축된 방송 환경 속에서 PD 연합회의 틀 안에서 함께 싸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오래도록 PD로 즐겁게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ps.

변화의 시대, 본령을 고민해야 합니다. 조직은 조직의 본령을 고민하고,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고민해야 하지요.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저는 '이야기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회사가 내게 드라마를 맡기든 맡기지 않든, 저는 이야기꾼으로 살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를 매일 들어주시는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에 지난 몇 년,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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