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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왕따, 책벌레가 되다

by 김민식pd 2017. 9. 6.

저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 건, 어려서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맞벌이 교사인 부모님은 전근이 잦았어요. 어린 시절에 학교나 동네 친구가 없었지요. 집에서 혼자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리던 제가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학교에서 매일 책을 빌려오셨어요. 국어 선생님인 어머니는 시골 학교 도서실 사서일도 함께 하셨거든요. 그 덕에 어려서 책이랑 친해졌어요. 유년 시절에 가장 행복한 기억은, 어머니의 일직 근무를 따라가 텅 빈 학교 도서실에 앉아 마음껏 책을 읽은 것입니다.

평생 책만 읽으며 살아도 원이 없을 것 같아서 대학은 국문과나 영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셨지요. 책 읽고 글 쓰는 직업은 굶어죽기 딱 좋다며 의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의사가 될 적성도 아니고, 성적도 아닌데 말이지요. 고교 시절, 이과 공부에 흥미가 없어 성적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울산 공고 훈육주임이던 아버지는 체벌 전문가에요.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이 성적 갖고 의대 가겠냐며 매를 들었어요. (, 누가 의대 가고 싶다고 했냐고요.) 집에서 늘 맞고 사니까, 바깥에서 늘 울상이었어요. 아이들이 못생겼다고 자꾸 놀리더군요. 반에서 가장 못 생긴 아이 뽑는 투표에서 1등 먹은 적도 있어요. 외모를 비하하는 별명을 지어 놀리기에 화를 냈더니 속 좁은 놈이라고 따돌리더군요. 결국 집에서는 구박대기, 학교에서는 왕따로 살았습니다. 그때 도서관은 저에게 구원의 공간이었어요. 때리는 부모님도, 놀리는 아이들도 없는 곳. 중세에는 죄인들이 수도원으로 피신하며 “Sanctuary!”라고 외쳤다는데요, 저에게는 도서관이야말로 육신의 피난처이자 영혼의 안식처였어요.

우울한 나날은 공대 입학 후에도 이어집니다. 산업공학과(혹은 공업경영학과)라고 이과에서 그나마 문과에 가장 가까운 학과에 지원했는데, 내신 성적이 낮아 (10등급에 5등급, 15등급 기준 7등급) 1지망 지원에서 똑 떨어집니다. 2지망 합격한 곳이 자원공학과였어요. 무엇을 배우는 과인지는 수강신청 할 때 알았어요. 과목을 보니 석탄채굴학, 석유시추공학, 암석역학. 원래 이름은 광산학과였어요. 내신이 낮아 재수도 할 수 없어 그냥 학교를 다녔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CD학점을 받으면 교수님을 찾아가 F로 바꿔달라고 부탁한다지요. 재수강해서 좋은 학점으로 갈아타려는 생각에. 저는 반대로 F가 나오면 교수님을 찾아가 D로 바꿔달라고 했어요. 재수강 한다고 성적이 좋아질 가망은 없으니 그냥 졸업만 시켜달라고요. 재미없는 전공 수업을 재수강할 시간에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었어요. 기말고사를 망친 아이가 실의에 빠져있으면 친구들이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민식이는 밑에 깔았잖아.”

그러면 시험을 망친 아이가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그게 지금 위로라고 하는 소리냐!”

전공에는 미련이 없었습니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강권으로 공대를 오긴 했지만,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려고요. 졸업할 때 보니 전공 관련 학점은 시들시들, 2.0 근처를 밑돌더군요. 전공과 학점을 포기하고도 취업 할 수 있었던 건 책 덕분입니다. 책은 제게 구원자이자 미래를 밝혀준 예언자였습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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