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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꿈은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by 김민식pd 2017. 8. 18.

저는 오랜 세월, 영화광으로 살아왔습니다. 외대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엔 충무로 진출을 꿈꾸기도 했어요.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을 한 게 경력의 전부라, 영화판에서 감독 데뷔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죠.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바닥에서부터 기본기를 닦아 언젠가는 B급 코미디 영화로 데뷔하고 싶었어요. 그때 저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분을 만났지요. 바로 배유정 선생님입니다. 동시통역사로 일하면서 통역대학원에서 강의도 하셨고요. 당시엔 ‘MBC FM 배유정의 영화음악의 진행자기도 하셨어요. 선생님께 고민을 상담했는데요.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하셨던 선생님은 이런 말로 저를 말리셨어요.

민식 씨, 내가 영화계 연출부 생활을 옆에서 봤는데, 거긴 너무 힘들어. 가지 마. 일단 1년에 200만원도 제대로 벌기 힘든 곳이야.”

선생님, 제가 통역대학원을 졸업하면 아르바이트로 짬짬이 통역이나 번역을 할 수 있으니까요. 생활비는 통역으로 벌고, 영화 연출부는 취미 삼아 해도 되지 않을까요?”

민식 씨, 영화란 말이야,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될까 말까 한 일이야. 알바 뛰면서 짬짬이 일한다는 건 말도 안 돼. 이전에 단편 영화라도 한 편 찍어본 적 있어?”

아니요.”

갔다가 나중에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떡하려고? 충무로는 기회가 자주 오는 곳도 아니고, 한번 실패하면 두 번 다시 기회를 얻기도 힘들어. 오히려 제도권에서 일 해보는 게 어때요? 고정 급여를 받으면서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는 게 나을 거야. 내가 가는 MBC에서 요즘 공채 PD 모집하는 것 같던데, 거기 한번 지원해 봐요.”

그렇게 저는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TV PD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충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늘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 덕분에 MBC라고 하는 꿈의 직장을 만났으니까요. 그렇다고 영화 팬으로 사는 걸 그만둔 건 아닙니다. 부천영화제가 열리면, 가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고,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면 감상기를 올립니다. 논스톱 할 때는 영화 패러디도 많이 했어요.

제가 은근 연기 욕심이 있는데요. 대본 리딩 할 때, 자리에 못 온 배우 대사는 제가 막 읽고 그럽니다. 뉴 논스톱 연출 시절에는 까메오 출연도 자주 했어요. 나중엔 드라마에서도 나왔어요. 지나가는 단역으로. 내가 연출인데, 내가 출연하겠다는 걸 누가 말리겠어요. ^^

그랬던 제가 감히 영화에 나오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영화 공범자들에 출연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어요. 부천영화제 초청받았을 때는 무대 올라가 관객과의 대화도 하고, 언론시사회에 나가 인터뷰도 하고 그럽니다. 얼마 전에는 SBS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 <시네타운 나인틴>에 영화 출연자의 한 사람으로 초대받기도 했어요. (8월 20일 오전 11SBS 라디오에서 방송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팟캐스트 <시네타운 나인틴>으로도 업로드 되고요. )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는데, 엉뚱하게 영화 출연이라니, 꿈은 참 이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군요.

 

<공범자들> 상영 때마다 출연진 인사를 드리는데요, 느낌이 참 묘합니다. 출연이란 직함은 많이 어색합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감독으로 인사드리는 편이 저는 더 좋아요. 어서 김장겸 사장님이 나가시고 MBC가 정상화되면 오랜 유배 생활을 접고 드라마 국으로 복귀해서 다시 연출로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또 간청 드립니다. 주말 동안, 영화 <공범자들>을 전국 극장에서 만나주십시오.

영화 주연급 출연진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어 화제가 되었던 그 영화!

주연들이 나오지 않아 무명의 조연이 시사회 인사 다니는 바로 그 영화!

<공범자들>! 전국 극장에서 절찬리 상영중!

▲ '공범자들' 김민식 MBC PD ⓒ 이정민 @ 오마이스타

 

영화에서 저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요? 극장에서 확인해주시어요.

큰 화면으로 제 모습을 보시면 삶의 자신감을 얻으실 겁니다.

'저렇게 생긴 사람도 잘 사는데, 나는 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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