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어느 고등학생의 영화 감상문

by 김민식pd 2017. 9. 3.

며칠전 인사위에 올라갔습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로 인사위 과정을 중계했습니다. 물론 임원들은 저의 소명이 시작하자마자 "정회!"를 외치고 도망갔지만요. 그날 춘천 사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영화 감상문을 임원들에게 읽어드리려 했습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글입니다.  

 

제목 < 얼굴을 감싸고 >

 

1. 눈물

 

영화는 물론 엔딩 크레딧까지 막을 내렸지만, 나는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직원 두 명이 들어올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얼굴을 감싸고 영화관 시트에 등을 기대어 계속 울었다. 지금껏 본 영화 중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영화였다. 콧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영화가 끝난 후에는 화장실까지 얼굴을 들고 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눈물, 콧물을 닦았다. 흘러내린 양만큼 오래 씻어내야 했다. 감정을 추스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얼굴을 들어 거울을 봤는데 징그러울 만큼 눈이 붓고 충혈되어 있었다. 내가 영화를 보며 눈과 코를 통해 쏟아낸 것은 어쩌면 일지도 몰랐다. 영화 속 언론인들의 역경이 스크린을 뚫고 화살처럼 내게 꽂혔기에 그럴 만도 했다. 그 피 속 성분은 단순한 슬픔 따위가 아니었다. 슬픔, 분노, 절망, 희망, 감동, 동정, 의지 등 수많은 감정이 다닥다닥 엮여 있었다. 그래서 뺨을 타고 흐르는 피가 용암처럼 뜨거웠던 것인지도 몰랐다.

 

2. 또라이

 

영화 속 김민식 PD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페이스북 라이브 첫 방송을 켰다. 방송이 끝난 후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걸 당신만 하고 이후에 아무도 안 하면 당신은 그냥 또라이야. 또라이에서 끝나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이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또라이라는 표현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또라이가 된 기분을 잘 알고 있었다. 학생회 활동 경험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가끔 또라이였다. 어쩌면 꽤 자주.

 

김민식 PD와의 인터뷰 후 다음 장면은 MBC 로비에서 수많은 노조 조합원들이 각자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고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장면이다.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결과적으로 김민식 PD는 또라이가 아니었다. 나 또한 가끔은 또라이가 아니었다. 주변에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꽤 자주.

 

3. 잊고 있던 것

 

세월호참사 관련 장면이 나오자 가슴 깊은 곳을 찔리는 듯했다. 감정이 많이 북받쳤다. 수많은 언론의 오보, 그것이 아니었다면 단 한명이라도 더 살아남지 않았을까. 침몰하는 배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부모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한 언론인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의 생명에는 좌우가 없다. 나도 모르게 잊어가는 세월호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다시금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언론의 역할은 아닐까.

 

4.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

 

뉴스타파를 후원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영화를 본 후 내게 생긴 의무이다. 우선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하자. 반면 고대영(KBS사장)과 김장겸(MBC사장)을 보라. 정권에 빌붙어 방송을 망쳐온 사람들이 아직도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나는 현대 정치판에서 지켜봐 왔다.

 

영화 나레이션 중 “‘언론이 질문을 못 하면 나라가 망해요’. 결국, 나라는 망했다.”라는 부분이 있다. 나는 떠올렸다. 학교도 마찬가지라고.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마찬가지이다. 학생과 학교, 노동자와 고용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등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말 못 하는 세상, 즉 소통 단절의 강자 독식 구조 체계에서는 어떤 것이든 정상을 지속할 수 없다.

 

5. 다짐

 

그래. 이게 세상이고 현실이다. 정확히 인식하고 직시해야 한다. 암울한 현실 속, 나는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행동해야 한다. MBC 해직 언론인 이용마 기자는 암에 걸려 시골로 내려가 투병 중이다. 그는 말했다. “그동안의 투쟁으로 인해 10년의 청춘과 인생은 다 날아갔지만, 적어도 그 기간에 우린 침묵하지 않았다. 나 또한 절대 침묵할 수 없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는 각종 징계를 받은 수많은 언론인의 이름이 연도별로 나뉘어 나열된다. 그들은 언론인이기 전에 누군가의 가족일 것이다. 또한, 그전에 사람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인데도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또 울음이 터졌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영화가 나왔다는 것. 어쨌거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6. 배움

 

영화를 통해 참 많이 배웠다. 일을 추진할 때마다 고민이었던 홍보 전략이나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내게는 에어컨 바람처럼 날카롭게, 또는 시원하게 다가왔다.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제대로 저항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좀 더 조직적, 체계적, 구체적으로. 앞으로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아니, 그들을 넘을 수 있도록.

 

7. 영화 공범자들

 

얼마 전에 본 영화 택시운전사가 떠올랐다. 내게 택시운전사는 의미 있는 영화, 봐야 할 영화였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예상했던 무언가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예상했던 딱 거기까지였다. 반면 이번 공범자들은 내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줄곧 영화에 몰입하여 함께 울고 웃고 분노했으며 때론 좌절했다. 내가 갈망하던 딱 그런 영화였다. 영화는 재미와 스릴도 담고 있었다. 집요한 취재 본능으로 그야말로 공범자들과 스릴 넘치는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그들의 추악한 실체를 마주할 때면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영화 중후반쯤이었나. ‘이 영화는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영화의 내용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수십 번이고 간에 반드시 다시 보리라 다짐했다. 나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며.

(이 자리를 빌어, 글을 쓴 학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싸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9월 4일 0시를 기해 시작하는 MBC 총파업,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