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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브렉시트로 다시 보는 '21세기 자본'

by 김민식pd 2016. 6. 27.

2016-134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 장경덕 외 옮김 /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지난 달에 8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은 후, 리뷰는 쓰지 못하고 있었어요. 워낙 책의 양이 방대하고, 또 건성건성 읽기도 했기에 감히 뭐라 쓸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러다 며칠 전에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상황을 보면서, 혼자 또 고민에 빠졌어요. '5,60대 과거 세대가 2,30대 미래 세대의 발목을 붙잡고 뒷통수를 치는 이런 일은 도대체 왜 자꾸 일어날까?' 그러다 문득 '21세기 자본'에서 읽은 대목이 떠올랐어요.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는 이례적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영광의 30년에 대해 짙은 향수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악령이 저주를 내려 1970년대 후반에 성장률이 그렇게 낮아지기 시작했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최근 30년의 '비참한 시대'가 마치 악몽을 꾸었던 것처럼 곧 끝나고 모든 게 다시 한번 지난날로 돌아가리라고 믿는다.
사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전후 30년은 예외적인 시기였는데, 이는 한마디로 유럽이 1914~1945년 시기 미국에 크게 뒤졌지만 영광의 30년 기간에 빠르게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따라잡기가 끝나자 유럽과 미국은 둘 다 세계적인 기술 선도국이 되었고, 선도국 경제의 속성상 두 곳 모두 비교적 느린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위의 책 121쪽)

모든 선진국에서 앓고 있는 향수병인가봐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전후 30년이 예외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지요. 전후 30년의 경제 성장이 비정상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다들 그 시기를 그리워하고, 그 향수가 2007년과 2012년에서 '리틀 박정희'와 '박정희의 딸'을 대통령으로 이끈 겁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할 것은, 전후 30년의 경제 성장은 다시 오기 힘들다는 겁니다. 저성장 시대를 받아들이고, 이제 새로운 뉴노멀에 적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의 망령이 미래의 희망을 죽이는 결과가 이어질 테니까요.

 

브렉시트를 부른 또 하나의 축은 이민자에 대한 반발이지요. 하지만 심화되는 경제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이민을 장려해야한다고 피케티는 말합니다.

'이민은 더 평화로운 방식으로 글로벌 부의 불평등에  대한 규제와 재분배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인다. 온갖 어려움이 따르는 자본이동보다는, 때로 노동력을 임금이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더 간단하다. 이 점에서 미국은 글로벌 재분배에 크게 기여했다. 독립전쟁 당시 겨우 300만명이었던 인구가 오늘날 3억 명 이상으로 성장한 것은 주로 지속적인 이민 행렬 덕분이다. (중략) 또한 미국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노동소득의 불평등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참을 만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소득분배에서 하위 50퍼센트에 있는 미국인 중 꽤 많은 이가 자신들은 덜 부유한 국가에서 태어났으며 이제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이유로 이러한 불평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위의 책 647쪽)

얼마 전에 올린 영화 '곡성'의 리뷰에서 썼던 글입니다.

'쉬운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저 사람만 없어지면 마을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야!"

이런 주장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그런 주장이 나치 학살을 낳았고, 미국에선 트럼프를 만들었고,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을 만들었으니까요.'

2016/05/31 - [공짜 PD 스쿨] - 영화 '곡성' : 쉬운 답을 경계하라

 

이민자 문제는 유럽만의 숙제가 아니에요. 2018년 인구 절벽을 눈 앞에 둔 한국 경제, 그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브렉시트 결정이 우리에게, 그리고 세계 각국에 반면교사가 되길 빕니다. 외지인에 대한 공포는 비이성적인 결정으로 자신을 내몰 뿐이니까요.

 

'사회 불평등은 왜 심화되는 것일까?'

지난 30년간의 잃어버린 세월 탓도 아니고, 이민자 탓도 아니에요. 피케티가 도출한 결론.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 : r > g

민간자본의 수익률 r이 장기간에 걸쳐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 g를 크게 웃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위의 책 689쪽)


일을 하여 돈을 버는 노동 소득이, 돈이 돈을 버는 자본 소득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과거의 부자는 미래에 더 큰 부자가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은 벗어나기 힘들다는 거지요. 이러한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인 자본세의 도입이 필수라고 피케티는 말합니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운다', 저 표현이 참 서늘하게 와닿네요. 

 

'가난한 사람은 왜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가?'

'21세기 자본'은 3세기에 걸친 방대한 통계 자료를 통해 이 문제를 세계적이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데요, 내일은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통해 같은 문제를 우리의 미시적 관점에서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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