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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가난의 이유

by 김민식pd 2016. 6. 28.

2016-135 사당동 더하기 25 (조은 / 또하나의문화)

 

가난한 사람은 왜 가난한가?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만의 특징이 있는 걸까? 저자는 1986년 사당동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문화, 가난에 대한 사회적 연구를 시작했어요. 사당동에서 쫓겨서 상계동 임대아파트로, 다시 서울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가족을 25년간 관찰하여 3대에 걸친 연구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저자가 내린 결론. 

 

'오스카 루이스가 1961년 '산체스네 아이들'에서 '빈곤 문화'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뒤 빈곤 문화는 미국 내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정치적 학문적 논쟁을 촉발했다. 그가 찾아낸 빈곤 문화의 속성은 50가지도 넘었다. 잦은 폭력, 역사의식의 결여,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 낮은 동기 부여, 약한 직업윤리, 약물, 알코올 중독, 혼전 동거, 성 문란, 도박 등등 (중략)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문화를 가져오는 구조에 주목하게 되었다.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며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 '가난의 구조적 가난'이 있을 뿐이다.'

(위의 책 304쪽)

알코올 중독이나 낮은 동기 부여가 가난을 부른다기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알코올에 쉽게 빠지고, 사회에서 성취감을 맛 볼 기회가 없어 동기 부여가 낮은 겁니다. 가난의 가장 큰 원인은,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이지요.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고 믿지만, 그건 고도 성장기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사라져버렸어요. 어제 살펴본 '21세기 자본'에서 말하듯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크게 앞지르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탓에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기만 합니다.

 

'혼전에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이른바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이라는 '빈곤 문화'는 이들 계층에서 일상적이다. 즉각적인 욕망을 지연할 동기 부여에 약하다고 빈곤 문화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당연히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가출, 성적 문란은 일상화되고 알코올 중독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나타난 빈곤 문화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위의 책 311쪽)

 

아빠가 술 먹고 들어와서 잔소리하는 엄마를 때리는 걸 본 아이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난 크면 술 안 마실거야.' '난 남편한테 잔소리 안 할거야.' '난 애들 앞에서 부부 싸움 안 할거야.' 불행한 부모 곁을 떠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면 행복해질거라고 믿지요. 그래서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를 낳고 일찍 가정을 꾸립니다. 다시 삶이 힘들어지면 가정 내 불행은 반복되지요. 그제서야 부모가 그렇게 힘들게 산 이유는, 그들 자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 탓이 아니라, 환경의 탓이 큽니다. 

 

신영복 선생의 '담론'에 나오는 대목.

'재소자는 출소 전날 남아 있는 동료 재소자들과 악수하며 만기 인사를 합니다. 나는 20년 동안 수많은 만기자들을 떠나보냈습니다. 만기 인사를 나누고 나면 쟤는 1년 안에 들어온다, 쟤는 앞으로 두 번은 더 들어온다는 예측을 합니다. 오래 수형 생활을 한 노인들의 예측은 거의 정확합니다. 나는 매번 틀렸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노인들 말처럼 1년 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이 맞고 내가 틀리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나는 사람만 보기 때문입니다. 징역살이 만큼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는 곳도 없습니다. 경우도 바르고 부지런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당연히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인들은 사람만 보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봅니다. 사람을 그 처지와 떼어서 어떤 순수한 개인으로 보는 법이 없습니다.'

('담론' 신영복 / 돌베개 중에서) 

 

남편의 폭력이나 아이의 일탈 등 가정 문제로 법륜 스님께 상담을 하면, 스님은 '먼저 부모님께 참회하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지금 나의 문제는 그냥 나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러온 결과라고요. 

가난하게 살다보면, 부모가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자신도 부모님이 물려준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듯, 부모님도 참 힘들었을거에요. 부모의 가난을 용서할 수 있어야, 나의 처지도 용서할 수 있고, 그러면 지금 내 가족에 대한 원망이나 불만도 줄어듭니다.

 

일전에 소개한 '정의를 부탁해'에서 언급된 걸 보고 책을 찾아읽었습니다. 정의는 공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입장에 대해 좀더 공감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공감에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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