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아끼는 3곳의 극장에서 각각 본 영화가,
씨너스 이수에서 본 '인 어 베러 월드'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본 '그을린 사랑'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본 '사라의 열쇠'이다.


세 편 다, 고백하자면 영화를 보며 울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사실 나는 웃음도 헤프지만 눈물도 많은 편이다. 대본 리딩하다가도 슬픈 장면에서 울고, 촬영하다 숨죽여 웃다가 진짜 숨넘어갈뻔 한 적도 있다. 청승일까, 주책일까, 난 왜 이리 감정 과잉일까? 

영화들이 가슴아픈 이유는 세 편 다 제노사이드, 인종 학살을 다루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나치 유럽에서 일어난 인류의 최대 비극이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나를 계속 괴롭힌 의문이 있다. '왜 저 학살자들에게는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이 전해지지 않는걸까?' 

요즘 길을 가면서 거리에 걸린 현수막을 보며 느끼는 저릿한 아픔이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다. 부모님은 맞벌이하시느라 바빴는데, 그러다보니 어머니는 내 도시락을 제대로 싸줄 시간이 없었다. 내 도시락 반찬은 늘 친구들의 것에 비해 초라했고, 그래서 난 점심 시간이 싫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알고 옆자리 친구의 엄마가 내 몫으로 반찬을 더 챙겨보내주셨는데, 웬지 그것도 비참해서 싫었다. 

요즘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서울이 난리다. 모르겠다. 공짜로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자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그들은 말한다. '부잣집 아이에게 비싼 세금들여 밥 사먹일 이유가 뭐 있느냐, 가난한 아이만 골라서 급식하자.' 난 어린 시절 내가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서울 시장님 덕에 확실하게 알게 될 것 같다. 우리집 소득 수준이 상위 50%인지, 하위 50%인지.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밥을 얻어 먹는 아이와 사 먹는 아이로 반반 나누자는 것, 이것이 아이들에게 할 짓인가? '그건 없는 이들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우대야.' 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난 당신이 좀 부러울 것 같다. 그건 당신이 한번도 없는 자의 서러움을 느끼지않고 살았다는 뜻이니까.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은 만듦새는 참 훌륭한데 흥행이 좀 약하다. 아마 보고 나오면 우울할 것 같다는 생각에, '굳이 돈내고 그렇게 괴로운 감정적 소모를 할 필요가 있나?' 하고 느끼나 보다. 그러나 이 세 편의 영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셋 다 보고 나오면서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하게 만든다. 

비극을 다룬 영화가 희망으로 끝날 수 있는 이유는? 세 영화의 엔딩은 다 주인공의 아이를 비추며 끝이 나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다음 세대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이 희망이다.

이번의 주민 투표 소동... 희극같기도 하고 비극같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내가 바라는 엔딩은 하나다. 사람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엔딩이었으면 좋겠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도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하물며 주민투표 쯤이야!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