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미친듯이 영화를 몰아서 보는 중이다. 작년에 드라마 2편 연속으로 연출하느라 극장에 못 간 한풀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론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쿵후 팬더 2, 써니, 다 재밌게 봤다. 생각보다 실망한건 트랜스포머 3다.
(트랜스포머3 완전 실망... 메간 폭스를 돌리도!)
트랜스포머 3편을 보고 친한 작가에게 문자를 했다. '2편보다 재미없기는 쉽지 않은데, 마이클 베이가 해냈군요.' 작가의 답. '60분만 들어냈어도 재밌었을텐데...'
트랜스포머 3를 보고 한 생각. 영화의 CG란,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나오는 게 아니라, 이야기에 꼭 필요한 장면이라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요즘 헐리웃 CG 영화는, 기술적으로 관객을 압도하기 위해 스펙터클한 장면을 남발하면서 역으로 지루해지는 경향이 있다. 눈 앞에서 거대 로봇이 시카고 도심을 아작내고 특공대가 날개 옷을 입고 빌딩숲 사이를 날아다니는데, 나는 왜 졸리는 걸까? 영상과 음향의 무차별 폭격 속에 외려 나의 감각이 둔해지고 있는 걸까?
2000년대 들어 CG 기술이 발달할 수록 헐리웃 영화의 스토리는 점점 퇴보하는 듯 하다. 새로운 이야기의 등장도 없고. 아쉽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건 역시 스토리인데...
영화와 연극을 이종비교하는 건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연극 한 편 강추하고 싶다. '키사라기 미키짱.' 씨네 21의 연극평을 읽고 너무 궁금해서 달려가 본 작품이다.
초간단 연극 줄거리... '아이돌 여자 가수 키사라기 미키짱이 죽은 지 1년 되는 날, 찌질이 삼촌팬들이 모여 추도회를 갖는다. 각자 자신이 최고로 미키짱을 아끼는 팬이라 주장하는데, 대화 도중 미키짱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로 밝혀진다. 그리고 알고보니 이들 팬은 하나 둘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기 시작하는데...
난 씨네 21에서 딱 요만큼의 줄거리만 읽고 무지하게 이야기가 궁금했다. 오타쿠 삼촌팬들이 죽은 여가수의 살인범을 추적하는데 알고보니 다섯명의 팬이 제각각 용의자로 변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그렇게 될까?
꼭 한번 가서 보시라. 주인공 다섯 명은 하나같이 선명한 캐릭터를 갖고 또 이야기 속에서 알차게 활용된다. 심지어 코믹한 대사 하나 하나도 나중엔 다 미스테리 해결의 복선으로 재활용된다.
무릇 시나리오의 최고 전범이란 이런 것이다. 인물이건 사건이건 낭비되는 법 없이 알차게 쓰이는 것. 기술적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헐리웃 영화의 이야기가 갈수록 허술해지고, 공간의 제약, 출연진의 제약, 기술의 제약이 있는 연극에서 오히려 그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건과 인물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 극본은 더 탄탄해진다. 이 묘한 아이러니의 답은 어디에 있을까? 트랜스포머와 미키짱을 보며 드라마 연출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ps. 짠돌이 PD가 웬일로 비싼 연극을 다 보나 하고 궁금해하실 분들에게... 흔히들 영화보다 연극이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트랜스포머 3D 주말 관람료는 15000원이다. 미키짱은 2만원짜리 표부터 있다. 연극이 절대 비싼게 아니다. 또, 연극은 좋은 배우를 찾는 오디션도 제공한다. 영화를 보고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모험이다. 수십번 NG 끝에 난 오케이 컷들만 이어붙인 영화에서 진짜 실력파를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조명빨과 분장빨, 거기에 편집빨... 속기 쉽상이다. 그에 비해 연극은 매회가 쌩얼 오디션이다. 영화계 최고 배우 중에 대학로 연극판 출신이 많은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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