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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어느 프랑스 할머니의 추억

by 김민식pd 2011. 6. 22.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으며, 어느 프랑스 할머니가 생각났다. 인도 배낭 여행 중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초로의 할머니. 바라나시에 와서 석 달째 힌디어로 보컬 레슨을 받고 있다기에 직업이 뭐냐고 물었더니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럼 돌아가면 다시 교직으로 복귀할거냐고 물었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지금 프랑스 상태로는 아냐'라고 했다.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에서, 2008년의 프랑스 교육 개혁은 개악이었다고 말한다.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 대신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정책만 내놓은 것이다. 당시 교사들은 그 개혁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징벌로 감봉 처분까지 당했다. 할머니는 그런 학교 현장에 더 있을 수 없어 훌쩍 인도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와 대화를 하다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아래 할머니 사진을 보고 추리해보시라. 인도에 여행 온 지 넉 달된 할머니의 모습에서 궁금한 것은?
 


할머니 머리가 너무 짧지 않나? 분명 교단에서 아이들 가르칠때 머리는 길었을텐데, 인도에 와서 넉 달 간 지내면서 머리를 어디서 깎았길래 저렇게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실까? 참고로 인도 이발소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넉 달간 인도여행을 하고도 저렇게 짧은 머리라면, 할머니도 이런 길거리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셨을까? 난 그게 궁금했다. 그러자 할머니의 답변. 'No, I used to shave my head.' '?'

2008년의 프랑스 교육 정책 개악의 일환으로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차림이 금지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신앙 때문에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한 정책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차별아닌가. 히잡을 쓰고 두건을 두르도록 율법에서 규정한 소수종교자들은 어쩌라고? 프랑스 내 이슬람 등의 이민자를 향한 차별적 제도였는데, 그 제도가 학교에서 강제되자 분노한 선생님은 항의의 뜻으로 삭발을 감행하셨다.

난데없이 여선생이 머리를 삭발하자 교장이 불렀단다. 'Are you a buddist?'
할머니 대답. 'No, I am a swimmer.'
아침마다 수영하는 데 긴 머리가 거추장스러워 삭발했다는 대답에 교장은 할 말이 없어졌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변신에 열광했다. 그렇게 강골인 할머니도 결국 프랑스 교육제도의 우경화를 견디다 못해 교단을 떠났다.

와우~ 멋지지 않은가? 나이 60에도 정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의의 뜻으로 삭발하는 여선생님. 나이 90에도 레지스탕스 정신을 되살려 분노하라고 일성하는 스테판 에셀. 난 '분노하라'를 읽으며 그 할머니가 다시 그리워졌다. 헤어지면서 할머니에게 했던 말.
'I can understand why you came to India. But I think your students will miss you.' 
왜 진짜 좋은 선생님들은 다 교단에서 쫓겨나는 걸까?

ps. 삭발 얘기 하다 보니,
요즘 MBC 노조에서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합 집행부에서 회의하다, 가끔 농삼아 그런다. '삭발이 먼저야? 단식이 먼저야?' '음... 요즘 머리숱이 많이 빠지니 삭발로 먼저 가자. 단식은 너무 힘들어.' 그랬는데... 내일부터 언론노조 이강택 위원장님이 조중동 방송 광고 직접영업 반대 단식 농성에 들어가신다. 


이 분, 머리숱이 적어 삭발은 의미없다고 보고 단식으로 바로 가시는 듯 하다. 음... 아무래도 단식이 먼저 올 것같다... 마누라도 없는데, 배까지 곯는거야?  음...  하지만... 뭐,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웃으면서 가야지, 뭐.   

한나라당 앞에 가서 농성하게 되면,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나 미리 읽고 가야지.


배경에 있는 책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라. 적들에게 용서란 없다!

아, 참 이 할머니 얘기는 예전에 올린 비디오 여행기에 나온다.
2011/03/20 - [짠돌이 여행일지/인도 네팔 배낭여행] - 바라나시, 시티 오브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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