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날더러 참 즐겁게 산다고 한다. 고마운 말씀, 동의한다. 또, 나같은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늘 행복했을 거라고도 말한다. 그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난 19살까지 죽고싶을 만큼 불행했고, 20살이 된 후 서서히 행복해졌다. 그 계기는? 단순하다. 마음을 그렇게 먹었기 때문이다. 즐겁게 살자고.
인생이 불행한 건 내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주기 때문이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행복하다.
난 문과 취향인데도 의사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님의 강권으로 고교 시절에 이과를 다녔다. 심지어 대학 전공은 더더욱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다녔는데, 석유시추공학이나 석탄채굴법을 배웠다. 문학도를 꿈꾼 나로서는 완전 죽을 맛이었다.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근처에 있는 건국대학교에 놀러갔다. 그때 '싸이클 전국 일주에 도전할 신입생 모집!'이라는 대자보를 봤다. 자전거로 통학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자전거 전국 일주였다. 순간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라 가슴이 부풀었다. "하고 싶다, 전국일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광고를 낸 곳은 건국대 싸이클부, 그건 건국대 신입생들을 향한 동아리 회원 모집 광고였다. 자격이 안되는구나...
고교 재학 시절, 진학 상담할 때 일이 생각났다. "어떤 과를 가고 싶니?" 선생님이 물었다. "전 영문과나 국문과를 가고 싶습니다." "넌 지금 이과잖아. 자격이 안돼. 그냥 이과 중에서 골라." "이과에는 가고 싶은 데가 없습니다." "그럼 그냥 네 성적에 맞춰서 적어." 그래서 선택한 곳이 자원공학과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괴로웠고. 그걸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격 조건? 그게 무슨 문제야? 하고 싶은걸 하고 살면 왜 안 되는데?' 그 길로 나는 건국대 싸이클 부를 찾아갔다.
"저 입회하고 싶은데요." "아,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근데... 제가 한양대생인데, 여기 입회해도 될까요?" 순간 건국대 동아리방에 흐르는 정적... "한양대생이요? 여기 연합 동아리 아닌데." "네, 압니다. 그런데 전국 일주,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때 자전거 체인을 감고 있던 한 선배가 나섰다. "뭐, 타교생이라고 안될건 없지?" 그렇게 난 건국대 싸이클 부에 가입했다.
(87년 9월에 찍은 사진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는 찾지 말아달라. 집사람이 이 사진 보고 딱 한마디했다. "이때 만났으면 당신이랑 절대 안 사귀었을거야!")
나는 건국 취미 싸이클부 역사상 유일한 한양대생으로 그 해 여름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싸이클 전국 일주, 여름 뙤약볕 아래 하루 200킬로를 달리고, 한계령을 자전거로 넘는 험난한 코스다. 매년 10명 이상의 회원이 전국일주를 떠나지만 완주자는 3~4명 선이다.
난 타교생인 내게 기회를 준 선배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최종완주자 4명 중에 낄 수 있었다. (이 사진에서도 나를 찾진 마라. 짝짝이 양말에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아니 무엇보다 저 외모! 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와 결혼하고 10년째 살아주고 있는 마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참고로 마님은 이 사진을 공개했다고 방방뜨신다. '당신 미친 거 아냐?' 딱 한마디 해줬다. '왜, 당신 호감도는 급상승이잖아? 이런 남자 구제해 준걸로.' ^^ )
내가 저질 체력으로도 싸이클 전국일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인생을 결정한 사람은 포기도 쉽다. 어느 순간 힘들어지면, '뭐, 이건 처음부터 내가 원한 길이 아니었잖아?'하고 쉽게 접는다.
내 인생이 그랬다. 이과 선택부터 대학 전공 선택까지는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며 너무 쉽게 내 인생을 포기했다. 선택은 남들의 몫이지만 이후의 괴로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 이후, 난 주위 이목은 신경쓰지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닥치는대로 저지르며 살았다. 공대를 나왔지만 전공을 버리고 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2년을 다닌 첫 직장을 버리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에 즈음해서는 한번도 배운 적 없는 방송 연출직에 지원했다. 그리고10년을 버라이어티 쇼랑 시트콤 연출하다, 어느날 예능국을 떠나 드라마로 옮겼다. 나름 파란만장한 삶이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 그 외에 인생에 무엇이 있겠는가?
스펙이나 전공이나 이런 거 너무 신경쓰지 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어보라. 머리에 묻지 말고 가슴에게 물어라. 때론 바보같은 결정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건 청춘의 특권이다. 젊어서 너무 영악하면, 나이들어 남는게 없다. 좀 바보같이 살고, 손해보듯 살아야 배우는 게 많다. 20대에는 무모한 꿈을 꾸고, 도전하듯이 살아라. 지금 못하면 나중에는 더더욱 기회가 없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갈수록 늘어간다.
인생 즐겁게 사는 법, 간단하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인생이 불행한 건 내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주기 때문이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행복하다.
난 문과 취향인데도 의사가 되기를 바랬던 아버님의 강권으로 고교 시절에 이과를 다녔다. 심지어 대학 전공은 더더욱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다녔는데, 석유시추공학이나 석탄채굴법을 배웠다. 문학도를 꿈꾼 나로서는 완전 죽을 맛이었다.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근처에 있는 건국대학교에 놀러갔다. 그때 '싸이클 전국 일주에 도전할 신입생 모집!'이라는 대자보를 봤다. 자전거로 통학하던 어린 시절의 꿈이 자전거 전국 일주였다. 순간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라 가슴이 부풀었다. "하고 싶다, 전국일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광고를 낸 곳은 건국대 싸이클부, 그건 건국대 신입생들을 향한 동아리 회원 모집 광고였다. 자격이 안되는구나...
고교 재학 시절, 진학 상담할 때 일이 생각났다. "어떤 과를 가고 싶니?" 선생님이 물었다. "전 영문과나 국문과를 가고 싶습니다." "넌 지금 이과잖아. 자격이 안돼. 그냥 이과 중에서 골라." "이과에는 가고 싶은 데가 없습니다." "그럼 그냥 네 성적에 맞춰서 적어." 그래서 선택한 곳이 자원공학과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괴로웠고. 그걸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격 조건? 그게 무슨 문제야? 하고 싶은걸 하고 살면 왜 안 되는데?' 그 길로 나는 건국대 싸이클 부를 찾아갔다.
"저 입회하고 싶은데요." "아,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근데... 제가 한양대생인데, 여기 입회해도 될까요?" 순간 건국대 동아리방에 흐르는 정적... "한양대생이요? 여기 연합 동아리 아닌데." "네, 압니다. 그런데 전국 일주,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때 자전거 체인을 감고 있던 한 선배가 나섰다. "뭐, 타교생이라고 안될건 없지?" 그렇게 난 건국대 싸이클 부에 가입했다.
(87년 9월에 찍은 사진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는 찾지 말아달라. 집사람이 이 사진 보고 딱 한마디했다. "이때 만났으면 당신이랑 절대 안 사귀었을거야!")
나는 건국 취미 싸이클부 역사상 유일한 한양대생으로 그 해 여름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싸이클 전국 일주, 여름 뙤약볕 아래 하루 200킬로를 달리고, 한계령을 자전거로 넘는 험난한 코스다. 매년 10명 이상의 회원이 전국일주를 떠나지만 완주자는 3~4명 선이다.
난 타교생인 내게 기회를 준 선배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고, 덕분에 최종완주자 4명 중에 낄 수 있었다. (이 사진에서도 나를 찾진 마라. 짝짝이 양말에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아니 무엇보다 저 외모! 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와 결혼하고 10년째 살아주고 있는 마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참고로 마님은 이 사진을 공개했다고 방방뜨신다. '당신 미친 거 아냐?' 딱 한마디 해줬다. '왜, 당신 호감도는 급상승이잖아? 이런 남자 구제해 준걸로.' ^^ )
내가 저질 체력으로도 싸이클 전국일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인생을 결정한 사람은 포기도 쉽다. 어느 순간 힘들어지면, '뭐, 이건 처음부터 내가 원한 길이 아니었잖아?'하고 쉽게 접는다.
내 인생이 그랬다. 이과 선택부터 대학 전공 선택까지는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며 너무 쉽게 내 인생을 포기했다. 선택은 남들의 몫이지만 이후의 괴로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 이후, 난 주위 이목은 신경쓰지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닥치는대로 저지르며 살았다. 공대를 나왔지만 전공을 버리고 영업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2년을 다닌 첫 직장을 버리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에 즈음해서는 한번도 배운 적 없는 방송 연출직에 지원했다. 그리고10년을 버라이어티 쇼랑 시트콤 연출하다, 어느날 예능국을 떠나 드라마로 옮겼다. 나름 파란만장한 삶이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한다. 그 외에 인생에 무엇이 있겠는가?
스펙이나 전공이나 이런 거 너무 신경쓰지 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어보라. 머리에 묻지 말고 가슴에게 물어라. 때론 바보같은 결정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건 청춘의 특권이다. 젊어서 너무 영악하면, 나이들어 남는게 없다. 좀 바보같이 살고, 손해보듯 살아야 배우는 게 많다. 20대에는 무모한 꿈을 꾸고, 도전하듯이 살아라. 지금 못하면 나중에는 더더욱 기회가 없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갈수록 늘어간다.
인생 즐겁게 사는 법, 간단하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반응형
'공짜로 즐기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아끼면 찌된다. (7) | 2011.08.26 |
---|---|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0) | 2011.08.24 |
진정한 '내조의 여왕'의 되는 법 (1) | 2011.08.20 |
왜 나의 아픔은 너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0) | 2011.08.17 |
만국의 짠돌이들이여, 단결하라! (1) | 2011.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