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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이게 영어 스쿨인지, 연애 스쿨인지

by 김민식pd 2015. 12. 28.

어떤 분이 방명록에 질문을 올렸습니다. 연애 스쿨 질의응답 시간이지만, 결론은 영어 스쿨이 될 것 같은 느낌...

 

Q

대쉬 타이밍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성분이랑 만나서 같이 밥먹고, 차마시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하는데, 도통 대쉬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잡을 수가 없네요.

일상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그런데 난 니가 참 좋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연출을 하시는 피디님이시고 연애의 달인이시니 대쉬의 타이밍이나 대쉬할 수 있는 대화로 유도하는 노하우는 있으신가요?

 

A.

일단, 한가지. 일상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난 니가 참 좋다'라고 얘기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집에 데려다 주는 매 순간이 다 대쉬 타이밍입니다. 데이트할 때의 모든 이야기는 '기승전 너 예쁘다'가 되어야 합니다.

밥 먹을 때,

"역시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같이 먹는 상대도 중요해. 이쁜 사람이랑 먹으니까 입맛이 확 살잖아?"

차 마실 때,

"어우야, 너랑 카페 다니기도 힘들다. 하도 사람들이 쳐다봐서. 저 못생긴 남자는 무슨 복으로 저렇게 예쁜 여친을 얻었나 하고 다들 째려보는 거 봐라. 사실은 그냥 내가 너 좋다고 마냥 쫓아다니는 건데...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오해라도 풀고 올까? 제 여친 아니구요, 그냥 제가 짝사랑하는 여자에요. 하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아, 진짜 아쉽네. 그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들어가야지? 내가 오늘 너무 심하게 들이댔다면, 이해해주라. 만약 이해가 안 가면, 집에 들어가서 거울 한번 봐. 그럼 아마 내가 이렇게 미친듯이 들이댄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미친 거 아니냐구요? ㅋㅋㅋ 맞아요. 미친 거. 이렇게 미쳐야 연애죠, 앞뒤 재보고 체면 따지고 하면 그건 연애 아니에요. 그럼 왜 대쉬가 힘든가? 그건 아직 타이밍이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들이대고 싶지만, 상대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괜히 들이댔다가 겁먹고 도망갈까봐 그러는 거에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이제부터 본격적인 답변입니다.

'프렌즈'라는 시트콤에 제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모니카가 챈들러에게 잠자리 비법을 전수하는 장면입니다.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줘요. 여자에게는 성감대가 여기 여기 있다. 번호를 붙여주죠. 1번부터 7번까지. 챈들러의 반응? '엥? 그렇게 많아?' 모니카의 설명. '1번에서 시작하면 대부분 남자들은 7번에 가기 위해 순서를 건너뛰거나 건성건성 바로 7번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여자들에게는 순서가 중요해. 그것도 그냥 1234567 이렇게 가지 말고, 1번 3번. 1번 4번 3번 다시 1번. 다시 2번 3번 1번. 이렇게...'

 

 

(위의 장면입니다. 2분 반짜리 영상이어요.)

 

남자가 대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른 결승점에 골을 넣고 싶은 겁니다. 골 넣으려고 시작한 경기인데 하프라인에서 주고받는 패스가 지겹다 이거지요. 남자가 골 넣는 걸 중요시한다면, 여자는 공놀이 그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게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해봐요.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는 관계를 빨리, 많이 해서 유전자를 퍼뜨리는 게 중요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공급해 줄 상대를 찾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보니 남자는 서둘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고, 여자는 오래도록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게 밀당이라는 연애 게임이지요.

 

그러다보니 남자는 섹스에 집착하고, 여자에게는 섹스보다는 그에 이르는 과정을 더 중요시합니다. 먼저 즐거운 대화, 정서적인 교류, 그 다음 스킨십, 그 다음 키스 등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냥 욕심만 채우고 달아날 남자를 만나면 여자에게는 손해니까요.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가 훗날 같이 아이를 낳아 함께 기를 수 있는 상대인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요.

 

'언제 대쉬할 것인가?'만 생각하면, 밥 먹고, 차 마시고, 데려다 주는 순간의 과정을 놓치기 쉽습니다. 난 너랑 밥만 먹어도 너무 좋아. 너랑 얘기 나누며 차 마시는 순간이 너무 좋아. 너의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골목의 가로등도 너무 좋아. 이래야 상대에게 안정적인 파트너라는 신뢰를 심어줍니다. 서두르면, '혹시 이 남자, 그냥 골만 넣고 달아나려는?' 하는 의심을 살 수 있어요. 절대 서두르지 마세요. 연애를 잘 하시려면, 연애에 시간과 공을 들일 수 있어야합니다. 조급하게 골에 집착하지 말고 주고받는 패스를 더 즐겨야합니다.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신호가 와요. 지금이 대쉬할 타이밍이라는 신호가.

 

영어 스쿨 연재하면서 중급편으로 넘어가자니 걱정이 살짝 됩니다. "야호! 드디어 중급편이다, 달려야지!" 하실까봐. 초급편의 영어 회화를 암송하는 것이 사실은 영어 공부의 핵심입니다. 기초 회화를 제대로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급으로 가서 유튜브에 올라온 시트콤 보고 TED 강의를 듣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영어랑 손도 잡기 전에 모텔 데려가는 거죠. 뺨맞기 딱 좋아요. ^^

예시를 위해 '프렌즈'의 장면을 검색해서 띄우는데 3분 걸렸어요. 1, 질문을 읽고 프렌즈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데 1분, 2, 구글 검색으로 유튜브 동영상 찾는데 1분, 3, 영상 재생해서 내용 확인하는데 1분. 3분만에 되니까 참 쉽게 느껴지죠? 이게 3분만에 된 게 아닙니다. 1, 대학 시절 매일 저녁 프렌즈 시청한 시간 더하기 논스톱 연출 위해 뉴욕 가서 사온 프렌즈 DVD 코멘터리 틀어놓고 대본 연구한 숱한 세월이 있었고요. 2. 대학 때 영문 페이퍼백 소설 수백권을 읽으며 저절로 영어 속독이 되는 덕에 1분만에 검색이 되고요. 3. 수백시간 동안 회화 테이프 받아쓰기로 리스닝을 공부한 시간에 1분을 더해야합니다. 

 

중급이나 고급편으로 가는 대쉬의 타이밍은 천천히 잡으세요. 먼저 영어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오래오래 나누어야합니다. 조급하게 가지 마시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시간을 들여 관계를 다지는 것이 영어와 행복한 결혼생활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영어도 연애도 기초에 공을 들여야합니다. 초급의 지난한 과정을 부디 즐기시기를.

 

 

오늘의 짤방은 뉴욕 하이라인에서 만난 키스하는 남녀. 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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