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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쉬운 책으로 어렵게 공부하자

by 김민식pd 2015. 12. 21.

지난 일요일에 귀국한 후, 도서관이며 서점을 다니며 서가 사이를 헤맸습니다. 일전에 약속드린, 암송하기에 좋은 영어 회화책 추천을 위해서요. 그 과정에서 정말 좌절했답니다. ㅠㅠ 힘들더군요. 세상에, 영어 회화 책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오히려 선택이 힘들어지는... 

 

제가 영어 기초를 공부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입니다. 그때 저는 Michigan Action English라고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회화 테이프를 가져다 받아쓰기를 하면서 전체 교재를 암기했습니다. 문법이나 독해는 김영로 선생님이 쓰신 '영어 순해' '영어의 핵' 등으로 공부했고요. 저는 '전권 읽기'라 하여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을 시리즈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를테면 성문 기본 영어로 시작하면, 핵심 영어, 종합 영어 순으로 가는 거죠. 그러면 체계가 더 빠르게 잡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책들은 이제 다 오래 되어 나오지도 않고, 또 요즘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더군요.

강남 교보 문고랑 여의도 영풍 문고, 그리고 동네 도서관 등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영어 코너에 책들이 정말 많더군요. 일본어랑 중국어 공부할 때는 책을 고르기가 쉬웠어요. 동양문고의 '첫걸음 시리즈' 하나면 기초는 떼거든요. 그런 다음엔 같은 출판사의 중급 교재로 넘어가면 교재 구성에 일관성이 있어 공부가 편합니다. 동양문고는 또 동영상 강의를 잘 해둬서 초보가 독학으로 공부하기 참 좋거든요. 그렇게 일본어를 떼고 나서 중국어로, 중국어를 다 외우면 다시 스페인어로. 이렇게 같은 출판사의 책으로 계속 새로운 언어의 기초를 공부하고 있어요. 다만 영어는 교재 선택이 참 어렵네요. 동양문고의 '영어 첫걸음'은 너무 초보 단계라 추천하기가 좀 그렇구요. 일본어나 중국어와 달리 영어는 학창 시절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없잖아요? 

영어 회화 교재는, 회화의 패턴을 나열해서 패턴 중심으로 익히자는 류, 아니면 Grammar In Use처럼 문법을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회화를 익히자는 류, 즉 쉽게 공부하는 책과 어렵게 공부하는 책, 두 종류로 나뉘더군요. 둘 다 나름의 강점이 있지요. 쉬운 책은 잡고 술술 읽기에 좋구요. 어려운 책은 웬지 영어 공부를 마음먹고 제대로 하는 느낌?

 

어려운 문법책은 대학생 때 하루 몇시간이든 낼 수 있을 때, 또 학원 수강 등을 동원해 풀이나 해설이 가능할 때 좋지요. 직장인이나 주부가 자투리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에는 크고 두꺼운 문법책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금세 질리고 포기하기 쉽지요. 패턴을 가르쳐주는 쉬운 책은 그냥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편하지만 암기가 어렵습니다. 문장간의 연결이 없어서 줄줄줄 암송이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어 학습법은, 쉬운 책으로 어렵게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쉬운 회화 교재 한권을 잡고 그 속의 본문을 통째 외우는 겁니다. 하나의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를 통째 외우는 겁니다.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패턴 회화의 경우, 상황이 매번 달라서 흐름을 타기가 쉽지 않아요. 문법책의 예문도 흐름이 끊겨서 연결이 쉽지 않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회화 책을 뒤져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본문 파트를 외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영어 책을 자꾸 자꾸 새로 사는 것은 좋은 학습 습관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그 순간의 위안을 위해서입니다. 새로 마음 먹었으니, 새 책으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러지 말고 기존에 공부한 책을 이번에는 한번 어렵게 공부해보세요. 그냥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소리내어 반복해서 읽고, 나아가서 본문을 통째로 외워보세요.

 

자, 나는 예전에 사둔 회화 책도 없고, 그냥 2016년 새 해에 마음 먹고 영어 공부하는 김에 책 한권 사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그러니 그냥 각설하고, 책 한권 추천해다오! 그런 분이 계시다면, 나름 한 권 정도 눈여겨 봐둔 책이 있습니다.

 

'영어 회화 100일의 기적' (문성현 지음/ 넥서스 출판) 문법, 발음, 단어, 이런 거 없습니다. 책 처음부터 깔끔하게 바로 회화 수업으로 들어갑니다. 첫날부터 바로 들입다 외우는 책, 되겠습니다. ^^

 

(강남 교보문고에서 본문 내용을 사진 찍다가 직원에게 혼났어요.ㅠㅠ 죄송합니다. 설명을 위해 올린 사진인데, 만약 문제가 된다면 추후에 내리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꾸벅.)

 

본문을 보면 한 과가 A와 B의 대화로 6줄 정도 됩니다. 하루에 외우기 딱 좋은 분량이지요. 활용도가 높은 구어체 표현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문법 해설은 처음 공부할 때 한번 눈여겨보시구요, 본격적인 학습법은 무조건 본문 암송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해진 영어 학습 시간에 책을 펼쳐 그날 공부할 단원을 소리 내어 읽습니다. 발음에 자신이 없다면 부록의 mp3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따라해봅니다. 책을 보고 10번 정도 읽고 다음엔 눈을 들어 한번 외워보세요. 다음 문장이 기억나지 않으면 아래 한글 번역을 보고 영작을 해보세요. 그래도 기억 나지 않으면 본문을 슬쩍 보시고 얼른 고개를 들어 문장을 읊어보세요. 힘들더라도 가급적 영어로 문장을 외워야합니다.

공부가 끝났으면 그날 학습한 페이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두세요. 페이지 전체를 한번, 아래의 한글 번역 부분만 따로 한번. 그리고 하루 일과중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전철 안이나 휴게실에서 문장을 다시 암송하세요. 가급적 한글 번역만을 보고 영어 본문을 떠올려야 합니다. 힘들면 전체 화면을 보고 몇번 읽은 후, 다시 한글만 보고 문장을 외워보세요. 이렇게 하면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라도 암송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공부를 해서, 매일 들고 다니며 암송할 용도로 컨닝 페이퍼를 만들었습니다. 만약, 본문이 위 사진에 나와 있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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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rry to keep you waiting. So where were we?

B: We need to fix the date for the next meeting.

A: When is the most conveniet time for you?

B: Too bad I'm not able to make time this week.

A: Try to look on the bright side.

B: Got it. Keep me posted on your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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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암송용 컨닝 페이퍼를 만들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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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기다리게 해서. 어디?

날짜 잡자, 다음 미팅.

언제, 가장 편한 시간?

안되겠네, 시간 없어, 이번 주.

시도, 보는 것, 좋은 쪽.

알았어. 나에게 알려줘, 너의 진행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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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적습니다. 한글로 완벽한 문장을 쓰기 보다는 영어 문장에 나오는 단어 순서에 맞춰서 씁니다. 그러면 영어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이렇게 한글에서 영어로 전환하는 습관을 기르면 나중에 독해할 때 직독직해가 쉽습니다.

하루 일과 중 틈만 나면 이런 식으로 외우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해보세요. 한 과를 다 외운걸 확인한 후에야 잠자리에 듭니다.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그동안 외운 과들 전체를 암송해봅니다. 복습 확인할 때는 1과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그래서 잘 외워지지 않은 부분은 해설을 보고 다시 이해하고, 다시 책을 보며 보충 학습을 합니다. 새로운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그동안 복습이 중요합니다. 잘 외워지지 않으면, 며칠동안 한 과를 붙잡고 있더라도, 완전히 외운 후에 다음 과로 진도를 나갑니다. 책에 나온 100일이라는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만약 대학생이고 방학 중 이 방법을 실천한다면, 그래서 여유가 있다면 하루에 3과씩 외워도 좋습니다. 각자 자신의 학습 시간과 학습량에 따라 진도를 조절하세요.

 

최근에 읽은 책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 (추스잉 지음 / 청림출판)에서는 복습할 때, 1과부터 시작하지 말고, 전날 공부한 것부터 역순으로 하라고 하더군요. 만약 오늘 10과를 외웠다면, 복습은 10과, 9과, 8과, 7과 순으로 가는 거지요. 그 방법도 나쁘지 않아요. 제 경우, 무조건 1과부터 합니다. 그러면 발동이 쉽게 걸러요. 가장 많이 반복했기에, 가장 잘 나오거든요. 그리고 1과부터 초반에 나오는 회화 표현이 가장 자주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기억 보조용 컨닝 페이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루 하루 새로 외울 단원은 위에서 말했듯이 문장 속 핵심 단어를 나누어 적고요. 매일 한 과씩 외워나가면 나중에 수십 개의 회화 단원을 암송할 수 있는 날이 옵니다. 상황만 기억하면 그 속의 문장 여섯개가 손을 잡고 줄줄이 나옵니다. 다음 단원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단원의 제목만 쪽지에 적어둡니다.  1과 인사, 2과 약속, 3과 식당, 4과 도서관. 이런 식으로요. 주제만 보면, 다음 과의 첫 문장이 떠오르고 그러면 다시 나머지가 술술 흘러나옵니다. 매일 이걸 반복하다보면 결국 몇 달 안에 책 한권을 통째로 외우게 됩니다. 

 

영어 책을 선택할 때, 어려운 책의 유혹이 있습니다. 두껍고 크고 앞에 영어로 쓰여져있는 책을 보면, 막 사고 싶어지죠. 도서관 자리에 딱 세워놓으면 뽀대도 막 날 것 같고. 저는 권하지 않아요. 그런 식의 자기 만족만 주는 학습법. 남을 속이며 살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이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남 눈에 비치는 모습, 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차라리 기초 회화 책을 갖다 둬도, 그 책을 몽땅 외우기만 한다면 훨씬 더 멋진 사람이 됩니다. 영어도 그 편이 더 빨리 늘어요.

 

쉬운 책으로 어렵게 공부하세요, 그게 기적을 부르는 학습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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