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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잔병치레하는 드라마 감독의 삶

by 김민식pd 2015. 5. 22.

요즘 블로그에 새 글 올리는 게 좀 뜸하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통에도 하루 삼백명씩 꼬박꼬박 찾아주시는 걸 보면 참으로 고마울 뿐이다.

 

요즘 '여왕의 꽃'이라는 MBC 주말특별기획의 야외 연출로 일하고 있다. 야외 연출의 일과를 잠시 소개하자면...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4일간 야외 촬영을 한다. 연속극의 경우, 반드시 일요일에 야외 촬영을 한다. 왜냐하면 사무실이나 병원처럼 평일 근무시간에는 촬영이 힘든 장소가 많기 때문이다. 고로 남들 노는 날이 내가 일하는 날이다. 

야외 촬영을 나가면 낮씬 15개, 밤씬 5개 정도를 찍는다. 하루에 4,5차례 장소 이동을 하는데, 말인즉슨 장비 철수 후 이동 및 장비 세팅까지 대략 1시간이 걸리므로 4,5시간은 오로지 이동에만 쓴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저녁 8시가 넘어야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고로 밤씬 촬영도 8시가 넘어 시작하는데 이동을 2번만 하면 새벽 2시가 금방이다.

하루 하루 촬영을 하면서 나의 목표는 단순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낮씬을 다 찍고, 밤새우기전에 밤씬을 다 찍는다. 새벽 2시 전에는 무조건 촬영을 마무리하는게 목표다. 물론 새벽 4시가 다되어 끝나는 촬영팀도 많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12시를 넘기지 않고, 늦더라도 2시전에 끝낸다.

 

촬영이 새벽 2시에 끝나면, 나는 연출 봉고라 하여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집에 간다. 하지만 스탭들은 촬영장으로 이용한 카페나 사무실의 뒷정리를 하고 장비를 정리한 후 스탭 버스를 타고 상암 MBC로, 미술스탭들은 MBC 미술센터가 있는 일산으로 간다. 도착하면 새벽 3시. 장비를 사무실에 보관한 후, 근처 찜질방이나 사무실 쇼파에서 토막잠을 자고 6시에 일어난다. 씻고 나오면 6시 반, 바로 다음날 촬영버스 출발 시간이다. 고로 스탭들은 겨우 2,3시간 눈 붙이고 매일 매일 일한다.

 

나는 감독인지라 특별 대접을 받는다. 집에서 촬영장으로 바로 간다. 하지만 스탭들은 회사에 와서 장비를 챙겨가야 하므로 나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도 잠이 항상 부족하지만 나보다 항상 2시간 이상 못자는 사람들이 바로 스탭들이다. 한달에 100여만원 받고 이렇게 일하는 스탭들을 보면 나는 항상 마음에 무거운 빚을 진 것 같다.

 

작품 시작하고 그동안 몇달 새 그만둔 소품팀 막내만 여섯명이다. 박봉에 잠도 못 자는 일인지라.... 내가 스탭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인간적인 대우와 최소한의 수면 시간 보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난 현장에서 욕을 하지 않고, 촬영은 새벽 2시 이전에 마무리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루에 3~4시간 밖에 못 자면서 4일을 일하고, 그런 생활을 8개월 가까이 하면 죽을 지경이란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조연출시절부터 20년 가까이 그렇게 일을 해왔다. 그래서 안다. 밤샘 촬영이 얼마나 건강에 치명적인지...

 

다섯번째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지만, 매 작품마다 한번씩 죽을 만치 아팠다.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를 만드는 동안엔 몸살로 앓았고, '내조의 여왕'이 끝난 직후엔 대상포진이 와서 심하게 고생했다. '글로리아' 하는 동안엔 허리가 아파서 서있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심한 기침 감기로 몇 주째 죽을 지경이다.  

 

연출은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큐를 외치고, 오케이 좋은데요!를 외치는 사람이다. 자신이 생각한 앵글을 카메라 감독에게 설명하고, 어떤 연기톤을 주문하고 싶은지 배우에게 일일이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목이 쉬어 소리가 잘 안 나온다. 쉰 소리로 속삭이며 일하고 있다.

 

병원에 가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하는데도 낫지 않는다. 제일 고역은 밤에 기침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거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전날 밤샘 촬영을 하고 돌아와 쉬는 날이라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새벽4시까지 기침하느라 한 숨도 못잤다. 아침에는 전체 대본 리딩이라 6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왜 이리 기침이 오래 갈까요?"

"감기는 자신의 면역력으로 치유해야 합니다. 쉬는 게 최고입니다. 한 일주일 푹쉬면 나을 겁니다."

 

ㅠㅠ

'여왕의 꽃'은 50부작이라, 8월말까지 방송이다.

스탭들은 아프면 교대로 병원도 가고 응급실도 가지만, 나는 감독인데 어찌 쉰단 말이냐.

(그새에도 조연출 한 명이 응급실로 실려갔고, 장출혈로 며칠 쉰 스탭도 있다. ㅠㅠ)

 

나의 일주일을 보자면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4일간 촬영을 한다. 촬영중에는 거의 3,4시간씩 밖에 못 잔다. 

목요일에는 촬영 분량의 편집을 하고, 다음주 대본을 받아 읽는다.

금요일 아침에는 배우들과 전체 리딩을 하고 오후에는 다음주 촬영할 장소를 선택한다.

토요일에는 4일 동안 이어질 촬영 스케줄을 확인하고 콘티를 짜고 로케이션 답사를 다닌다.

고로 일주일에 쉬는 날은 하루도 없고, 이걸 8개월간 해야 한다.

 

 

푹 쉬면 낫는다니, 참으로 꿈같은 얘기다.

 

아내에게 말했다.

"난 어떻게 드라마 한 편을 할 때마다 이렇게 아픈거지? 매번 그렇잖아."

왜 그럴까?

난 나의 모든 것을 작품에 바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

남들이 보기에 밤도 별로 새지않고 설렁설렁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나도 방송을 보면서 가끔 부끄러울 때가 있다.

'과연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한가지는 확실하다. 3년을 놀고 난 후, 4년만에 찾아온 기회다.

나는 이번 작품이 내 연출 인생의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한 점 후회가 없도록...

 

 

제가 현재 인생을 불살라 만들고 있는 작품은

 

 

여왕의 꽃입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밤 10시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여러분의 성원이 기침 감기로 힘들어하는 한 PD의 기운을 살릴 수 있습니다. ^^

 

 

 

(그동안 블로그에 글이 뜸한 이유를 쓴답시고 들어왔다가 엄살만 피우고 갑니다.

다음에는 더욱 유쾌한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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