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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외향성 vs. 내향성

by 김민식pd 2015. 7. 9.

얼마전 홍대 입구에 놀러갔다가 대학생 친구들이 카메라를 들고 시민 인터뷰 하는 걸 보았다. 예전에 예능국 조연출로 일할 때, 아이템이 떨어지면 길거리 인터뷰 다니던 게 생각났다.

'이번주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1위는 누가 될까요?

최근에 나온 보이그룹 중 가장 기대되는 신인은?'

이런 걸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었다. 그 시절이 생각나서 빙긋이 웃으며 보고 있었더니, 학생들이 오더라. 홍대 방송반 친구들인데 인터뷰해도 되냐고.

 

그들은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의 성격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내향적인가요, 외향적인가요?" (처음 보는 사인데, 이런거 막 물어도 되나? ㅋㅋㅋ)

 

"어렵네요. 전 둘 다라고 생각하거든요. (뭐라는 거야? ^^)

혼자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이렇게 혼자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 보다 혼자 있을 때 더 편해요.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또 무척 외향적이거든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하는 작업이라, 일 할 때는 자연스럽게 외향적이 되지요. 아마 외향적인 성격은 필요에 의해서 나오고, 가만히 놔두면 내향적인 성격이 나오는 걸 보면 원래 성격은 내향적인것 같아요. 아니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어린 친구들에게 고시랑 고시랑 얘기하는 거 보면 역시 외향적인건가?" (이때, 학생들의 표정, 뭐야, 이건? ^^)

 

"사회 생활을 하는 데는 어떤 성격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흔히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 생활이나 취업에 유리하다고들 생각하는데요. 수잔 케인이 쓴 '콰이어트'라는 책을 보면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이 창의적인 활동을 하거나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뛰어나다고 합니다. 외향성이 더 좋다, 내향성이 더 좋다, 뭐 이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자신의 성격대로 사는 거지요.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그런 고민 의미 없잖아요? 외향적인 성격이 맞는 일도 있고, 내향적인 성격이 맞는 일도 있어요.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자신으로서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빙글 빙글 웃으면서 장광설을 쏟아내는 나를 보더니, 학생들은 씩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더라. 가면서 그랬을 거다. 좀 괴짜같은 아저씨네... 하고. 왜 저렇게 말이 많아? ㅎㅎㅎ

 

무대에 오르거나 마이크를 잡았을 때 긴장하는 일은 없다. 드라마 연출은 외향적일 필요가 있는 직업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나 이야기를 작가나 스태프, 배우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입 다물고 내가 원하는 드라마가 저절로 구현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직업적 편의상 외향적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그들을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또, 감독이라는 이유로 숱한 스태프나 배우들의 색깔을 하나로 맞춰가는 것은. 아마 드라마를 찍을 때마다 아픈 이유가 그게 아닐까? 수십명의 의지를 하나로 모아 수백만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추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러기에 나는 촬영 외의 시간에는 철저하게 혼자 지낸다. 남을 내뜻대로 움직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내 뜻대로 하며 산다. 나 하나 내 뜻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움직이랴.

 

어린 시절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왕따도 당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걸로 고민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어찌보면 자발적 왕따다. 나이 50에 술 담배 골프 커피를 하지 않는다. 이건 스스로 사회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랑 똑같다. 어린 시절에는 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다. 그냥 내 성격대로, 나 편한 대로 살고 싶다. 억지로 세상에 맞춰서 살고 싶지는 않다. 늙어서 그런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거리 인터뷰를 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며, 그들의 청춘이 부러웠다. 저들은 낯선 이에게 상처받기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렇게 세상에서 답을 구하는 구나. 나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 항상 내 속에서 답을 구한다. 어떤 문제가 주어지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난 이게 하고 싶은가? 이걸 하면 즐거울까?

답이 예스라면,

나는 수백명이 보는 앞에서 춤도 출 수 있고, 며칠을 밤을 새면서도 일할 수 있다.

 

늘 솔직하기를 바란다. 내 스스로에게.

 

 

 

나 자신에게는 언제나 정면승부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공에 볼이나 승부 회피는 의미없지 않은가.

 

(사진은 예술의 전당 디자인 갤러리에서 하는 허영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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