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맞아 큰 아이에게 스키를 가르치는 중이다. 나름 '운동퀸'이라는 소리를 듣는 아이인지라 몇년만에 처음 스키장에 데려간 날도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잘 타더라. 두번째 데려간 날부터 바로 정상에 데려가 중상급 코스에서 연습을 시켰다. 그런데 내려가면서 지켜보니 아이가 혼자서 침착하게 잘 타긴 하는데 가파른 경사에서는 자세가 엉거주춤하니 엉덩이가 뒤로 빠지더라. 아마 겁이 나서 그런 모양이다.

 

"민지야, 넘어지지 않고 타는 게 잘 타는 게 아니야.

오히려 잘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게 스키야."

 

스키를 잘 타려면, 턴을 잘 해야 한다. 턴을 하려면, 업다운을 정확히 해야한다. 업 동작은 일어나며 산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인데 상급자 코스로 갈수록, 경사가 심해져서 몸을 아래로 던질 때 겁이 난다. 이때 무서워서 엉거주춤 몸을 뒤로 빼면 스키나 보드에 체중이 실리지 않아 엣지가 먹지 않는다. 턴하고자하는 반대편 다리 무릎으로 부츠를 강하게 밀어 엣지를 줘야하는데 엉거주춤 주저앉은 자세에서는 이게 힘들다.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처음에 자꾸 넘어져봐야 한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잡고 그냥 내려가면, 아래쪽에 있는 다른 스키어와 충돌하여 오히려 큰 사고 난다. 속도를 제어할 수 없을 때, 균형을 잃었을 때는 바로 혼자 넘어져야 안전하다. 스키 타다 넘어져도 눈이 푹신해서 다치지는 않는다. 그걸 몸에게 알려줘야 한다. '넘어져도 죽지 않는구나.' 초보 시절, 넘어지면 쪽팔린다. 다들 '쪽팔려서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진짜로 쪽팔려서 죽은 사람은 못 봤다. 넘어지면 어때, 초보 시절엔 누구나 다 그러는데. 

 

넘어져도 괜찮다는 걸 몸에게 가르쳐주면 한결 자세가 좋아진다. 일단 바로 선 자세가 되고 턴을 할 때 계곡 쪽으로 몸을 던지기가 쉬워 결국 턴이 잘 된다. 초보 스키어의 경우, 뒤에서 굉음을 내고 내려오는 보더의 소리에도 흠칫 겁을 먹고 갑자기 방향을 꺾다 넘어지거나 오히려 부딪히기도 한다. 상급자의 경우 아래 쪽에 있는 초보의 턴 궤적을 보고 진로를 예상해서 비켜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겁 먹은 스키어가 방향을 꺾는 바람에 충돌하기도 한다. 겁먹지 말고 차분하게 자신이 갈 길을 보며 자신만의 턴을 완성하면 스키가 더 쉽고 즐거워진다. 



 

신입 조연출이 되면, 예고편 편집을 가장 먼저 맡긴다. 그 이유는? 예고편은 망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고 못 만들어서 본방 시청률 안 나왔다. 그렇게 후배 혼내는 못난 피디는 없다. 있다면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다. 그럴거면 예고도 지가 만들어야지. 물론 어설픈 예고가 방송 타는 걸 보면 조연출 얼굴이 화끈거리긴 하지만, 그걸로 다음에 더 잘만드는 계기를 삼으면 된다. 평생 방송을 기획하고 연출해야할 피디가 초보 시절 배우는 것도 똑같다. '넘어져도 괜찮아.' 그걸 알면 창작이 즐거워진다.

 

나는 아이가 한번도 실수 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 부모로서 내가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어린 시절, 더 많이 넘어지고 혼자서 자꾸 일어나 버릇하길 바란다. 부모 눈치 보며 조심조심 넘어지지 않고 살다보면 아이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만 깃들고 즐거움은 저 멀리 달아난다. '넘어져도 괜찮아.' 스키를 배울 때도, 창작을 배울 때도, 인생을 배울 때도, 아이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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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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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속에서 2014.01.21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부지런히 글 올리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승소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꼭 좋은 결과 있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