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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육아는 돈이 들어요

by 김민식pd 2014. 1. 22.

큰 딸 민지는 여섯살 때까지 혼자였다. 마님이 미국으로 유학가는 바람에 둘째를 가질 형편이 아니었는데, 어느날 놀이터에서 혼자 놀던 아이가 무언가 한없이 부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자매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같이 소꿉장난을 하고 있더라. 순간 아이에게 참 미안했다. 나중에는 동생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하는데 못 당하겠더라. 그러니 민지에게 민서는 기도의 응답이다. 동생이 태어나자 아기를 안고 물고 빨고 난리가 났다.

 

마흔에 늦둥이를 얻고 보니 참 좋더라. 아이에게도, 그리고 부부에게도. 그래서 주위에 늦둥이를 권하는데, 그러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라며 고개를 젓는 이도 있다. 물론, 둘째는 첫째를 위한 가장 비싼 선물이다. 그런데 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출산과 육아를 기피할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모든 생명 현상은 유전자를 복제해 후대에 남기기 위한 노력이다. 돈을 버는 것도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것 아닐까? 돈을 이유로 육아와 출산을 포기하는 건, 돈을 버는 고유의 목적을 배신하는 게 아닐까?

 

학부모들을 만나 진로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나온 질문.

 

"피디님은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데, 아이의 적성을 찾는 것도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

 

나는 솔직히 잘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아이에게 돈이 드는 건 부모가 억지로 무언가 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놔두는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돈이 드나요?"

 

"아이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형편이 안되어 걱정이에요. 유소년 클럽에라도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유니폼 사랴, 장비 사랴, 철마다 전지훈련 보내랴. 부모들이 아이들 적성 무시하고 공부만 시키는 건요. 공부가 돈이 제일 덜 들어서 그래요. 돈도 없는데 아이가 예체능 간다고 할까봐 제일 걱정이에요."

 

내가 어렸을 때는 집안이 가난해서 공부할 형편이 안되는 애들이 하는 게 축구였다. 축구하는데 돈 든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운동화는 누구나 다 있고, 공터에서 공을 차면 그게 그라운드지, 클럽이니 장비니 하는 게 왜 필요한가?

 

북한산 둘레길에 가보면 두어시간 산책 코스를 무슨 히말라야 원정대들이 누비고 다닌다. 아웃도어 시장의 규모가 한국이 전세계 시장에서 2위란다. 산 타는데 돈이 든다는 게 말이 되나? 돈 한 푼 안 들이고 할 수 있어야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다. 산 타는 게 정말 좋으면 '옷이 없어서. 신발이 안 맞아서 못 간다.' 이런 말 안 나온다. 그냥 평상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산을 간다.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마음이 안 동하니까, 비싼 등산복이라도 사면 아까워서라도 가겠지. 그건 쇼핑을 위한 동기부여지, 운동을 위한 동기부여가 아니다. 

 

아이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사람도 많다. 얼마전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민식님, 우리 둘째 딸 아역배우 오디션에 붙었어요!"

 

"와우, 축하드려요? 그런데 오디션도 데리고 다녔어요?"

 

"아뇨. 백화점에 쇼핑 갔다가 아이 사진 찍어주는 이벤트가 있어 참여했는데 나중에 무슨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더라구요. 예쁜 아이 콘테스트에 입상했으니 연예인을 시켜도 될 것 같다고. 자기네 회사랑 계약하자고."

 

"아직 일곱살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계약하재요? 계약금은 얼마나 준대요?"

 

"그게요. 계약금을 받는게 아니라 우리가 회사에 내야한다는데요?"

 

"엥?"

 

"아이를 방송에 데뷔를 시키려면 연기 수업을 받아야하는데 그 비용을 소속사랑 저희가 반반 부담해야 한대요.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에 연기를 배우는데 그거 6개월간 하면 비용이 600만원이 넘는데 그걸 부모랑 회사가 반반 부담하자고. 300만원 일단 입금하라네요?"

 

"그건 좀 이상한데요? 어떤 매니지먼트 사에서 배우를 계약하는 건, 그 배우가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 하는 겁니다. 그럴 땐 계약금을 주고 배우를 잡아야죠. 그 계약금을 회수하려고 회사가 백방으로 뛰어 배역을 잡아오지요. 그러니 회사가 돈을 주고 하는 계약은 진짜고, 부모가 돈을 내고 하는 계약은 가짜에요."

 

아이의 적성을 살리는데 돈이 많이 든다면 어쩌면 그건 진짜 적성이 아닐지 모른다. 그림 그리고 싶은 아이라면 아무리 뜯어말려도 화가의 삶을 살고, 운동을 하고 싶은 아이라면 무슨 수를 쓰든 운동을 하게 되어있다.

 

'피아노의 숲'이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두 명의 피아니스트 지망생 아이들이 나오는데, 하나는 어려서부터 음악가 집안에서 자라 연주가의 길만을 생각하며 매일 연습에 열중하는 슈헤이, 또 하나는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숲 속에 버려진 피아노를 가지고 놀다 음악에 눈뜨는 카이. 영화는 두 천재 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우정을 쌓고 나중에 서로 경쟁하게 되는 이야기다. 

 

둘 중에 누가 진짜 예술가인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당연한 운명인줄 알고 어려서부터 고액 과외에 공연 세례에 길들여진 아이? 아니면 우연히 만진 피아노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좋아 숲 속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버려진 피아노를 치는 아이.

 

집안의 전폭적 지원 속에 피아노를 배운 슈헤이에게 콩쿨 대회는 엄청난 부담이다. 경제적 지원과 희생을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심리적 압박이 심해 연주를 즐기지 못한다. 그런 슈헤이가 보기에 마냥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는 카이가 신기하다. 

 

영화 끝머리에 슈헤이가 피아노의 대가를 찾아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저도 카이처럼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요?" 

 

그때 선생님의 말씀.

 

"너 자신의 피아노를 더 좋아하는게 좋겠다. 그럼 알게 될 거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 대사는 여러모로 변용될 수 있다.

  

"너 자신의 인생을 더 좋아하는게 좋겠다. 그럼 알게 될 거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렇게 다짐하기도 한다.

 

"너 자신의 아이를 더 좋아하는게 좋겠다. 그럼 알게 될 거다. 다른 사람의 아이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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