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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아이들에게 희망을

by 김민식pd 2014. 1. 24.

신문을 보면서 안타까운 소식 중 하나가 부모가 아이와 함께 동반 자살하는 일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한강 다리에서 아이를 던진 후 투신하는 아빠나, 아이의 지병이나 장애를 비관해 아이를 목 졸라 죽인 후 스스로 목을 매는 엄마 이야기. 공동체로서 그들에게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과연 해결책이 그것뿐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 경우, 동반 자살이라는 말을 쓰는 데엔 반대한다. 엄밀히 말하면 살인 후 자살이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동반자살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스토커 살인이지. 진짜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일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못해도 좋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게 진짜 사랑 아닌가?

 

나는 개인의 자유 의사 존중이라는 면에서 안락사를 찬성한다. 사후 안구 및 신체 장기 기증도 찬성하는 편이다. 만약 내 의지대로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 버티기보다 미련없이 뜨고 싶다는 쪽이다. 그런데 얼마전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늙고 병들어 그 고통을 견디는 과정도 삶의 일부다. 평생 즐거움과 쾌락만 누리고 막상 생로병사의 마지막에 오는 고통은 피하려고 마약 주사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건 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고교 시절, 얼굴에 커다란 화상 흉터를 안고 시커멓고 빼빼마른 외모에 늘 놀림을 받았다. 키 173에 몸무게가 53킬로였으니 참 볼품 없었을 게다. 반에서 아이들이 가장 못 생긴 아이 투표를 했는데 일등 먹었다. 그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에 자살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외모가 못 생겨서 자살하면 그게 과연 외모 탓일까? 얼굴 못난 놈이 마음도 못났다는 소리 듣기 싫어 자살을 포기했는데, 지금은 그 시절 소심했던 나에게 감사한 마음 뿐이다.

 

외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나이 마흔 넘어 자신이 불행한 게 외모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불행한 건 외모탓이 아닐게다. 돈이나 부모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둘째 아이에게 밤마다 위인전을 읽어주는데, 위인의 절반은 결손가정 출신이더라. 물론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훌륭하게 잘 자라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서 인생이 끝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기에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는 거, 그렇기에 인생은 살만 한 것이다.

 

힘든 세상에서 희망을 강요하기도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고난을 피하는 데 있는게 아니라, 그걸 참고 견디어 내는 데 있는게 아닐까. 내가 해내지 못한 걸, 아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믿어주는 게 육아다.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난 불행하니까, 너는 무조건 행복해야해.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 가난해지니까 넌 무조건 잘 해야해.' 이건 어른의 불행,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일이고, 그 결과 세상은 아이들에게 지옥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못나 세상이 이리 된 것에 대해 진심 미안한 마음뿐이다.

 

얼굴 좀 못생기면 어떤가. 자학 개그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는데.

공부 좀 못해도 세상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인생 역전 스토리의 최고 소재다. 

돈 좀 없어도 즐겁게 사는 데 하등 지장 없다. 삶의 참된 즐거움을 찾아내는 기회가 된다.

내게 오지 않은 행복이, 아이에겐 언젠가 올 거야.

그런 희망으로 사는 부모가 되고 싶다. 

도서관에서 빌려운 책 '꽃들에게 희망을' 

민서에게 읽어주려고 며칠째 시도 중인데

아이가 벌레를 싫어하는 탓인지 유난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혼자 읽어야겠다.

희망은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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