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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미켈란젤로의 3가지 행운

by 김민식pd 2014. 1. 15.

작년 가을 스페인 이탈리아로 3주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중학생이 되는 큰 딸 민지에게 역사나 미술 공부에 도움이 되는 코스를 잡느라 이탈리아를 여행 목적지로 잡았는데, 그곳에서는 로마와 피렌체 딱 두 곳을 봤다. 아이와 여행 할 때는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무는 걸 선호한다. 괜히 어른 욕심에 여러 도시 단기간에 도느라 이동도 힘들고 설렁설렁 눈도장만 찍어 별로 남는 것도 없는 관광은, 하고 싶진 않다. 한 도시에서 적어도 닷새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탈리아에 있으며 로마에서 5일, 피렌체에서 5일을 지냈다. (이탈리아까지 가서 딱 도시 2개만 봤다고하면 꼭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고 그래도 거기 까지 갔는데 베니스도 보시지요, 밀라노가 그렇게 좋다는데', 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 난 씩 웃는다. '거긴 아이가 커서 직접 가겠지요. 부모가 데리고 싹 다 보여주면 아이가 나중에 갈 곳이 없잖아요?') 로마와 피렌체를 여행하며 읽은 책이 '미켈란젤로의 로마로의 여행'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주인공은 바로 미켈란젤로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의 고향으로 메디치 가문의 후원 속에 예술가로 성장한 곳이고, 로마는 당대 교황들의 지원 속에 자신의 재능을 꽃피운 도시니까.

 

책을 읽으며 PD로서 내가 궁금한 것은 '미켈란젤로같은 창작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질까?' 였다. 그림을 그리면 시스틴 채플 천장화요, 조각을 하면 다비드 상이요, 건축 설계를 하면 베드로 대성당을 만들어내는 사람, 이런 천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답은 미켈란젤로의 어린 시절에 있다. 미켈란젤로는 갈라테아라는 인문학자의 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공부가 썩 신통치는 못했다. 인문학당에서 고대 로마 역사와 교회사를 공부하고 라틴어를 배워 법률가나 정치가 혹은 사제가 되는 것이 당시 부모들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어린 미켈란젤로는 라틴어 문법을 공부하기보다 혼자 낙서하고 그림그리며 노는 걸 더 좋아했단다.

 

아버지를 찾아가 공부에는 소질이 없으니 화가를 시켜달라고 했는데, 이에 아버지 로도비코는 크게 낙담한다. 물감을 섞고 천장이나 벽에 위태하게 매달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미천한 직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매까지 드는데, 아무리 때려도 도무지 아들의 마음은 꿈쩍도 안 하는 거다. 

 

아들의 고집을 꺽지 못한 로도비코는 결국 미켈란젤로를 로렌초 디 메디치에게 데려간다. 당시 피렌체 예술계의 최대 후원자였던 로렌초는 13세의 미켈란젤로를 기를란다요라는 화공의 작업실에 도제로 넣어준다. 요즘으로치면 예술 학교에 입학한 셈인데, 여기서도 미켈란젤로는 금세 싫증을 낸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스승이 그리던 초상화를 똑같이 베끼고 그걸 원화와 바꿔치기했는데 그의 사부는 그림이 바뀐 줄도 몰랐단다.

 

미켈란젤로는 3년만에 작업실을 나와서는 더 이상 그림은 배울 게 없다며 조각을 하겠다고 한다. 아버지로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을게다. 끌과 정을 들고 돌을 깨는 조각가는 거의 노가다에 가까운 직업이라 화가보다 더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급실망도 무시한 채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일을 시작하는데, 그래서 그가 나이 스물 넷 되던 해 만든게, 피에타다.

 

 

 

미켈란젤로같은 천재가 만들어지기까지 몇 번의 행운이 따라야한다.

 

내가 보기에 미켈란젤로의 첫번째 행운은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버지 루도비코가 때리다 때리다 포기하고 화공의 작업실에 보내준 이유는 장남도 있고, 다른 동생들도 있으니 아들 하나쯤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이 누리기 참 힘든 행운이다.)

 

두번째 행운은 아버지가 메디치 가문의 먼 친척이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로렌초 공이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니까. 즉 부모가 감당이 되지 않는 아이는, 아이의 그릇을 알아볼 다른 어른에게 넘겨주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 한 사람의 기준과 평가에 의해 판단되는 우리 아이들이 역시나 누리기 힘든 행운이다. 그런 점에서 난 아버지의 무관심이 3대 요소 중 하나라는 말에 반대한다. 아이의 진짜 그릇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어른들과의 교감이 필요한데, 요즘 엄마들은 아이를 독점하려고만 한다.)

 

세번째 행운은 자신보다 재능이 부족한 스승을 만난 일이다. 만약 어린 미켈란젤로가 스승의 화풍에 경도되었다면 그는 3년만에 도제 수업을 때려치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스승의 밑에서 착실하게 배워 귀족들의 초상화나 그려주며 살다 갔을 것이다. (때로는 학교 교육이라는 시스템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어찌보면 평범의 틀을 뛰어넘는 비범한 아이로 클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학교 공부의 실패가 인생 실패의 전조인양 여겨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절대 누릴 수 없는 행운이 교육의 틀을 벗어나는 행운이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아이,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 크게 될 징조다.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찍힌 아이라면, 권위에 순종하지 않으니 참된 예술가의 재목이다.

 

법륜 스님이 즐겨 하시는 말씀, '부처님이 부모 말 잘 들었으면, 성불할 수 있었을까요?' 수행자의 삶을 동경하는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장가도 보내고 가정도 꾸리게하지만 결국 집을 나와 고행의 길을 선택한 왕자, 불효로 치면 그만한 불효가 없겠지만, 그덕에 인류는 큰 스승 한 분을 모시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과 정치가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문이다. 사제와 행정가가 되어야 성공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아들을 포기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현명함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때리다 지쳐 아이를 포기하고 화공에게 데려갔을 때, 엄마는 뭐했냐고? 미켈란젤로는 일곱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 없이 자란 아이도, 커서 천재가 된다. 그러니 우리, 부모의 역할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는 말자. 때로는 아이를 놓아두는 것, 그게 큰 인물을 만드는 비결 아닐까?

 

 

(그나저나 스페인 이탈리아 여행기는 언제 올리나?

쓰고 싶은 건 많고, 쓸 시간은 없고...

요즘은 새벽 4시에 알람 맞춰두고 일어나 글을 쓰지만, 그래도 시간은 늘 부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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