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한 뉴논스톱 캐스팅 뒷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정우성같은 특급 스타를 캐스팅하는데 실패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작가들과 회의를 했다. 신인과 스타 사이에 있는 누군가 없을까? 신인 중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특급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 누구 없을까? 그랬더니 다들 '원빈'이 어떠냐고 물었다. 지금 원빈 말고, 13년전 신인 시절의 원빈. "원빈 좋네!" 정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섭외의 고수라 자부하는 부장님이 원빈을 논스톱에 스카웃하겠다며 소속사 대표를 만나러 갔다. 스타제이의 정영범 사장이 원빈을 발굴한 주역이었는데, 시트콤 출연제의를 듣고 흔쾌히, '부장님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드려야죠.' 했다. 득의양양한 부장이 일어서려는데 문득 정영범 대표가 던진 말.

"그런데요, 원빈을 드리는게 부장님께 도움이 될까요?"

"무슨 얘기야?"

"원빈은 좋은 배우죠. 하지만 시트콤 연기와 잘 어울리는 배우는 아닙니다. 일일 시트콤에 나가 괜히 작품에 폐만 끼치고, 배우로서 아직 부족하다는 소리만 들을까봐 걱정입니다."

"어떡하지? 후배한테 원빈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치고 왔는데?"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정영범 대표가 던진 이야기.

"부장님, 사실 저희 회사에 시트콤에 딱 맞을 친구는 따로 있습니다. 코미디 연기가 탁월하고 애드립이 뛰어난 친구죠. 그 친구를 데려가시면 서로에게 절대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누군데?"

"양동근이라고요."

 

한편 나는 논스톱 작가들과 함께 대본회의를 하고 있었다. 

"원빈이 들어오면 말이야, 러브 라인을 누구랑 엮어주면 좋을까? 이제니? 이재은?"

그때 부장님이 돌아오셨다. 

"캐스팅 끝났다!"

"와! 그럼 이제 원빈 출연하는 건가요?"

"아니, 원빈 말고. 양동근이라는 친구가 하기로 했어."

 

원빈을 캐스팅하러 가서, 양동근을 대신 데려왔을 때, 당시 피디와 작가들의 반응이 어떠했을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솔직히 '우린 이제 망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양동근이 진짜 복덩이더라. '남자셋 여자셋' 이후 고만고만한 인물, 비슷비슷한 이야기로 식상해지던 MBC 청춘 시트콤에 양동근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주인공이 된다.

 

 

양동근이 논스톱에 나와 그렇게 신나게 코미디를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연출인 내가 초짜였기 때문이다. 난 시트콤 연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매일 시청자의 자세로 촬영에 임했다. 배우에게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시키기보다 배우가 하는 연기를 보고 '재미 있다, 없다'만 말해줬다. 양동근같은 친구는 그 정도만 해도 알아서 막 이것저것 만들어주더라. 대본의 틀 안에서 놀 수 있는 배우를 만난 덕에 깨달았다. 연출은 배우에게 뛰어놀 너른 품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대본에 여백을 충분히 비워둔 상태로 촬영장에 나간다. 나만의 정답을 빽빽히 대본에 적어나가면 배우나 스태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어찌보면 인생에 정답은 없다. '이것 아니면 안돼!' 그런 것도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소중한 답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나만의 답이다. 드라마 피디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방송 시작하고 나서 캐스팅을 후회하는 일이다. '역시 식상한데, 그때 신인을 쓸걸 그랬나?' '아, 그때 출연료를 따블로 주고라도 톱스타를 썼어야했어.' 이런 후회 의미없다. 작품을 하는 동안은 내 배우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달려야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머리속에 정답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와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성격이 있고 생각이 있는데.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못이 있으면, 못으로 쓰고, 바늘이 있으면 바늘로 쓰면 됩니다. 그런데 서툰 목수는 굳이 못을 두들겨 가는 바늘로 만들려하고 바늘을 녹여 못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바늘이 있으면 바느질을 하고 못이 있으면 못질을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사물의 본래 성질을 존중하고 쓰임새대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고유한 성질을 존중해줘야 한다. 부모 마음대로 구부리고 두들긴다고 바뀌는 건 아니다. 괜한 간섭으로 서로 피곤해질 뿐이다. 물론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 공부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키워야한다. 부모 되기 쉽지 않다.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더라. 결혼한다고, 돈 번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더라.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 살아보니 나를 키워준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되고, 그제야 어른의 마음을 알 것 같더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아이를 문제삼기보다 나를 돌아본다. 나의 육아는 혹시 아이의 본래 성질에 반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공부는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삼가고 또 돌이키는 마음으로 나를 돌아본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가 되는게 아니라, 그때부터 부모 공부는 시작이다. 내게 좋은 공부를 시켜주는 두 딸에게 감사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부모 말 죽어라 안듣는 아이를 대하는 법을 고민해보겠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육아일기를 써야지! 결심했는데 막상 실천은 참 어렵네요. 엊그제도 게임하다 엉뚱한 룰을 고집하는 민서랑 대판 싸웠다는... 마흔 일곱 나이에 일곱살 짜리 딸이랑 싸우고 있으니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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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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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0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4.01.12 0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그런가요?
      갑자가 숙제가 생겨서 다른 일을 좀 하느라...
      제가 하나에 꽂히면 두가지를 동시에 못하는 타입입니다.
      그러다보니 연재한다고 하고 빼먹는 경우도 종종 생기죠.
      이해해주세요. 돈 안 받고 오로지 개인의 열정으로만 하는 일이라. ^^

      댓글, 매일 매일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있어요.
      자꾸 그러다보면 거기에 또 얽매이더라구요.
      그래도 준우맘님의 응원, 늘 감사하고 있어요.
      혜인이한테 슬쩍 찔리셨나봐요?
      닉에 추가해주신걸 보면?

      그래도 왠지 엄마 아빠들은 항상 첫째 이름으로 불리는 거 같아요.
      아이 이름을 둘 다 배려해주시는 마음이 이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