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에 올린 임승수 님의 특강 반응이 좋아 속편을 올립니다. 첫 책을 쓰고 저자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 쓰고 하루 500만 원짜리 호텔방에서 묵다.         --- 임승수

 

내가 쓴 첫 책은 2006년에 출간된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다. 2004년에 사람들을 모아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수집했던 베네수엘라 관련 자료들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2주마다 한 번씩 모여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연구 성과를 담은 책이다. 솔직히 책을 내면서도, ‘베네수엘라라니! 이런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스러운 책을 누가 사겠나’는 생각에 첫 책을 출간한다는 사실 자체에만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국내 최대 규모 서점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보니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가 베스트셀러를 진열해 놓는 벽에 걸려 있는 것 아닌가. 이때부터 그동안 살면서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을 내기 전에는, 신문은 그저 나에게 아침마다 열심히 읽어야하는 것으로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 무려 ‘나’를 취재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2006년 12월 15일자 한겨레신문에서는 책을 다루는 지면 중 한 면을 전부 할애해서 내 인터뷰 기사를 다뤘다. 2006년 12월 9일자 경향신문에서는 저 뒤쪽의 책면이 아니라 무려 맨 앞 종합면 2면에 3단짜리 중량감 있는 기사를 써서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과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에 대해 조명했다. 기사로 크게 다뤄지니 책은 탄력을 받아 더 잘 나갔다. 지금껏 1만부 가량 판매됐으니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적지 않게 나간 셈이다.

 

당시 나는 진보 성향의 민주노동당에서 서울시당 교육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원 및 당 간부들이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를 많이 읽었다.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당원이 늘어가면서 당 내부에서는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여러 진보적 정책들을 직접 살펴보고 베네수엘라의 집권당과도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을 만들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을 펴낸 나는 자연스레 그런 움직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당시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던 로물로 리코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내가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관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일이 잘 추진되어 2007년 1월 26일부터 5일간 베네수엘라를 공식 방문하게 됐다. 당시 해외여행이라고는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강연하러 갈 때 딱 한 번 탔던 것이 전부였던 내가 졸지에 지구 반대편 시차 13시간 30분의 거의 낮과 밤이 정확히 반대인 베네수엘라를 가게 됐다. 우리 측에서는 항공경비만 대고 베네수엘라 체류 동안의 모든 비용과 편의는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제공하는 일정이었다. 우리 측이 부담해야 하는 항공경비는 당의 공식 일정인 만큼 당의 재정으로 상당부분 지원됐다.

 

‘도대체 책 한 권 썼을 뿐인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의 스승, 임승수 님과 그의 첫 책.)

얼떨결에 신문 두 군데서 책에 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더니, 느닷없이 베네수엘라를 공식 방문하게 됐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 줄줄이 이어져 넋이 나가 있다가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캐나다를 경유해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베네수엘라 정부 관계자가 우리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공항 밖에서 우리를 태우려 대기하고 있는 차는 무려 ‘벤츠’ 미니버스. 당시 직장 때려치우고 민주노동당 활동 하느라 바싹 마른 개울바닥 같은 재정상황으로 인해 자동차 소유는 언감생심이고 운전면허조차 없었던 나인데, 승용차는 아니지만 어쨌든 벤츠를 타보다니!

 

체류기간 동안 우리를 도와줄 베네수엘라 외교부 직원 다니엘라 세고비아와 인사를 했다. 계란형의 얼굴, 단정하게 빗어 뒤로 묶은 머리, 크고 또렷한 눈에 오똑한 코, 시원하고 큰 입은 전형적인 베네수엘라 미인의 모습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최고 명문 대학인 중앙대학을 나온 재원이기도 했다. 당당하게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소개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저 책 한 권 썼을 뿐인데…….

 

다니엘라 세고비아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진다. 통역을 통해 사정을 들어보니 원래 우리 일행이 묵기로 한 호텔에 방이 꽉 찼다는 것이다. 다니엘라는 난감한 얼굴로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일이 많이 꼬인 듯 했다. 어쩐지 책 한 권 쓴 것 치고 모든 것이 너무 술술 잘 풀린다 싶더니만. 한참을 여기저기 통화하던 다니엘라 세고비아가 우리 측 통역에게 뭐라고 얘기를 한다. 원래 묵을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호텔 이름은 그란 멜리아. 베네수엘라 최고급 호텔로 숙소가 변경된 것이다! 그곳 외에 다른 호텔들은 객실 여유가 없었던 듯싶다. 참으로 바람직한 결과 아닌가.

 

우리 일행 8명에게는 1명 당 객실이 하나씩 총 8개의 객실이 배정됐다. 베네수엘라 최고급 호텔이라니 기대감을 가지고 객실로 들어갔는데, 잉? 카페트가 깔린 공간에 그럴듯한 책상과 의자만 놓여 있고, 침대가 없는 것 아닌가. 온돌방도 아닌데 침대가 없다니. 아무리 우리가 풍찬노숙에 단련된 운동권 정당 민주노동당이라고는 해도 어떻게 객실에 침대가 없을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런데 책상을 바라본 상태에서 왼쪽 방향으로 뭔가 밀어서 열 수 있는 문 같은 것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열어보니, 침대가 놓인 근사한 공간이 별도로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처음에 봤던 공간은 집무실이고, 침실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뭐랄까. 나 자신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계급적 위화감이 드는 공간에 놓인 기분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보다. 우리 일행은 다들 뭔가 상당히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 중 리츠칼튼 호텔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이 나에게 건넨 얘기는 놀라웠다.

 

“승수씨. 리츠칼튼으로 치면 여기 하루 500만 원짜리 방이에요.”

 

알고 봤더니 외국에서 장관급 인사가 오면 내주는 객실이란다. 우리는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이 적응 안 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천막농성과 가두시위에 강한 우리들은 사실 이런 대접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이런 경험 자체가 없었다. 게다가 1명 당 객실 하나씩 총 8개의 객실을 우리에게 내줬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물론 우리가 비용을 치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민폐를 끼치는 느낌이랄까. 하루 500만원이라고 치면 4박에 2000만원이다. 그런데 객실 8개니 1억 6천만 원 아닌가.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우리는 바퀴벌레 돌아다니는 여인숙 체질인데. 그런 이유로 회의에서 최대한 객실을 줄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가능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객실을 같이 쓰고 남는 방은 반납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모아졌다. 그래서 우리 측의 의견을 다니엘라에게 전했더니 20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다시 서류 처리를 하는 것이 더 번거로우니 그냥 1인당 하나씩 사용하란다. 허, 그거 참. 나는 그저 책을 한 권 썼을 뿐인데…….

 

최고급 호텔이라 식사도 문화충격이었다. 태어나서 이곳에서 바로 랍스터를 처음 먹어봤다. 언제 이런 거 먹을 수 있겠냐는 생각에 랍스터 위주로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사실 다른 음식들도 비싼 것 같았는데, 뭐 이름을 알아야 말이지. 밥 먹는데 현악사중주를 ‘쌩’음악으로 들려주더라. 적도 부근을 지나는 베네수엘라인지라 밖은 푹푹 찌는데 내가 묵는 객실은 감기가 들 정도로 춥다. 세수하고 나서 수건으로 얼굴 닦다가 혹시나 해서 수건의 재질을 확인해보니 페루산 양모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럭셔리한 5일이었다.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 덕택에 워낙 정신이 혼미하다보니 내가 가진 유일한 양복, 파크랜드에서 산 그 단벌 양복을 객실 옷장에 놓고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놓고 온 양복이 아까워서 두고두고 후회를 했겠지만, 이상한 건지 당연한 건지 양복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마 양복값 제하고도 훨씬 남는 장사라 그런가보다.

 

이렇듯 인생 첫 책에서부터 나는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 책은, 책을 쓰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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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임승수님의 글을 빌려와 쓰고 고민이 살짝 되었어요. 괜히 경쟁률 이야기를 해서 피디를 꿈꾸는 이들에게 찬 물을 끼얹은 건 아닐지... 

 

2014/01/05 - [공짜 PD 스쿨] - 망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여러분, 인생에서 중요한 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자세입니다. 어렵다고 지레 겁먹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일단 뭐든지 해봐야합니다. 작은 일이라도 자꾸 시도해보고 조금씩 조금씩 성취의 즐거움을 맛봐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바뀌고, 내가 바뀌어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바뀝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일단 한번 몸을 던져봅시다. 

쫄지 말고! (후렴구는 여러분이 직접 붙여주세요. 총수님 식으로~^^)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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