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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오리지날 청춘 멘토의 강림

by 김민식pd 2013. 4. 12.

불행하게도 나는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고교 시절 왕따로 살며 무척 힘들었는데 어느날 그걸 알게 된 부모님이 학교에 연락을 했다. 부모님 역시 선생님이기에 동료 교사에게 아들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한건데,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혼을 내셨다. "친구를 괴롭히면 안된다." 그날 이후, 왕따는 더욱 심해졌다. 아, 놔~ ㅠㅠ

 

대학에 들어와서도 좋은 교수님을 만나지도 못했다. 나는 대학이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는 곳일 거라 기대했는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1970년대 광산학과가 모태였던 학과인지라 석탄 채굴학을 가르키는 교수님이 계셨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 중 광산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그 교수님은 학생들이 원하는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시면 좋으련만 꿋꿋이 자신의 전공 과목만 고집하셨다. 그것도 항상 전공 필수로 지정하면서... 아, 놔~ ㅠㅠ

 

다행히도 나의 행운은 MBC 입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선생님 복이 없었던 대신, 멘토 복이 있었다.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 대신 지혜를 전해주는 멘토들을 만났다. MBC에서 만나는 선배 연출가들은 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멘토였다. 그 중 최고의 멘토는 주철환 선배님이시다. MBC 입사하고 6개월간 수습 과정을 거쳤는데, 그때 신입 피디 교육을 담당하신 분이 주철환 선배님이었다. 피디의 4가지 역할, 예능인 Entertainer, 예술가 Artist, 언론인 Journalist, 사업가 Businessman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연출가에게 필요한 품성에 대해 가르치셨다. 네 가지 품성 중 자신의 꿈이 예능인에 가까우면 예능 피디를, 예술가에 가까우면 드라마 피디를, 언론인에 가까우면 교양 피디를, 사업가에 가까우면 편성 기획 피디를 하면 된다.  

 

철환형에게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그 인사 습관이었다. 철환형은 회사 복도를 가다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한다. "엊그제 휴먼 다큐 사랑으로 대박을 낸 해진이 아니야~" "책 많이 읽는 정아 아니야~" 이게 정말 대단한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 그 사람의 장점으로 그 사람을 불러준다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알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장점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한번 만난 사람도 다 이름을 기억해뒀다니 자상하게 불러주셨다. (한번은 살짝 여쭤봤다. "선배님, 그래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럴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럴때일수록 더 크고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하지. '아니, 이게 누구야!' 하면서." ^^) 

 

연출 초년병 시절, '뉴논스톱 연출일기'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어느날 지나가던 선배님이 복도에서 이렇게 부르셨다. "글 잘 쓰는 민식이 아니야~" 정말 부끄러웠다. "아이고, 제가 감히 선배님께 그런 칭찬 들을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철환형은 진지하셨다. "민식아. 넌 나중에 꼭 책을 쓰도록 해봐. 책을 쓰는 것 만큼 좋은 일도 없거든." 윗어른이 이런 칭찬을 하면 보통의 반응은 이렇다. "아이구, 선배님, 과찬이십니다. 제 주제에 무슨!" 그러나 주철환 선배님은 항상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진지하게 칭찬을 하시기에 듣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그 칭찬에 빠져든다. 진심이 담긴 칭찬에는 주술의 힘이 있다. 그 분위기에서는 웬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나도 책을 한 권 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농삼아 이렇게 여쭸다. "선배님, 제가 혹시 나중에 책을 쓰면 추천사는 선배님이 써주실거죠?" 그러니까, 작년에 내가 책을 낸 건, 멘토이신 주철환 선배님의 가르침을 행한 것이고, 그 뒷표지에 주철환 선배님의 추천사가 실린 것은 선배님께서 10년 전의 그 약속을 행한 덕분이다.

 

'처음 보았을 때 한눈에 들어온 건 타이거 우즈였다. 우즈는 이성을 밝히다가 '쓴' 맛을 봤는데 민식이는 세상을 밝히다가 '쓴' 맛을 보는 중이다. 오해는 마시라. 그가 쓴 건 돈이 아니라 글이다. 힘깨난 쓰는 가짜들이 득세하는 이 쓰디쓴 세상에 장하다, 우리 민식이.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명랑사회 건설의 선봉장이 되었구나.'

- 주철환 선배님의 '공짜로 즐기는 세상' 추천사

("명랑한 민식이 아니야~" 도 선배님이 자주 불러주시는 이름인데, 이보다 더 고마운 칭찬도 없다.)

 

청춘 멘토, 청춘 멘토 하지만, 주철환 선배님이야말로 오리지널 청춘 멘토다. 그 분은 청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평생 청춘으로 산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으로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산다. 국어 선생님으로 경력을 시작하신 선배님은 이후 피디로, 교수로, 저술가로 항상 큰 가르침을 전하며 사신다. '청춘'이라는 두 글자가 주철환 선배님의 인생동력이라 생각한다. 그 오리지널 청춘 멘토가 이번에 새로운 책을 내셨다. 

'더 좋은 날들은 지금부터 다'

 

 

 

제목부터 두근거린다. 이번엔 선배님께서 어떤 가르침을 전해주실까?

선배님,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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