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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나를 세 번 울린 뮤지컬

by 김민식pd 2013. 1. 8.

머리가 나쁜 탓일까? 난 본 영화를 또 봐도 흥미진진하고, 한 뮤지컬을 몇 번을 다시 봐도 재미있다. 특히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볼 때마다 눈물짓게 하는 포인트가 달라 그 풍부한 이야기에 감탄하게하는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을 처음 본 건 신혼 여행 때였다. 1주일간 뉴욕에서 머물며 매일 밤 뮤지컬을 봤다. 당시 예능 피디였기에 궁극의 무대 예술이라는 뮤지컬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당시 레미제라블을 보며 엄청 울었는데, 나를 울린 대목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 이었다. 짝사랑에 절절히 가슴 아파 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얼마나 슬픈지 알 것이다. 오랜 짝사랑 끝에 힘들게 결혼에 골인한 직후라 당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도 팬텀에 감정이입해서 꺼억 꺼억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못생긴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면 안되는 거냐!' ^^

 

7년 뒤 영국 런던에 연수를 갔다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다른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 일곱살난 큰 딸 민지에 폭 빠져있던 터라, 장발장이 코제트를 위해 헌신하는 대목에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특히 마리우스를 바라보며 '내 사랑하는 딸을 위해 너는 반드시 내가 살린다.'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가는건가?'

 

영화로 개봉한 '레미제라블'을 봤다. 이번에도 울었다. 이번에는 혁명군의 최후가 너무 슬퍼 같이 보던 아내가 놀라 쳐다볼 정도로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주위 사람들 보기 민망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눈물이 주렁주렁 달린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 새벽에 파리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버렸을까?" 아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사람들도 무서웠겠지."

 

작년 한 해, MBC 조합원들은 6개월간 파업을 했고 7명이 해고를 당했고 백여명의 동료들이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누군가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노조여,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국민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아내의 말대로 사람들은 두려웠던걸까? 기업이 망할까봐, 직장을 잃을까봐, 아파트값이 폭락할까봐, 북한이 쳐들어올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바리케이드를 버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가여움으로 바뀐다. '그래, 사람들은 단지 무서웠던 거구나... 바뀌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들을 버린 거구나.' 

 

나는 해고된 동료를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싸웠을 뿐이다. 아무도 싸우려 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 싸웠고 그 대가를 치룬 것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레미제라블을 보고 목 놓아 운건 해고된 정영하, 강지웅, 이용마,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때문이 아니다. 단지 프랑스 혁명군이 너무 가여워서 운 거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그건 장발장이 바리케이드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마리우스를 살리기 위해 하수도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파리 시민들의 배설물로 가득한 하수도를 허우적거리며 헤엄쳐 나가는 장발장의 모습. 나는 그 장면이 앞으로 5년간 내가 인생을 살아야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똥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한다.' 살아서 이 깜깜한 수로의 끝까지 가 본 사람만이 빛을 만날 테니까. 

 

뮤지컬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주인공은 소리높여 노래한다. 'When Tomorrow Comes'

'내일이 오면' 세상이 바뀔까?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일단 내일까지 살고 볼 일이라는 것이다.

같은 뮤지컬을 보고 다양한 포인트에서 울 수 있는 이유는 풍성한 경험 덕분이라 생각한다.

고로 지금의 시련은 미래 나의 연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영감이 될 것이다. 

고로 어떤 고난이 닥쳐도 감사하는 자세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오늘 하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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