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쁜 탓일까? 난 본 영화를 또 봐도 흥미진진하고, 한 뮤지컬을 몇 번을 다시 봐도 재미있다. 특히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볼 때마다 눈물짓게 하는 포인트가 달라 그 풍부한 이야기에 감탄하게하는 작품이다.

 

레미제라블을 처음 본 건 신혼 여행 때였다. 1주일간 뉴욕에서 머물며 매일 밤 뮤지컬을 봤다. 당시 예능 피디였기에 궁극의 무대 예술이라는 뮤지컬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당시 레미제라블을 보며 엄청 울었는데, 나를 울린 대목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 이었다. 짝사랑에 절절히 가슴 아파 본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얼마나 슬픈지 알 것이다. 오랜 짝사랑 끝에 힘들게 결혼에 골인한 직후라 당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도 팬텀에 감정이입해서 꺼억 꺼억 통곡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못생긴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면 안되는 거냐!' ^^

 

7년 뒤 영국 런던에 연수를 갔다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다시 봤다. 이번에는 다른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 일곱살난 큰 딸 민지에 폭 빠져있던 터라, 장발장이 코제트를 위해 헌신하는 대목에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특히 마리우스를 바라보며 '내 사랑하는 딸을 위해 너는 반드시 내가 살린다.'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 나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가는건가?'

 

영화로 개봉한 '레미제라블'을 봤다. 이번에도 울었다. 이번에는 혁명군의 최후가 너무 슬퍼 같이 보던 아내가 놀라 쳐다볼 정도로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주위 사람들 보기 민망해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눈물이 주렁주렁 달린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 새벽에 파리 시민들은 바리케이드를 버렸을까?" 아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사람들도 무서웠겠지."

 

작년 한 해, MBC 조합원들은 6개월간 파업을 했고 7명이 해고를 당했고 백여명의 동료들이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후, 누군가 사내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노조여,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국민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아내의 말대로 사람들은 두려웠던걸까? 기업이 망할까봐, 직장을 잃을까봐, 아파트값이 폭락할까봐, 북한이 쳐들어올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바리케이드를 버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은 가여움으로 바뀐다. '그래, 사람들은 단지 무서웠던 거구나... 바뀌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들을 버린 거구나.' 

 

나는 해고된 동료를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싸웠을 뿐이다. 아무도 싸우려 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 싸웠고 그 대가를 치룬 것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레미제라블을 보고 목 놓아 운건 해고된 정영하, 강지웅, 이용마,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때문이 아니다. 단지 프랑스 혁명군이 너무 가여워서 운 거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내 머리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한 장면이 있다. 그건 장발장이 바리케이드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 마리우스를 살리기 위해 하수도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파리 시민들의 배설물로 가득한 하수도를 허우적거리며 헤엄쳐 나가는 장발장의 모습. 나는 그 장면이 앞으로 5년간 내가 인생을 살아야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똥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한다.' 살아서 이 깜깜한 수로의 끝까지 가 본 사람만이 빛을 만날 테니까. 

 

뮤지컬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주인공은 소리높여 노래한다. 'When Tomorrow Comes'

'내일이 오면' 세상이 바뀔까?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일단 내일까지 살고 볼 일이라는 것이다.

같은 뮤지컬을 보고 다양한 포인트에서 울 수 있는 이유는 풍성한 경험 덕분이라 생각한다.

고로 지금의 시련은 미래 나의 연출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영감이 될 것이다. 

고로 어떤 고난이 닥쳐도 감사하는 자세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오늘 하루도.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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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이짱 2013.01.08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 글을 좋아하는 팬입니다.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는 울지않았는데.. 피디님 글을 보이 눈물이 납니다. 출근버스에서 눈물을 훔치는..으 창피..

  2. 아자哲民 2013.01.08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벅차 오르는 포스팅이네요.

  3. Bentley 2013.01.08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는 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오늘도 좋은 글 포스팅 감사합니다 :)

  4. 바다해 2013.01.0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리케이드안에서 시민들을 기다리는 그들.창문을 닫아버리는 시민.그리고 맞이하는 새벽
    다시 생각해도 먹먹하네요.내가 나고 자란 대구에서 묻지마보수의 생얼을 제대로 본 지난 대선기간동안의 느낌은 여긴 참 어렵고 무서운 동네라는것이였어요.80%의 득표율을 확인하는 순간 이웃들이 첨으로 미웠어요.부지런하고 정많고 선하기까지만 사람들을....그래도 따뜻한 세상이되었음 하는 기대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몇몇의 소식들이 앞으로 5년이 참 힘들것같은 지금 레미제라블 " 내일은 오리라" 마지막 자막이 생각납니다.

    • 김민식pd 2013.01.09 0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80년 광주가 간첩들이 일으킨 폭력 사태로 배웠다가 대학에 간 후,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경상도 출신이라는 부채의식은 참 없어지기 어렵군요. 특히 지난 대선의 결과로 광주 민주화운동 다음가는 마음의 빚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떡합니까. 그래도 살아서 이 빚을 갚아야지요.

  5. 레미제 2013.01.08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보고 광주 사람들 피가 끓을 줄 알았다...
    원래 그런가...?

  6. 2013.01.08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3.01.09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정말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반복된 교육의 습관이 저도 모르게 드러났군요.
      따듯한 지적, 고맙습니다!
      네, 맞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7. 2013.01.08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3.01.09 0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저도 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답니다. 제 나름의 즐거운 분위기가 있는데 혹시나 다음 작품이 너무 무거워지지는 않을지 살짝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더욱 기대됩니다. 이 다음에 만들 무언가가... ^^

  8. han 2013.01.08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봐요 김 피디님.당신이 을의 처지로 당한거만 생각하지 말고 갑의 처지에서 저지른 거도 생각해가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해고된 동료 pd를 생각할때 pd의 횡포에 시달렸던 연예인들도 생각해보기를.

    • 김민식pd 2013.01.09 0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맞는 말씀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다만 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은 혼자 조용히 하고,
      블로그에서는 공론화가 필요한 언론 탄압에 대해 소리높여 떠들려고요.
      그게 내 인생에 대한 예의이고, 내 주위 세상에 대한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9. 윤재리 2013.01.08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레미제라블 영화 이번에 처음봤는데 저역시 감동받았었습니다..ㅋㅋ 전 장발장이 코제트를 떠날때 너무 슬펐어요.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딸을 마리우스에게 남겨두고 혼자 가버릴 생각을 하다니..

  10. 2013.01.09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2013.01.09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똑바로 걷자 2013.01.09 2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동생과 지난 대선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이영화를 봐야겠다 약속했어요..
    보기 전이지만 벌써 마음이 아려 옵니다.
    맞아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기다려야 빛을 볼 수 있겠지요.
    적절한 시기에 좋은 영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치료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PD님도 힘내세요^^

  13. 메이드인헤븐 2013.01.22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피디님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가 블로그섹션보고 기웃거리다 이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저는 대선날 새벽에 투표하고 가족들과 조조영화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영화본 다음에는 모두가 행복할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가슴벅찬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이번달에 한번 더 봤는데요.
    피디님말씀을 들으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감사합니다.
    어떤 정부나 정치세력이건 국민을 중심으로 힘써나간다면
    더 좋은 대한민국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깨어있는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소리를 계속 내어간다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될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14. 새벽단비 2013.01.24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학은 인간 삶의 축소판이죠. ㅠ 한국 현실에서는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도 있고, 내 목숨을 버릴 만큼 딸을 사랑하는 딸바보 아버지도 있고, 언론 자유를 부르짓는 언론인들도 있는데... 자베르 경감같이 법 앞에 충실한 사람만 없네요... 불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도 작품 개관만 알았지 이렇게 삶과 연관시켜 글 한 번 안 써봤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좋은 포스팅 아프게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