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걷기 여행을 하다가 뜻밖의 사건을 만났어요! 스페인 광장에 갔는데, 저 멀리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설마?"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평소 좋아하던 김대식 교수님이었어요. 깜놀!

예전에 읽었던 김대식 교수님의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오늘은 그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AGI란 무엇일까요? AI가 인간의 특정 능력 하나를 대신하는 기술이라면,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는 인간의 대부분, 혹은 모든 지적 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입니다.
AI는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좋은 일에도 활용할 수 있고, 나쁜 일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아직까지 AI가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AGI가 등장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어요. 인간의 거의 모든 지적 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가 탄생한 이후에도 그 지능이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요.
2025년 상반기, 판교의 여러 게임 회사들이 더 이상 신입 직원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기존 인력은 유지하되, 신입사원을 뽑아 실수도 하게 하고, 선배들에게 배우며 몇 년에 걸쳐 숙련 인력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특히 개발자와 디자이너 직군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AI가 가장 빠르게 발전시킨 분야 중 하나이고, 소프트웨어 개발 역시 AI가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영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신입을 육성하는 대신, AI와 소수의 숙련 인력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1995년에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통역사에서 피디로 직업을 바꿨습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19세기, 20세기, 산업혁명의 결과, 인간의 육체노동은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다. 21세기 정보 혁명의 결과, 인간의 정신노동을 컴퓨터가 대신하게 된다.” 심지어 2,30년 내로 컴퓨터의 언어 정보 처리 능력이 개선되면 번역과 통역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나온다고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 일자리는 무엇일까요? 리프킨은 지식의 1차 생산자가 되라고 했어요. 번역이나 통역 같은 지식의 2차 생산은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어도, 지식의 1차 생산을 컴퓨터가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요. 책을 읽고 영상 미디어 콘텐츠의 1차 생산자가 되기 위해 피디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 공중파 방송의 시대가 저무는 걸 보고 작가로 이직했지요. 요즘 저의 고민은요. 생성형 인공지능이 글도 잘 쓰고 영상도 잘 만들어요. 과연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만약 AGI가 인간 수준의 지적 노동을 수행하고, 더 나아가 자동화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지적 노동력 자체가 대량 생산되는 시대가 열릴 수 있습니다. 제조업에서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던 것처럼, AGI는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피디와 작가의 일자리도 안전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세기 초가 공산품의 대량 생산 시대였다면, 21세기 중반은 지적 노동의 대량 생산 시대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역사를 돌아보면, 대규모 실업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대표적 사례가 있어요. 바로 후기 로마 공화정입니다. 김대식 교수님은 책에서 로마 시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로마의 시민군은 대부분 농부였는데요. 농민군은 봄에 씨를 뿌리고 전쟁에 나갑니다. 그리고 가을, 수확하기 전에 반드시 돌아와서 수확을 해야 했습니다. 이걸 원정 캠페인이라고 부릅니다. 봄에 나갔다가 가을에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문제는 로마군이 싸움을 너무 잘했다는 거죠. 할 때마다 이겨요. 그러니 영토가 점점 넓어집니다. 나중에는 저 멀리 장거리 원정도 떠나는데요. 수확기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생겨요. 병사들이 돌아오지 못해 수확을 못해요. 남은 식구들은 먹고 살기 위해 귀족에게 농사지은 땅을 담보로 식량을 빌려요. 귀족들은 노예를 동원해 수확을 하고요. 다음해에도 남편이 돌아오지 못하거나,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면 빚을 갚지 못해 토지와 재산을 잃는 이들이 늘어났어요. 빚을 갚지 못해 노예로 전락하는 이들도 생기고요.
당시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노예가 로마 전역을 통틀어 무려 1,000만 명 이상 있었다고도 합니다. 노예는 말 그대로 무료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동의 가치가 0이 되어버린 겁니다. 토지와 자본을 가진 귀족들은 값싼 노예 노동을 활용했고, 일반 시민의 노동 가치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중산층은 몰락했고 실업과 불평등이 심화되었습니다. <로마의 일인자>라는 소설을 보면 이 시절 귀족과 평민들이 겪는 갈등에 대해 끊임없이 묘사됩니다.
생계가 어려워진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로마는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형태의 기본소득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무료 오락과 대형 경기장, 목욕탕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제공했어요. 로마에 남아 있는 유적 대부분이 엔터테인먼트 시설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욕탕은 동시에 수천 명이 목욕과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시설이었습니다. 콜로세움은 2,000년 전에 지은 반실내 경기장인데 관객 5만 명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해전까지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정도 규모의 경기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콜로세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온라인에 있습니다. 가수, 배우, 희극인 등이 만든 문화를 온라인으로 소비합니다. 정치인이나 작가들의 활동 역시 온라인에서 소비됩니다. 관중들이 환호하며 띄우는 이들도 있고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안전할까요? CCTV가 있고, 블랙박스가 있고, 온라인 게시판이 있어요.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순식간에 빌런으로 등극할 수 있어요. 때로 온라인상에 달리는 악플은 콜롯세움의 관중의 야유처럼 들립니다. 악플이 이제는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인간에겐 욕구 피라미드라는 게 있습니다. 가장 아래는 의식주, 그다음이 사랑, 안전, 자아실현 같은 것들입니다.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하는 일, 커리어가 있어야 하는데요, 인공지능의 시대에 자신의 일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답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그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1995년에 제가 <노동의 종말>을 읽고 했던 생각이 있어요. 만약 통역이나 번역을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면, 굳이 힘든 통역을 꾸역꾸역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번역은 기계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되지 않을까? 당시 제가 좋아하던 일 중 하나가 미국 시트콤 시청이었어요. ‘이 재미난 시트콤이 왜 한국에는 없지?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 그래서 MBC에 입사해서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그 시트콤이라는 장르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고 말았지요. 괜찮아요. 나는 항상 새로운 재미를 찾아가니까요. 어느 순간 회사에서 내가 할 일이 사라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여가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블로그에 독서 리뷰를 올리고 있고요. 아마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작업을 할 겁니다. 읽고 쓰고를 무한 반복하면서 살고 싶어요. 읽고 싶은 책도 쌓여 있고 쓰고 싶은 글도 많거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한 반복, 가능합니다.
어떤 일을 정말 좋아하잖아요? 그럼 그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해요. 유튜버도 좋고, 블로거도 좋고, 강연자도 좋아요. 내가 살면서 깨달은 즐거움은 나누며 살아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콜롯세움의 무대에 오르겠지요. 비난도 받고 때로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할 겁니다. 괜찮아요. 나는 사람의 선의를 믿습니다. 어디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삽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평생 일자리의 종말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통역사에서 PD로,
PD에서 작가로, 작가에서 유튜버로. 그런데 기술의 발달은 참 끈질기네요. 제가 도망가면 또 따라옵니다. 이제는 도망치지 말고 같이 놀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미래는 모르니까요.
오늘도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쓰고, 산책 한 시간 다녀오겠습니다.
인간이 아직 AI보다 잘하는 게 있다면, 쓸데없이 행복해지는 능력 아닐까요?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평생의 화두를 안고 오늘 하루도 즐겁게 살아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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