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배우인 차인표 님이 새 책을 내셨습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차인표 / 사유와공감)
작품에는 매일 동네 도서관으로 출근해 소설을 쓰는 작가 ‘나’가 등장합니다. 그는 고구려의 화공 ‘번각’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번각은 묘실화를 그리는 화가입니다. 자신이 직접 본 것 외에는 결코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지요. 어느 날 한 귀족이 그에게 자신의 묘에 들어갈 벽화를 그리라고 명령합니다. 한때 나라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릴 때, 자신이 용을 잡아 비를 내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귀족은 평생의 최대 업적인 용 사냥 장면을 묘화에 담으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번각은 용을 본 적이 없습니다. ‘본 적 없는 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여기서 화공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시련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인생은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문제는 그 증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30년 전에 하던 통역과 번역도 이제는 인공지능이 거의 공짜에 가까운 비용으로 척척 해냅니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신해 일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야 할까요?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소설가에게는 자격증이 없기에 소설가임을 증명할 유일한 도구는 내가 쓴 소설뿐이다.”
이 대목에서 오래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피디보다 작가라는 직함이 더 좋습니다. 피디는 누군가가 나를 뽑아줘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30년 전 MBC가 저를 뽑아주었기에 저는 피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중고생 진로특강을 가면, 유튜버가 되는 게 꿈이라는 친구들을 봅니다. 유튜브는 누가 뽑아주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이 더 치열하고, 존재의 증명이 더 어려운 일 아닐까요?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왔을 때, 피디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거든요. (그렇다고 강원국 작가님의 책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매년 한 권씩 책을 냅니다. 어떤 일이 직업이 되려면 꾸준히 생산물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힘든 일을 해낼 수 있는 비결은 루틴입니다. 매일 꾸준히 읽고, 씁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하루를 벼리는 차인표 작가님의 치열한 습관이 담겨 있는데요. 차인표 작가님이 글쓰기 습관을 만든 비결, 장소와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그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확인하는 대신, 오늘 해야 할 일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짧게라도 글을 씁니다.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라 반복입니다.
그 행동이 쌓여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반복하는 행동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매일 도서관을 찾는 작가의 눈에는 책들이 들어옵니다.
“책장의 책들은 서 있다. 만들어질 때부터 서 있게 될 것을 예견한 듯 책등의 제목도 대부분 세로쓰기로 적혀 있다. 서 있는 책은 읽을 수 없기에 죽은 책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누워서 죽지만, 책은 서서 죽는다. 죽은 책을 살리려면 누군가 책장에서 뽑아 펼쳐 들고 읽어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독자뿐이다.”
저는 쓰는 사람 이전에 읽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스물한 살 때 울산 남부시립도서관에서 1년에 200권의 책을 읽고 다독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이후 평생 매년 100권 이상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요즘도 저는 도서관에만 가면 가슴이 뜁니다. 서 있는 책들이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나를 데려가요.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책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독서란 죽은 책을 다시 살려내는 고귀한 행위라는 것을요.
소설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작가는 번각의 고민을 좇습니다. 본 것만 그린다는 신념을 지키자니 목숨이 위태롭고, 목숨을 지키자니 본 적 없는 존재를 그려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소설가의 고민과도 닮아 있습니다. 허구를 통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의 숙명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번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작가의 앞에 어느 날 실제 용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용은 영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에요. 오히려 작가의 욕망과 한계를 들추어내며 혼란을 안겨줍니다.
결국 작가는 동네 도서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왜 쓰는가’, ‘무엇을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갑니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짬뽕을 시켰다. 내가 짬뽕을 좋아하는 이유는 육해공 재료가 어우러졌음에도 따로 놀지 않고 잘 섞여 고유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이 짬뽕 같은 소설이 되면 좋으련만... 섞일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어우러진, 독특하고 고유한 이야기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경계를 넘는 자에게 보험은 없다. 미지의 세계가 기다릴 뿐이다.’
저는 매년 다른 주제를 선택해 책을 씁니다. 시간 관리, 관계 관리, 자산 관리, 건강 관리…. 평생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해 보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다시 글로 씁니다. 내 삶의 다양한 경험이, 내가 읽고 쓴 수많은 책이, 짬뽕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마도 실패하면, ‘웃기는 짜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요. ‘아니, 웃기는 짜장이네. 피디가 무슨 영어 학습서를 써.’ ‘대단한 자산가도 아니면서 무슨 재테크 책을 써.’ ‘의료 전문가도 아니면서 무슨 건강 서적을 쓰고 그래.’ 네, 웃기는 짜장이 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도서관에서 만난 한 노인이 평생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이 과연 책을 쓸 수 있을지 망설입니다. 그때 작가가 말합니다.
“선생님도 한번 써 보시죠. 대단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고 나면 대단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별 거 아닌 이야기도 정성 들여 쓰면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사람도 어떤 면에서 그렇잖아요? 보통 사람도 무대에 올려 조명을 비춰주거나, 카메라 렌즈 앞에 세워 클로즈업해주면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저는 이 문장이 제 삶의 태도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해요. 세일즈맨, 통역사, 피디, 교수, 작가, 다양한 직업 경험을 해 봤어요. 영업을 잘해서 세일즈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영업을 하면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잘해서 통역대학원에 간 것도 아닙니다. 영어 공부를 실컷 할 것 같아 통대에 갔습니다. 연출을 잘해서 MBC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피디가 되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글을 잘 써서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것도 아닙니다.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갖고 싶었기에 매일 글을 썼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고 소소한 일을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대단한 일을 해냅니다. 루틴은 우리 안에 힘을 만듭니다. 고난을 견디는 힘, 시련을 돌파하는 힘, 다시 시작하는 힘 말이지요.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평생 배우로 살아온 한 사람이 작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고난과 시련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야기.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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