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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문해력은 지적 지구력이다

by 김민식pd 2026. 5. 21.

지난 5월 5일에 장강명 작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강의 제목이 “AI 시대에 우리가 벽돌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장강명 작가님은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서 일어난 일을 취재해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을 냈지요. 강연을 다니면 이런 질문을 받는답니다. “인공 지능이 활약하는 시대에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칠 능력은 무엇인가요?”

앞으로는 파괴적 혁신의 시대가 옵니다. 갑자기 알파고가 나타나 바둑 기사들의 입지가 흔들렸어요. 최근에는 새로 뽑은 회계사들이 수습으로 일할 회사가 없어 곤란한 지경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어떤 일자리를 대체할지 알 수가 없어요. “이런 시대에 취업이 안 되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아이에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만약 앞으로 기본소득의 시대가 열리고,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일을 할 필요가 사라진다면? 그런 세상에서 아이가 방에 틀어박혀 종일 게임만 하고 산다면? 그래도 괜찮을까요? 무엇이 바람직한 삶일까요?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 내가 모른다면, 부모가 모르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좋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은 좋은 서사가 있는 삶 혹은 좋은 일상이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하는데요. 서사와 일상을 X축과 Y축으로 함께 구성하는 게 좋습니다. 

서사가 좋은 삶이란? 이야기가 있는 삶이지요. '어려서 가난하게 자랐으나 부모님 말씀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얻고 평생 성실하게 봉사하면서 산다?' 분명히 좋은 서사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스스로를 착취하는 삶일 수 있어요. 반대로 좋은 일상이 있는 삶이란? 하루하루가 즐거운 삶이지요. 그런데요, 마냥 즐겁기만 하면 좋은 삶인가요? 좋은 서사와 좋은 일상이 공존하는 삶이 진정으로 좋은 삶입니다.

책을 쓰고 강연을 할 때, 서사가 필요합니다. 제게 찾아온 고난과 시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피디였던 제가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하다 회사에서 징계 3종 셋트를 받고 잘리기 직전까지 갔던 일. 그냥 거기서 이야기를 멈춘다면 교훈은 ‘노조 활동은 안 하는 게 답이다. 괜히 나서봐야 피본다’가 되겠지요. 저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유배지로 쫓겨난 덕분에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 덕분에 지금은 작가가 되었고요.’라고 말합니다. 

서사는 언제 만들어질까요? 삶에 생각지 못한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서사 중에 최고의 서사는 고난 극복 서사이거든요. 그럼, 고난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일상의 힘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의지력으로 극복하는 건 힘들어요. 쉽고 단순한 루틴을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극복해야 합니다.

좋은 일상으로 좋은 서사를 일구어가는 삶을 응원합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신작,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을 읽으며 생각해봤어요. 요즘은 짧고 가벼운 콘텐츠가 시대의 미덕처럼 여겨집니다. 책조차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거나 “얇은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생각들은 결코 짧은 호흡 안에 담기지 않습니다. 인간과 사회, 역사와 철학, 문학과 사유의 깊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시도는 때로 두껍고 묵직한 형태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오래도록 살아남는 벽돌책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벽돌책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현실이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 인터넷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 쪽짜리 지식은 대개 엉성하거나 의미가 훼손된 상태임을 아는 것. 지적으로 겸손해지고 선동에도 덜 휘둘리겠지요. 한 쪽짜리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선동의 연료이자 불길이 되니까요.’

(위의 책, 100쪽)



우리 시대의 문해력이란 무엇일까요? 어려운 한자 단어를 많이 알고, 복잡한 문체의 글을 읽는 능력일까요? 저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의견을 참고 읽어내고,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견디어내는 능력이 문해력이라 생각합니다. 벽돌책은 독자에게 ‘시간’을 요구합니다. 긴 시간을 들여 읽고, 생각하고, 머물러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있어요.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우리의 정신을 조금씩 바꾸어놓습니다.

‘지적 지구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복잡한 사유를 견디지 못합니다. 모호한 문제, 불확실한 문제 앞에서 그는 얼른 단순한 설명을 찾으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성급하게 감정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의 결론을 그대로 따릅니다.’ 
(위의 책 150쪽)

저는 고난과 시련이 찾아오면 일단 책부터 읽습니다. 책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장강명 작가의 추천대로 벽돌책을 읽어야 할까요?

‘내용도 어려운데 두껍기까지 한 벽돌책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지루해서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벽돌책도 있습니다. 꼭 읽어야 하느냐고요? 그럴 리가요. 어떤 책을 미워하게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위의 책 335쪽)

억지로 벽돌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해력입니다. 저자는 문해력의 핵심이 어휘력이 아니라 지적 겸손이라 말합니다. ‘사흘’, ‘금일’, ‘심심한 사과’ 같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 있었죠. 해당 단어의 뜻을 모를 수는 있어요. 문제는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왜 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쓰느냐’며 화를 내는 태도입니다. 벽돌책을 읽으면 일단 겸손해집니다. 내가 모르는 내용에 대해 700쪽 넘게 두꺼운 책을 쓰는 저자가 있다는 사실에 겸손해지고요. 책을 다 읽고 덮을 때는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생기지요. 우리는 겸손함과 자신감이라는 양극단의 태도를 오가며 성장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벽돌책을 추천하는 책이 아니라 독서의 체력을 회복하게 만드는 안내서입니다. 아직 벽돌책 읽기에 도전해 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든든한 입문서가 되어주고요. 이미 깊은 독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자신의 독서 경험을 다시 정리하고 확장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긴 호흡의 독서가 주는 묵직한 기쁨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에 가서 새로 나온 책의 사인을 받는 일. 책벌레에게는 가장 행복한 어린이날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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