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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가 나빠진다?

by 김민식pd 2026. 4. 23.

하지현 선생님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나를 바꾸는가> 2번째 리뷰입니다. 월요일에 올린 1편을 먼저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만성적 스트레스는 우리의 건강을 좀먹습니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인지적 능력도 떨어트린다는 거죠. 연구자들이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경작하는 타밀나두주 농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어요. 추수 전과 추수 후 농부들의 생활에서 여유와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이건 당연하죠. 재미있는 건, 지능검사를 해보니 같은 사람도 추수 전의 검사에서 추수 후의 검사보다 25%나 낮은 점수를 받았어요.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이지만, 우리의 뇌는 가난하다는 것을 생존과 관련한 위협의 스트레스로 받아들입니다. 그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인지적 대역폭이 줄어들면서 주변을 여유 있게 둘러보거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거나 근시안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꾸 나쁜 선택을 할 정도로 인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라 가난해 진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가 만연한 상태에서 인지적 대역폭이 줄어들고 그래서 나중에 해가 되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스트레스가 많으면 머리가 나빠진다? 음, 적어도 더 길고 넓은 안목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는 여유는 사라질 것 같아요. 그 결과,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거죠. 그 결과 스트레스는 더 늘어나고요.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저는 20대 이후 평생을 매우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삽니다. 비결은 하나에요. 근검절약. 짠돌이로 살면서 평생 돈의 압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늘 모아둔 돈이 있었으니까요. 1992년 첫 직장에 들어가 월급 100만 원을 받으면 50만 원은 먼저 저축하고, 남은 돈 50만 원으로 생활했습니다. 2년을 그렇게 지내니 1년치 연봉이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사표를 내고 외대 통역대학원 입시반 학원에 다녔습니다. 만약 내게 모은 돈이 없었다면, 통역사에 도전하기보다 그냥 세일즈맨으로 평생 살았을 겁니다.

최근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서 어떤 분이 물었어요. “두 명의 결혼 상대 후보가 있어요. 한 사람은 200만 원을 벌어 100만 원을 저축하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1000만 원을 벌어 100만 원을 저축하는 사람. 피디님은 둘 중 누구를 선택하실 건가요?”

저는 전자를 선택합니다. 얼마를 벌던 자신의 수입의 절반을 저축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그는 갈수록 더 나은 경제적, 직업적 선택을 할 것이고, 언젠가는 300, 500을 버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럼 저축액은 200, 400으로 계속 올라갈 겁니다. 200을 받고도 100을 모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후자의 경우, 1000만 원을 벌지만 남는 건 100만 원밖에 안 됩니다. 못 벌어서 못 모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쓰는 게 너무 즐거운 사람이에요. 소비가 몸에 밴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은 1500이나 2000을 벌어도 여전히 100밖에 못 모읍니다. 처음부터 소득이 적어서 저축이 적었던 건 아니거든요. 이런 사람은 어쩌다 수입이 700이나 500으로 줄어들면 곡소리가 날 겁니다. 이 돈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며. 장기적으로 보아 누가 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저는 소득을 늘리려면 스트레스가 오지만, 지출을 줄이는 건 스트레스가 덜 합니다. 전자는 세상과 운이 따라야 가능하지만 후자는 나만 마음 먹으면 가능하거든요.

(책이 너무 좋아, 오티움에서 열린 저자 북토크도 신청해서 다녀왔어요. 사진은 그때 찍었어요. 이렇게 좋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쓴 저자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한 날들입니다. 참, 저도 북토크합니다. 5월 6일 저녁 7시 30분, 교보문고 보라쇼. 시간 되시는 분들 놀러오세요~) 

요즘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안세대>라는 책을 보면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의 SNS를 통해 비교를 너무 쉽게 자주하니까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비교는 왜 스트레스를 불러올까요? 비교는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가젤이라고 상상해봐요. 저 멀리 사자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옵니다. 이제 가젤도 죽도록 뛰기 시작합니다. 이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남들이 뛰면 같이 뛰는 겁니다. 왜 뛰는지 모르지만 일단 남과 비교해서 똑같이 하면 생존확률이 올라가요. ‘별일 아니겠지’하고 태평하게 풀을 뜯다보면, 사자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 쉬워요. 두 번째는 자신보다 딱 한 마리만 앞지르는 것입니다. 사자는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지 못해요. 다 같이 뛰기 시작했을 때 무리에서 제일 느린 가젤만 제끼면 살 수 있어요.

이것이 비교라는 본능적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남보다 여러 이유로 못하다고 여겨지거나, 다른 모두와 비교해서 나만 다르게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도 가슴이 두글거리고 머리가 쭈뼛 서는 수준의 스트레스 반응이 옵니다. 노숙자가 강남역엔 없고, 서울역에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역에 가면 나같은 노숙자가 많거든요. 나 혼자 노숙자인 것보다는 나같은 사람, 아니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는 곳으로 가야 살 수 있습니다.

적당한 수준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그랬어요.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는 경험이 존재하고,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성장과 행동의 동력이라고. 그것이 지나쳐 콤플렉스가 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비교와 열등감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잦은 비교는 옆만 보고 챙기느라 속도를 늦출 뿐입니다. 스트레스가 그렇듯 무엇이든 적당할 때가 가장 좋습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나를 바꾸는가>, 이 책을 읽고 느꼈어요. '하지현 선생님이 작정하고 쓰셨구나!' 현대인을 괴롭히는 스트레스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그 해결법까지 총정리하신 책입니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에 휘둘릴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다루며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지금 조금 힘들다면, 그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뇌가 과부하 상태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럴수록 더 많이 애쓰는 대신,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나를 회복시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모쪼록 스트레스를 줄이고 건강한 삶을 이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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