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마음이 복잡해질 때가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 보이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럴 때 저는 가끔 역사책을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정리됩니다. “아, 세상은 원래 이렇게 복잡했구나.” “나만 길을 잃은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도 그런 책입니다. 전범선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한겨레 칼럼을 읽다가였습니다. “가수가 글을 참 잘 쓰네?” 알고 보니 밴드 ‘양반들’의 보컬이더군요. 그런데 이력을 찾아보니 더 놀라웠습니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뮤지션이자 역사 전공자. 조합이 꽤 흥미롭지요. 그래서 이 책도 조금 독특합니다.
보통 한국사 책은 왕 이름과 연도를 외우게 만들지요. 하지만 이 책은 역사 속 인물들의 선택과 고민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의 실패를 보며 “아, 사람은 원래 이렇게 흔들리는 존재구나”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어떤 시대의 격변을 읽다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도 사실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저자는 증오의 도구가 된 역사를 내려놓고 진짜 치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자가 처음으로 소환하는 인물은 1860년에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입니다. 그는 당대 내로라하는 가문이었던 경주 최씨 집안 출신이지만, 셋째 부인의 아들인 서자였습니다. 경계인의 삶을 살며 할 수 있는 일도, 출세할 길도 막힌 상황에서 ‘조선은 왜 이 모양일까?’라는 삐딱한 고민을 하다 산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인내천,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하늘과 같이 귀하다’는 신념을 얻고 설파하게 되지요.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에서 죽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벽에 절하지 말고, 살아 있는 자신을 향해 밥을 놓으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정의 탄압을 받아 처형당하고 말지요. 하지만 그가 세운 천도교는 훗날 동학 운동과 3.1 만세 운동의 불씨가 됩니다.
최제우가 처형당했던 1864년에 태어난 인물이 바로 서재필입니다. 우리나라 원조 친미주의자입니다. 미국 이름은 필립 제이슨. 그는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입니다. 서재필은 원래 양반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과거에 급제합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신식 군사 교육을 받아요. 일본의 근대화와 발전상에 충격을 받지만 조선의 리더였던 고종은 근대화에 별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그는 유학 후 동지들을 모아 쿠데타를 계획합니다. 그가 1884년 일으킨 정변이 바로 갑신정변입니다. 갓 스무 살 서재필이 주도한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끝이 나요. 그는 일본인의 배에 숨어 타고 미국으로 달아납니다. 하지만 조선에 남은 그의 가족들은 삼족을 멸하는 엄벌을 받아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식 둘, 형제들까지 다 죽임을 당합니다.

혈혈단신 달아난 미국에서 그는 영어, 라틴어, 수학, 미국의 민주주의까지 공부하고 미국의 명문가의 사위가 되고 의사까지 됩니다. 그런 후, 고종의 초대로 조선에 돌아와요. 고종은 근대화의 기수로 서재필을 부른 거죠. 개화파의 삼족을 멸할 때는 언제고... 그는 미국의 독립 정신에 창안해, 독립문을 건설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합니다. 하지만 고종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서재필을 부담스러워해요. 결국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조선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법니다. 그러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요. 그걸 보고 ‘드디어 조선의 민중들이 깨어나 독립의 정신을 이해하게 되었구나.’ 감동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번 돈을 다 털어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요.
나중에 1948년 해방 후, 조선의 정세가 혼란스러운 때 서재필은 자신이 만들었던 독립문에 50여 년 만에 돌아와 연설을 합니다.
“불란서가 미국을 도와서 자주독립을 만들었지만 만일 미국 사람들이 자기 직분들을 안 할 것 같으면 암만 불란서가 미국을 도와주어도 자주독립이 못 될 것이올시다.”
미국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영국과의 전쟁에서 이겼지만,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처럼 우리도 미국의 도움으로 일제를 물리쳤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거죠. 당시 남과 북이 싸우는 상황에 대해서도 충고를 던집니다.
“합하면 조선이 살 테고, 만일 나누면 조선이 없어질 것이요. 조선이 없어지면 남방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고, 북방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니 우리가 죽을 일을 할 도리가 있습니까? 살 도리를 하십시오.”
그러나 이 말을 하고 나서 바로 다음 해에 한국전쟁이 터졌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서재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봤을 때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을 한국사를 압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서재필의 충고가 다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뿐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며 ’죽을 도리‘를 하고 있잖아요. 부자와 빈자, 서울과 지방, 여자와 남자,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그래서 서재필이 말했던 미국의 정신, 즉 독립 정신이 무엇인지 되새기며 “살 도리들을 하십시오. 조선 사람이 합심해야 조선이 살고 안 그러면 죽습니다.”라는 당부를 꼭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나오는 태극기 이야기.
다른 나라의 국기는 오성기 성조기 욱일기, 별이나 해가 들어가 있어요. 다 빛으로 어둠을 정복하자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태극은? 원래 태극은 음과 양의 조화를 뜻하는 문양으로 흑백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나라 태극기는 빨갛고 파랄까요? 전범선 저자는 동해안 일출을 보다 문득 깨닫습니다. 아, 푸른 바다에서 떠오르는 빨간 태양이 태극이로구나. 즉 우리의 국기에서는 빛과 어둠이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힘을 합쳐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뜻을 담은 게 아닐까요? 그래서 책 제목이 ‘테라피’인가 봅니다. 역사가 서로 증오하고 반목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요.
역사 이야기는 늘 재미있습니다. 사람 이야기가 들어 있으니까요. 전범선 작가는 그 인간적인 지점을 잘 짚어냅니다. 학자의 설명처럼 딱딱하지 않고, 뮤지션 특유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역사책을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지금 내 삶을 돌아보고 있네?” 하는 기분이 듭니다.
좋은 역사책은 과거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세상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때, 가끔은 역사 속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은 처방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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