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은 어떤 삶일까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믿는 삶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늘 부족함에 시달립니다. 집에는 먹을 것과 물건이 넘쳐나고, 스마트폰만 열면 원하는 정보와 재미가 끝없이 쏟아지는 데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합니다. 요즘 가끔 드는 질문이 있어요. 우리는 부족해서 괴로운 걸까요, 아니면 너무 많아서 공허한 걸까요? 오늘은 우리가 결핍에서 벗어나 만족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책을 소개합니다.
<가짜 결핍> (마이클 이스터 저자 / 김재경 번역 / 부키 출판사)
수만 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먹을 것과 자원이 늘 모자란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아니, 당장 저만해도 어려서는 먹을 것과 재미난 것이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보냈어요. 그렇기에 우리의 뇌는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지요. 이제 우리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뇌는 여전히 옛 프로그램대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충분해도, 마음은 자꾸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의 핵심 개념은 ‘결핍의 고리(scarcity loop)’입니다.
첫째,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깁니다.
둘째, 결과가 예측 불가능할수록 보상은 더 강력해집니다.
셋째, 그 행동을 쉽게 반복할 수 있을 때 고리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이 구조는 슬롯머신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무한 스크롤, 온라인 쇼핑, 뉴스 확인 습관 등 우리의 일상 전반에 스며 있어요. 우리는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다음 콘텐츠를 기다리며 화면을 내립니다. “이번엔 더 재미있겠지?”라는 기대가 우리를 다시 손가락 움직임으로 이끕니다. 그렇게 결핍의 고리는 계속 강화되고 우리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가지요.
중독이란, 부정적인 결과를 무릅쓰고도 보상을 만성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인데요, 우리의 조상님들은 전부 중독자였어요. 초기 인류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도 대담한 사냥을 감행했으니까요. 미지의 세계 속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더 많은 것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탐색했습니다. 식량과 안전을 보상으로 얻기 위해 위협적인 기후, 야생동물의 공격, 험난한 지형을 견뎌 냈지요. 우리 조상들이 부정적인 결과에 굴복해 도전을 포기했다면, 즉 사냥 중에 팔이 부러졌거나 식량을 찾다 길을 잃고 배고파졌다는 이유로 다음 날 탐색을 반복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진작 멸종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중독자의 후손입니다. 우리의 몸속에는 위험을 무릅쓰고도 도전하는 중독의 피가 흘러요.
사람을 중독으로 이끄는 마약은 식물이 곤충을 상대로 개발한 방어 기제입니다. 암페타민, 코카인, 오피오이드, 니코틴, 알코올 같은 마약성 화합물은 식물이 곤충을 상대로 개발한 방어 기제입니다. 곤충이 식물을 먹기 시작하면 식물 내의 마약성 화합물이 식물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곤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게 그 원리입니다.
생태계에서 먹히지 않으려면 천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해요. 곤충이 식물을 먹다가 암페타민을 섭취하면 활동량이 많아져요. 빠릿빠릿 움직이다 천적에게 들켜서 잡아먹힙니다. 식물 승! 오피오이드는 오히려 곤충을 느리게 만듭니다. 빠른 천적을 만나면 잡아먹히지요. 식물 승! 어떤 화합물은 곤충의 생식 욕구를 사라지게 해요. 번식을 하지 않으면? 곤충의 수가 줄지요. 식물 승!
마약성 화합물은 애초에 인간을 겨냥해 진화한 결과물이 아니에요. 그건 곤충을 겨냥해 진화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곤충에게 처음 나타났던 유전자가 수억 년을 지나면서 우리 인간에게도 전해졌어요. 코카인은 코카잎에서 나옵니다. 잎에 함유된 코카인 화합물은 농도가 1퍼센트도 안 될 만큼 낮아요. 코카잎을 씹으면 배고픔이 가시는 것은 물론 지구력과 집중력을 높여 주기 때문에 고된 사냥이나 오랜 탐색을 할 때 도움이 됩니다. 양귀비에서 나오는 아편은 사냥 중에 입은 부상의 통증을 완화하는 천연 애드빌이었어요. 마리화나는 전통 의학에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고요.
인류 역사 내내 이런 물질들은 비교적 효력이 약하고 희소했어요. 우리 조상들은 마약 성분을 가끔 일정량만 섭취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인류는 식물에 담긴 향정신성 성분을 추출해 농축함으로써 가용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어요. 결과적으로 증류주, 농축된 코카인 분말, 메스암페타민, 캡타곤, 헤로인, 담배, 사탕이나 기화된 액체 형태로 섭취하는 환각제 및 마리화나가 만들어졌습니다. 한때 인간의 삶은 결핍이 만연한 가운데 가까스로 얻은 미세한 쾌락을 이것저것 즐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1000배는 더 자극적인 쾌락을 가져다주는 약물이 존재합니다.
가짜 결핍이 가져온 또 하나의 현상은 쇼핑 중독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이 당근마켓에서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겨우 2만 원에 산 걸 봤어요.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운동화 말이죠. 온라인 중고 시장에는 한 번도 쓰지 않고 올라오는 물건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물건 값이 너무 싸고 구매 행위가 너무 편리해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쇼핑할 때 나오는 도파민에 우리가 중독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사놓고 한 번도 안 쓴 전자책 리더기가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어요. 너무 저렴한 가격에 나왔기에 샀는데, 중국산 제품이라 한글화가 안 되었더라고요. 결국 한글판 제품을 또 샀어요.
먹거나 마시는 행위도 얼마든지 과할 수 있지만 결국 배가 불러서 멈춰야 해요. 그러나 물건, 혹은 영향력이나 정보를 쌓는 행위는 얼마든지 빠르게 반복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없으면 중고거래에 내놓거나 물품 보관소를 이용하면 되니까요.

가짜 결핍에 속지 않으려면 다음 원칙을 기억하세요. 물건을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무조건 60초 이내에 끝내는 것입니다.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 1분 이상 걸린다면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지키려고 정당화하는 중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개인적으로 저의 원칙은 간단해요. ‘살까 말까 할 때는 안 사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한다.’ 안 사면 무조건 돈이 남고요, 하면 무조건 경험이 남아요. 성공하면 효능감을 안겨주는 경험이 남고, 실패하면 가르침을 남겨주는 경험이 되지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중독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풍요로운 세상에 던져진 원시적인 뇌의 비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채우는 노력이 아니라, 비워내고 거절하는 용기가 우리를 진짜 풍요로 안내할 것입니다.
3가지 단계가 있어요. 먼저 지금 내가 느끼는 갈증이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뇌가 만들어낸 '가짜 신호'인지 알아차리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다음으로 의도적인 불편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너무 편안한 삶은 오히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적당한 신체적 활동이나 절제를 통해 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충분함'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외부의 속도에 맞추는 대신, 나만의 속도로 만족의 기준을 옮겨오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따분함, 배고픔, 불편함이 없어야 좋은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따분함, 배고픔, 불편함을 없애는 과정에서 우리는 중독에 빠져듭니다. 이제 좋은 삶은 따분함, 배고픔, 불편함을 견디는 삶입니다. 끝없는 편안함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뜨리거든요. 반대로 스스로 선택한 어려움은 회복탄력성을 키워줍니다. 제가 매일 책을 읽고, 12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아침마다 근력운동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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