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좋은 삶의 끝에는 좋은 죽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루하루를 함부로 살 수 없게 됩니다. 세상에 머무를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이 더욱 소중해지지요.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요? 오늘은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 공경희 옮김 / 살림)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은 성공을 좇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스포츠 기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TV 토크쇼에서 대학 시절 존경하던 교수 모리 슈워츠가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한동안 은사를 찾지 않았던 그는 망설임 끝에 스승을 찾아가고, 그 만남은 매주 화요일마다 이어지는 특별한 ‘인생 수업’으로 이어집니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병으로 하루하루 몸이 굳어가지만,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깨달은 삶의 진실을 세상과 나눕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정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친구들에게 보낸 글들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며, 모리 교수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대학 시절 그의 수업을 들었던 미치 앨봄은 죽어가는 스승에게 묻습니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말이지요. 모리 교수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죽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만약 그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올려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요.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저는 종종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최대치를 살고 있는가?’
조금이라도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그 답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운동, 독서, 글쓰기.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루틴으로 만들어 매일 자동으로 실행합니다.

우리는 흔히 청춘을 예찬합니다. ‘좋은 시절’이라고요. 반면 노화는 부정의 대상이 됩니다. ‘안티에이징’이라는 말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반대한다고 노화가 멈출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나이 듦을 긍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평생 스물두 살에 머문다면, 평생 스물두 살만큼만 알게 되겠지요. 나이 듦은 쇠락이 아니라 성장입니다.
“아,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어쩌면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성취감과 의미를 느끼며 살았다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요.
저는 나의 40대를 긍정하고, 50대도 긍정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60대의 삶이 기대되고, 70대에는 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나이 듦에 맞서 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노화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삶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행복을 돈으로 사고자 합니다. 새 차를 사고, 부동산을 사고, 명품을 모으지요. 하지만 모리 교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려 그 대용품을 껴안고 있구나. 물질을 끌어안으며 일종의 포옹을 기대하고 있구나.”하고요. 물질은 사랑과 용서, 다정함과 동료애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돈도, 권력도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지요. 우리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은,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리 교수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라. 자기를 둘러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쳐라.”
병이 악화되어 모리 교수는 생의 마지막을 침대 위에서 보냅니다. 어느 날 제자가 묻습니다. “딱 24시간만 다시 건강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모리 교수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롤케이크와 홍차로 아침을 먹고 수영을 하겠다고요. 친구들과 맛있는 점심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겠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를 먹고 그날 밤에는 지칠 때까지 춤을 추고, 깊고 달콤한 잠에 들겠다고요.
“그게 다예요?” “그래, 그게 다야.” 너무도 소박한 하루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저는 가끔 30년 후의 저 자신을 불러 묻습니다.
‘내가 오늘 이 건강한 24시간을 당신에게 드린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그리고 그가 해달라고 하는 일들이, 이미 제가 매일 하고 있는 즐거운 루틴일 때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는 떠난 뒤에도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재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길 바란다면, 지금 여기 있을 때 그 관계에 전념해야 합니다. 종일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시간을 매일 쌓아야 합니다. 주말이나 휴가 때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말이지요.
삶의 끝에서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용서입니다.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하지 못한 일들, 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나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모리 교수 역시 투병 초기에 많은 미련과 후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건강할 때 연구를 더 했더라면.”
“체력이 있을 때 책을 더 썼더라면.”
하지만 삶의 막바지에서 그는 깨닫습니다. 그런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요. 마지막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와 화해하는 일, 즉 용서라는 것을요.
그래서 모리 교수는 말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면 남았을 미련과 후회를, 긴 투병의 시간을 통해 하나씩 내려놓고 용서할 수 있었다고요. 모리 교수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좋은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입니다. 운동하고, 읽고, 쓰고, 사람을 만나고, 다정하게 인사하고, 하루를 감사로 마무리하는 것. 그렇게 살아온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좋은 삶이 되고, 그 끝에서 우리는 덜 두렵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어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올려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오늘을 잘 살았는가?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충분히 사랑했는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한 걸음이라도 내디뎠는가?’ 그 질문에 “그래”라고 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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