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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여행을 부르는 독서

by 김민식pd 2026. 1. 15.

저는 여행을 정말 좋아합니다. 어려서부터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웠고요.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모험은 제 안의 도전 정신을 키워주었고, 그 덕분에 새로운 직업과 삶의 방식에 도전할 때도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좋은 여행에 대해서도 늘 ‘공부’를 합니다. 제게 여행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 저자 가운데 한 분이 《여행의 심리학》을 쓰신 김명철 작가인데요. 이번에 새 책을 내셨습니다.

《생활여행》(김명철 / 북플랫)

독서와 여행은 서로를 북돋우는 선순환 관계에 있어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 책을 읽으며 여행의 로망을 키우고, 실제로 여행을 떠난 뒤에는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책을 찾게 됩니다. 책을 읽을수록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나고, 여행을 할수록 읽고 싶은 책도 많아집니다.

보통 여행 에세이라 하면 여행 작가가 이미 다녀온 곳을 기록한 글이지요. 이 책은 별나게도 '작가가 가본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여행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아직 발 디디지 않은 장소들을 상상하며, 여행의 본질과 욕망을 탐구합니다.

좋은 책은 언제나 좋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향할 운명의 목적지는 정체된 자아를 흔들어줄 낯선 곳일까, 아니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익숙한 장소일까? 우리는 여행에 어떤 판타지를 품을 수 있고, 또 어떤 장소에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작년 말부터 연초까지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발리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는 발리를 처음 다녀온 후였어요. 2009년쯤 클럽메드 발리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동남아 리조트 여행이 대개 그렇듯 비슷비슷한 풍경과 서비스가 이어졌어요. 사이판이나 세부의 고급 리조트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지요. 리조트 안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로컬의 삶은 알 수가 없었어요. 발리 여행책자를 읽으며, 리조트 담장 밖의 세상이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2012년에 아이와 다시 발리를 찾았어요. 저렴한 숙소에서 지내며 동네 식당 주인과 친해지고 해변 서핑 강습하는 분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언젠가 퇴직하고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혼자 다시 오고싶다고요. 이번 한달살이에서는 예전에 가본 쿠타와 우붓처럼 익숙한 곳에서 시작해, 길리섬과 누사 페니다 같은 낯선 장소를 후반부에 배치했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섞어 장기 여행의 리듬을 만듭니다. 여행 일정을 짤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트레킹에 도전하거나 포기하기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에너지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의 에너지 수준은 ‘외향성-내향성’이라는 성격 요인과 관련이 깊다. 일반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에너지 수준이 높다. 외향적인 사람은 하루 동안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지루함을 느끼며 이를 혐오한다.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은 기본적인 에너지 수준이 높지 않아 평소에는 에너지를 아꼈다가 중요한 일에 집중해 사용하려는 성향을 띤다. 이들은 쓸데없이 정신 사나운 것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가해지는 자극의 총량을 줄이려고 한다.‘



저는 세상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도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는 혼자 걷고, 혼자 읽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넣습니다. 저녁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낯선 이들과의 술자리가 이어지는 여행은 제 방식이 아니에요. 여행은 제게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사색하고, 다음 책의 원고를 구상하는 시간입니다. 실제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초고는 2015년 한 달간의 남미 여행, 그중에서도 파타고니아 트레킹 중에 완성했거든요.

《생활 여행》에는 익숙하지만 생소한 지명들이 등장합니다. 잉글랜드의 시골 마을 데번은 4억 년 전 데본기의 이름이 유래한 곳이고, 동시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고향이기도 한데요.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독초를 모아둔 정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무대가 된 버 아일랜드의 호텔 이야기를 읽다 보니, 아직 가보지 않은 그곳, 한번도 여행지로 생각해보지 않은 장소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책을 읽고 발견한 여행 목적지 중에는 국내 여행지도 있어요. 멀리 가야만 여행일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도시나 가보면 재밌지 않을까? 사실 한국인에게 가장 잘 맞는 미지의 목적지는 어디로든 가기 쉽고 어디를 가든 일상의 모든 편의가 통째로 이관되며 어느 한 곳 독특하지 않은 곳이 없는 우리나라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이든 전주든, 원주든 횡성이든, 일 때문이든 개인 용무 때문이든 변덕이나 우연 때문이든 상관없다.’

일 때문에 찾은 경주에서 끝없이 이어진 축구장과 테니스장, 그곳을 가득 채운 동호인과 학생들의 풍경은 ‘바쁘고 여유 없는 한국 도시’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여행은 반드시 낯선 나라로 떠나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네요.

책을 덮으며 다짐해봅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공간을 향한 갈망을 키우는 일도, 이미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려는 노력도 모두 놓치지 말자고요. 여행을 사랑하는 분들께,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당장 떠나지 못해 책으로 여행의 설렘을 대신 느끼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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