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by 김민식pd 2025. 9. 29.

“피디님은 금수저인가요, 흙수저인가요?”
강의장에서 어떤 분이 주신 질문인데요. 순간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저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사입니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수성가하신 분들이지요. 어렸을 때 집이 부자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러니 대학 들어가서는 입주 과외며 식당 알바를 하며 하숙비를 벌었지요. 다만 아버지가 영어 선생님이셔서 어려서부터 영어를 아버지에게 배웠고요. 어머니가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자 학교 도서실 담당 교사라서 초등학생인 저를 위해 책을 빌려오셨어요. 즉 아버지는 영어 공부의 기초를, 어머니는 독서 습관의 기틀을 닦아 주셨지요. 경제적으로 금수저는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무척이나 유복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수저계급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타고난 환경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당신은 금수저인가요, 흙수저인가요? 이 하나의 질문으로 사람을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구분하려 합니다. 나이로, 성별로, 학벌로, MBTI로, 정치적 성향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을 단정지으려고 해요. 하지만 사람은 참 복잡한 존재입니다.

MBC 예능 피디 출신인 권성민 피디가 새 책을 냈어요.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운은 없었지만, 성실하고 안정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부모라는 또다른 운을 얻었다. 가족 중에 중환자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녀에게 정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부모, 나아가 약속한 보상은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하는 부모의 양육 태도는 자녀에게 만족지연 능력을 비롯해 많은 능력과 안정감을 길러준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로 태어난 것도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는 운이다.’

권성민 피디가 최근에 만든 연출작이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인데요. 제3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예능·교양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예능작품상 노미네이트 등으로 화제를 모았지요. 

이 프로그램은 “현실 사회의 축소판을 재현하고 인간의 다면성을 조명하며 리얼리티의 새 지평을 열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도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어요. 한국 사회 갈등의 축인 정치, 젠더, 계급, 사회윤리를 둘러싼 쟁점을 다루며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관의 맥락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펼쳐 보입니다. 



제가 20대였을 때는 집이 부자인지 아닌지 별로 티가 나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는 돈이 많다는 걸 과시하는 걸 부끄럽게 여겼거든요.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던 시절이었지요. 요즘은 달라요. 어디에 사느냐로, 무엇을 입느냐로, 무엇을 먹느냐로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합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아이폰을 사주지 않아 불행하다고 불평하는 걸 봤어요. 이젠 어린아이들조차 경제적 비교를 합니다. 부의 스펙터클을 너무 쉽게 접하기 때문이지요.

‘텔레비전과 신문의 시대에는 스펙터클을 전시할 창구 자체가 적었다. 부유함은 더욱 특별하게 여겨졌고, 그 특별한 부를 향한 분노와 질시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더 짙었다. 하지만 모두가 미디어를 가진 오늘날, 더 이상 불특정 다수의 거대한 대중이 소수의 미디어만을 소비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부유함을 자유롭게 과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없는 부를 연출해 과시한다. 부는 스펙터클이 되었고, 스펙터클을 일상적으로 전시하면 그 전시가 다시 돈을 버는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위장된 부로 진짜 부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부자’를 보게 되었다. 부유한 사람은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은 더욱 작아 보인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위협하는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빈부격차라면 또 하나는 남녀갈등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커뮤니티>에 나온 문장.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이 표현은 남성에게 본질적으로 가해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문장의 본래 의미는 ‘여성의 입장에서’라는 전제를 붙여야 완성됩니다. 이 문장은 ‘남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이 느끼는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죠.

‘도로 위에서 거대한 대형화물차 옆을 피하는 것은 상식이다. 여러 안전운전 지침에도 대형화물차와는 멀리 떨어져 운전하거나, 빠르게 추월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모든 대형화물차를 ’‘잠재적 가해자’로 가정하는 것에 가깝지만, 그 말이 곧 대형화물차의 모든 운전자가 운전이 미숙하거나 악의적으로 난폭운전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운전자 가운데는 운전이 미숙하거나, 과로 때문에 졸거나, 악의적으로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이 일정 비율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그 차가 하필 대형화물차라면, 그 옆에 있는 나는 대처할 도리 없이 죽게 된다. 차체의 압도적인 물리적 차이 때문이다.’

아, 참으로 좋은 비유네요. 대부분의 여성도 모든 남성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아요. 다만 크고 작은 성범죄가 범람하는 가운데, 어떤 남자가 가해자가 될지 안 될지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거죠. 마치 대형화물차 옆을 달리는 소형차처럼, 운 나쁘게 위험한 남성을 만나면 여성은 신체적 차이 때문에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조심하는 게 상책인 거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문득 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 남자인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수 있는 감정을 아이들은 매일 느끼며 살아가겠구나.’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는 연습, 저는 그게 독서와 미디어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후배가 쓴 책을 읽으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고민해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