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 원고를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식 작가입니다. 저는 어려서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내신등급이 10등급 중 5등급, 반에서 50명 중에서 24등을 했고요. 대학에서는 자원공학을 전공했는데요. 석탄채굴학, 석유시추공학 이런 과목을 공부했는데,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화면 성적표) 보시다시피 C나 D가 수두룩합니다. 대학 성적이 왜 저렇게 낮을까요? 저는 전공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문과에 가고 싶었는데요. 아버지가 취업에 유리하다고 공대를 종용했고, 담임 선생님이 네 성적이면 여기를 가라고 했어요. 즉 주위 어른들이 골라준 전공이지, 제가 선택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재미가 없었어요. 나는 평생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그걸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갔습니다.
재미있는 대하소설도 읽고, 가벼운 에세이도 읽고, 자기효능감을 길러주는 자기계발서도 읽고, 매일 도서관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독상 시상식을 하는데 제가 최우수상을 받는다고요. (화면 다독상 상장) 여쭤봤어요. 1년 동안 제가 몇권을 읽었나요? 도서관에서 200권을 빌려 읽었답니다. 저는 지금도 매년 200권 이상 책을 읽습니다. 적어도 독서량에 있어서만큼은 스무 살의 나에게 지고 싶지 않아요. 1990년대에 제가 읽은 책들이 공통으로 한 이야기가 있어요.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가 온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온다면 나에게 필요한 도구는 무엇일까? 전 그게 영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어를 잘 하면 세계화의 시대에 글로벌 마켓에 나가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팔 수도 있고, 정보화의 시대에 최신 정보는 영어로 만들어져 나오거든요. 영어를 잘 하면 통역이나 번역의 도움이 없어도 고급 정보를 내 걸로 만들 수 있겠지요. 영어를 잘 하면 전공을 살리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의 대학교 2학년 1학기 영어 성적이 D+입니다. (화면 다시 성적표) 저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D를 받는 사람이에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서관에 가면 됩니다. (화면 다시 다독상 상장) 도서관에 가면, 영어 잘 하는 방법, 연애 잘 하는 방법, 글 잘 쓰는 방법, 온갖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있거든요. 도서관에서 혼자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어요. 기초회화책 한 권을 외우고 복학하고 전국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가 2등상을 탔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어요. 대학에서 찾지 못한 나의 적성, 나의 장점을 도서관에서 찾았구나. 어쩌면 내가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강의실이 아니라 도서관이 아닐까.
대학 졸업하고, 영업사원, 영어 통역사, 예능 피디, 드라마 피디, 작가, 강연자. 다양한 직업을 거쳐왔습니다. 다 대학 전공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때마다 저는 도서관에 가서 그 직업에 관련된 책을 찾아봅니다. 피디가 되면, 먼저 선배 피디들이 쓴 책부터 찾아 읽습니다.
새로운 일을 찾을 때는 3가지를 순서대로 찾아보세요.
‘1.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2. 그 일로 나는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3. 그래서 그 일을 하면 세상이 나에게 돈도 주는가?’ 중요한 건 순서입니다. 차례대로 찾아야 합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오래,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좋아하는 일을 잘 하게 되는 순간이 오고요. 세상에 도움을 줄 기회가 생기고요, 일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적절한 보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1996년 나이 서른에 문득 방송사 피디가 되고 싶어 MBC 공채에 지원했습니다. 언론사 입사시험에서 어려운 관문이 논술과 면접인데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읽어야 하고요,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평소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게 많아야 합니다. 20대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낸 덕분에 서른 살에 피디가 되었고요. 24년간 예능이나 드라마를 연출하며 무척 즐겁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예고 없이 들이닥치더군요.
저는 세계화를 대비해 영어 통역사가 되었고, 정보화 시대에는 언론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껴 MBC PD가 되었습니다. 1996년 제가 MBC 입사할 때 경쟁자는 KBS와 SBS 둘 뿐이었어요. 세계화의 결과, 이제 MBC의 경쟁사는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등 세계 최강의 미디어 기업으로 바뀌었습니다. 10년 전 주말 저녁이면 온 가족이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봤는데요. 정보화가 빠르게 일어난 결과 개인용 단말기가 보급되고요. 이제는 각자 방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게임,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합니다. 공중파 방송사의 광고 시장 장악력은 무너졌어요. 그 결과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지고 드라마 제작편수가 줄어들어요.
2020년 가을 MBC에서 드라마 피디들을 대상으로 폭탄선언을 합니다. ‘회사가 어려워 드라마를 더 이상 예전처럼 제작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 피디들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타부서로 전출을 희망하거나, 둘째, 내근직으로 직종 변경하거나, 셋째, 명예퇴직을 선택하거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고 저는 고민 끝에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왜?
21세기에 찾아오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계화나 정보화가 아니라 고령화입니다. 세계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보화는 기업의 차원에서 대응 가능합니다. 하지만 고령화는 각자 개개인이 대비해야 합니다. 이제 100세까지 사는 시대입니다. 100세까지 사는 시대에는 나이 70, 80에도 일을 해야 합니다. 나이 7,80에 일하려면 나이 4,50에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중년의 나이에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은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건 지속 가능하고 성장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활동입니다. 일단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아요. 여러분이 어떤 공간을 찾을 때마다 계속 돈을 내야 한다면 그 일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돈은 제한된 자원이거든요. 명퇴하고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니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독서는 지속 가능한 취미입니다. 오늘 책을 읽은 나는 어제 내가 몰랐던 걸 배웁니다. 매일 조금씩 책을 읽으며 꾸준히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서는 성장 가능한 활동입니다. 저는 새로운 취미가 생기면 도서관에 가서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읽습니다. 수십 년간 그 일을 해온 전문가가 쓴 책을 통해 몇 시간 만에 읽는다면, 나는 수십 년의 노하우를 단 몇 시간에 내 것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이보다 더 남는 장사는 없고요. 그렇게 제 삶의 영역은 확장됩니다. 독서는 지속 가능, 성장 가능, 확장 가능한 공부입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평생직업입니다. 노후대비라고 하면 노후 자금을 모으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인생, 돈만 있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저는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진짜 노후대비라고 생각합니다. 일이 있으면 돈을 벌 수도 있고요. 삶의 활력이 있기에 건강도 지킬 수 있어요. 일이 없으면 돈을 까먹기만 하는데 그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건강을 잃기도 합니다.
평생직업을 찾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이 평생학습입니다. 이제 우리는 평생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야합니다. 어려서 하기 싫었던 공부, 나이 들어 하라고 하니 혹 지겨울까요? 어렸을 때 공부가 힘들었던 건 3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시험을 봐야 하고요. 둘째, 경쟁이 치열하고요, 셋째, 종일 공부만 합니다. 먼저, 입시며 취업이며 다 공부해서 시험을 봐야 했어요. 이건 부담이지요. 평생 학습에는 시험이 없습니다. 오늘 세바시 강연회가 끝나고 여러분에게 시험을 보지는 않잖아요? ‘김민식 작가가 말한 21세기에 찾아오는 3가지 변화를 서술하시오.’ 이렇게? 평생 학습은요, 내가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정해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경쟁. 학교 생활이 힘든 건 경쟁 탓입니다. 남들과 비교하고 우열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평생 학습의 비교 대상은 오로지 과거의 나입니다. 오늘 공부한 나는 어제 내가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되고, 그 결과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학생은 종일 공부만 해야 합니다. 학생이 잠시 쉬면 뭐라고 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하냐?" 직장인이 퇴근 후에 문화센터에 가거나 주말에 취미를 새로 배우잖아요? 다들 놀랍니다. "우와, 공부도 하세요?" 어려서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건 힘든데요. 어른이 되어 잠깐 짬날 때마다 하는 공부는 즐거워요. 세바시 강연회, 여러분 이거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매일 들으라고 하면 이것도 힘들 겁니다. 공무원 수험준비하느라 인강도 종일 들으면 힘들어요. 그런데 저녁에 잠깐 듣잖아요? 유튜브로 하루에 15분만 보잖아요? 그럼 전혀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즐겁지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그게 평생학습의 즐거움입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제때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의 첫 구절인데요. 어렸을 때는 이게 뭔소리인가 싶었어요. 배우고 익히는 게 왜 기쁘지? 저는 학습의 즐거움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어렸을 때 공부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서 재미가 없었고요. 시험을 봐서 싫었고요. 경쟁의 부담도 컸어요. 이제 평생 학습은 즐겁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학습이라는 말이 논어에서 나온 것 같아요. 배울 學, 익힐 習. 배울 학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일입니다. 익힐 습은 그렇게 배운 걸 스스로 반복하며 익히는 일이고요.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익히는 것입니다. 내가 배운 것은 스승의 지식입니다.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익혀야 내 것이 됩니다. 영어 문장을 매일 소리 내어 읽고 암송하며 내 것으로 만들고, 매일 한 편씩 글을 쓰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공부를 통해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에나 도전하며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세바시 강연에서 들은 것도 좋고요, 책에서 읽은 것도 좋아요. 내가 깨달은 것을 내 삶에 적용하며 매일매일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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