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강연이 있어 1박2일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에 가면 저는 갈맷길을 걷습니다. 바닷가 산책로인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광안리에서 이어지는 이기대 해안산책로고요. 두번째로 좋아하는 곳은 해운대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걷는 길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강연장이 부산 시내에 있어 시간이 맞지 않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요? 저는 영도로 갑니다.
부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남포동으로 가고요. (10분) 영도대교를 도보로 건너면 제가 좋아하는 라발스 호텔 카페가 있어요.
바다 전망이 끝내줍니다. 물론 요즘 영도에는 뜨는 카페가 많아요. 피아크 Peak도 있고요. 젬스톤도 있지요. 하지만 차가 없이 걸어다니는 저는 라발스가 편해요. 영도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재미도 있고요. 3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거든요.
다음날 오전에는 태종대로 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산책로 중 하나입니다. 고향이 울산이라 어려서 여기에 자주 왔었는데요.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태종대의 전망 명소는 바로 영도 등대입니다.
저는 등대를 좋아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풍랑이 몰아치는 밤바다를 정처없이 떠도는 배와 같아요. 그럴 때 저 멀리서 빛을 보내주는 곳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걱정말아요. 이제 조금만 더 오면 여기 뭍이 있어요. 조금만 더 참고 여기까지 와봐요.' 제게 그런 등대 역할을 해주는 건 책이지요.
환절기만 되면 저를 괴롭히는 게 알레르기성 비염입니다. 콧물이 목으로 넘어가다 성대에 걸려 잔기침이 나는데요. 강연하다보면 목에서 가끔 쉰소리가 나서 힘들 때가 있어요. 얼마 전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가 권해준 책을 읽다 우연히 만난 구절.
"인간의 형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연은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판정 기준은 살아남아서 자손을 남기기에 충분한가 하는 점입니다. 살아남은 종보다 훨씬, 대단히 많은 종이 이에 실패하여 멸종했습니다. 이 근본적인 사실을 간과하면 미리 정해진 완성된 형태를 향해 진화가 일어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과 같이 특별히 성공적인 진화계통에는 무수히 도태된 분기점들이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완벽성이라는 생각은 잊으십시오. 자연에서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충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다른 대안을 고려해볼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이 더 뛰어난 예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흡기를 봐도 노폐물이나 오염물질은 인후부에 고여 본래 체외로 배출되어야 할 것이 체내로 배출됩니다. 이것이 네 발 달린 동물에게 볼 수 없는 기관지나 폐 질환의 최대 원인입니다. 이를 보더라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별의 계승자> 중에서
갑자기 책을 읽다 '아! 그렇구나! 내가 비염으로 고생하는 건 수만년 전 우리의 선조가 네발로 걷는 대신, 직립 보행을 선택했기 때문이구나.' 그럼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지구상의 대다수의 포유동물은 다 네발로 걷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만 두발로 서게 되었을까? 다른 동물들이 네발로 걷는 이유는 간단해요. 그게 편하니까요. 분명 처음엔 무척 불편하고 힘들었을텐데, 왜 직립보행을 선택했을까요?
두 손을 쓸 수 있으니까? 그건 나중 이야기입니다. 먼저 엄지 손가락이 갈라져나오고 손가락이 길게 발달한 다음 이야기에요. 네발 짐승이 두 발로 서는 첫번째 이유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높은 데서 보면 보이는게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두발로 서서 더 멀리 보면 사냥감을 찾는 것도 수월하고 멀리서 다가오는 포식자도 먼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높은데서 보는 걸 좋아하나봐요. 해운대나 광안리에서 보는 바다는 눈높이에 있어요. 태종대는 영도 봉래산에 있어 높은 곳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종대 바다를 좋아하고요.
제가 책을 즐겨 읽는 이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고 더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조금 불편해도 더 멀리 보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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