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에는 부산에서 강연이 있었고요. 다음날인 10월 31일에는 전북 완주 용진중학교에서 진로 특강을 했어요. 부산에서 밤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아침에 다시 내려오느니 그냥 경부선타고 가다 오송역에서 호남선으로 환승해서 전주에서 묵어야겠다 싶었어요. 야놀자 앱으로 검색하니 마침 25,000원짜리 방이 하나 나오네요. 싱글룸에 이정도 가격이면 세계 최저가인듯... 물가가 싸다는 쿠바도 민박은 1박에 50달러거든요. 저는 나이 들면 국내 여행 다닐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가성비 좋은 여행지도 없어요. 오늘은 가성비 여행 끝판왕을 소개합니다. 이름하여 <전주 도서관 여행>
밤기차로 전주에 도착해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숙소에서 자고요. 다음날 아침에는 24시간 뼈다귀해장국 집에서 아침을 먹고 반나절 전주 여행 에 나섭니다. 진로 특강은 오후 2시에 잡혀 있었거든요. 전주는 제가 자주 오는 곳입니다. 예전에도 강연을 위해 몇번 온 적이 있고요. 가족 여행 와서 한옥 마을 숙소에서 묵은 적이 있어요. 늘 오던 곳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는 테마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전주 여행 테마는 도서관입니다.
이른 아침 덕진호가 있는 덕진공원을 걷습니다. 그쵸, 아침에는 호숫가 산책이 딱이지요.
부지런한 사진 작가님이 삼각대를 세워두고 열심히 앵글을 잡고 있네요.
"멋진 작품 찍으십시오." 하고 웃으며 인사를 했더니, 처음엔 살짝 놀라시다 이내 "고맙습니다!"하고 웃어주십니다.
일본 여행 가면, 은퇴한 남자 노인들이 DSLR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들고 삼각대를 메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노후에는 취미로 창작 활동을 해도 좋습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글이든 그림이든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활동이 좋은데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창작 활동이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우선 풍광이 예쁜 곳을 찾아야하므로, 여행까지 즐기게 되거든요.
일하러 다니는 틈틈이 즐기는 여행이라, 저는 짐을 가볍게 꾸립니다. 그래서 사진은 오로지 스마트폰으로 해결합니다.
덕진호 한가운데 자리잡은 연화정도서관입니다.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라 그런지 도서관도 한옥입니다. 멋들어진 건물이에요.
주위 풍광도 예쁘고요.
9시에 갔는데 개관은 10시. 들어가진 못하고 창밖에서 고풍스런 실내 모습에 침만 흘리고 옵니다.
괜찮아요 멋진 곳을 알아뒀으니 다음에 오면 되지요. 길고긴 인생, 한번에 다 하려고 하지 않아요. 미래의 나를 위해 아껴두기도 합니다.
도서관 옆에는 나무로 만든 숲속놀이터도 있어요. 아이들이랑 가족 여행 와도 좋겠네요.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전주시립도서관 꽃심입니다.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음, 여긴 꼭 가봐야해!' 싶었어요. 정말 멋진 공간이에요. 이런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도서관 여행자의 복입니다.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전시 코너도 있고요.
도서관 1층에는 카페도 있는데요. 따듯한 밀크티 한 잔 마십니다. 이 멋진 공간을 무료로 이용하는 게 황송해서 3500원 내고 차 한 잔 주문해요. 카페 이름이 I got everything. 난 모든 것을 가졌어요.
맞아요, 저도 도서관에 올 때마다 느껴요. '이곳에서 책만 읽을 수 있다면, 난 부족한 게 없다.'
한강 작가 특별전시 코너에 있는 시집을 들고 와 읽습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작가님의 소설은 읽어봤지만, 시집이 있다는 건 노벨상 수상하신 후 알게되었어요. 궁금했는데, 이렇게 읽게 되네요.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책 소개글을 첨부합니다.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작가란 어떤 사람일까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풍경을 시인은 이렇게 정갈한 언어로 길어내네요.
이제 전주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갑니다.
바로 전주 한옥마을입니다. 무료 개방한 한옥 중에는 전주대사습청이 있고요.
국악방송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옥마을 도서관이 있습니다.
한옥마을 여행 중 잠깐 들리기 좋은 곳입니다.
호두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한마리가 대청마루에 누워 자고 있어요.
아, 참 멋진 공간이네요. 장서의 수는 많지 않지만 큐레이션을 잘 해두셔서 좋은 책이 많아요.
가야금 연주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곳에 앉아 죠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습니다. 또 봐도 좋으네요.
창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보니, 다른 지역의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이 연수를 오셨어요. 덕분에 저도 귀동냥으로 한옥마을 도서관 소개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전주 도서관 여행 안내 책자도 있어요. 전주가 도서관 여행의 성지가 될 것 같네요. 작은 도서관을 폐관하는 지자체도 있던데요. 고령화 시대, 우리 곁에 남은 문화의 중심은 도서관이라 생각해요. 작은 도서관이 마을마다 있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참, 제가 오는 11월 22일 저녁 7시에 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강연을 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근처에 계시는 분들 놀러오시어요~ <사색의 숲 예술을 품다>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입니다.
이번 여행 코스를 짤 때 도움을 받은 기사를 공유하며 마칩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전주로 도서관 여행을 떠나보시기를~
'전국 유일의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인 전주 도서관 여행이 더욱 다채로운 코스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전주시는 오는 3월 9일부터 11월 30일까지 ‘2024년 전주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전주 도서관 여행은 전용 버스에 탑승해 도서관 여행해설사와 함께 전주의 문화와 도서관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여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매주 토요일 하루코스(1회)와 반일코스(2회) 등 매주 3차례로 나뉘어 신설코스를 포함한 총 7가지의 다양한 여행코스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선선한 가을 밤의 정취를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야간코스도 9월부터 11월까지 집중 운영될 예정이다.
먼저 ‘하루코스’는 매월 1·3·5주의 책문화 코스와 2·4주의 예술문화 코스로 운영된다.
책문화 코스는 전주의 책문화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도서관을 여행하며 기록 문화의 뿌리인 전주한지를 체험할 수 있는 코스로, △다가여행자도서관 △한옥마을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 △전주천년한지관을 방문하게 된다. 또, △금암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연화정도서관 △팔복예술공장을 방문하는 예술문화 코스에서는 전주의 예술문화를 담고 있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여행하며 지속 가능한 예술생태계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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