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에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어요.
인천에서 2시간 반 거리, 나하 공항에 도착하고, 유이레일 (오키나와 나하시의 모노레일)을 타자 30분만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이게 일본 소도시 여행의 장점이지요. 공항에서 도시간 이동이 편리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3배정도 더 크고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국내선 항공 연결이 잘 되어 있어요. 눈의 왕국, 홋카이도부터 열대의 섬 오키나와까지 길게 이어진 나라이기에 일본 사람들은 국내 여행만 해도 어지간한 풍광은 다 즐길 수 있지요. 오키나와 여행의 매력 중 하나는 유이레일인데요. 1일권 800엔을 주고 표를 사면 24시간 동안 횟수에 제한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1회권이 350엔 정도니까요. 24시간 동안 3번 이상 탄다면 무조건 1일권이 이득이지요.
처음 묵은 숙소는 위클리 하버뷰 맨션. 1박 4만원인데요. 유이레일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입니다. 주로 전철을 타고 걸어다니며 시내 관광을 하기에 전철역 근처 숙소를 잡습니다.
딱 보는 순간, '작가의 방이로구나!' 싶었어요. 책상과 의자가 있어 글 작업하기 딱 좋은 공간이네요. 1박에 4만원, 저렴한 숙소지만 깔끔하고 좋았어요. 저는 여행 초반에는 저렴한 숙소를 잡고요, 후반부에는 좋은 호텔을 잡습니다. 두 가지 모드로 살아보는 거죠. 오키나와에서 저렴하게 살면 어느 정도로 살 수 있는가? 하루 10만원이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젊어서는 짠돌이로 살고요. 나이 들어서는 여유롭게 삽니다. 나이들수록 더 좋아지는 게 낫지요. 여행도 그래요. 초반에는 살짝 고생스럽게, 후반에는 여유롭게.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오키나와 홀리데이 : (2023-2024 최신판) | 인페인터글로벌 저>입니다. 책을 보니 나하에서의 추천 일정을 잘 정리해두었더군요.
'09:00 모노레일 타고 슈리성으로 출발
09:30 슈리성 공원과 긴조초 이시다타미미치 돌길 산책
13:00 고쿠사이도리로 이동. 오키나와의 가장 핫한 거리인 뉴파라다이스도리와 우키시마도리에서 식사와 쇼핑
16:30 쓰보야 야치문도리에서 차 한 잔~
18:00 오모로마치역으로 이동. 나하 메인플레이스에서 식사 후 T 갤러리아 오키나와에서 쇼핑'
오키나와는 열대의 섬이라 10월 한낮에도 기온이 30도가 넘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나갑니다. 대낮에 고생하며 걸어다니지 않아요.
먼저 고쿠사이도리 国際通り (국제거리)로 갑니다. 겐초마에역에서 마키시역까지 약 1.6km 이어진 이곳은 전후 가장 빨리 복구가 이루어져 ‘기적의 1마일’이라고도 불린다고요. 명동거리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행자의 거리.
걷다가 더워서 일단 돈키호테로 들어갑니다. 부담없는 아이쇼핑의 천국이지요. 참고로 11일간 여행을 다녀왔지만 기념품 하나도 사온 게 없네요. 저는 여행 가서 물건을 잘 사지 않아요. 짐이 되거든요. 그래도 가게 구경하는 건 재미있어요. ^^
시장통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난 고양이에게 애정을 구걸하기도 하고... ^^
어렸을 때는 강아지를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고양이에게 자꾸 눈길이 갑니다. 강아지는 주인이 있잖아요.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애정 표현하기가 조심스러운데, 고양이는 싱글이니까요. 어려서는 강아지처럼 사람이 좋아 막 쫓아다녔는데요. 나이가 드니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요. 어딘가에 매인 목줄없이 그냥 자유롭게.
고쿠사이도리에서 헤이와도리로 들어가면 조용한 주택가를 따라 담쟁이 넝쿨이 벽을 타고 오르는 돌담길이 나와요. 도자기로 유명한 쓰보야 야치문도리인데요. 돌길 양쪽으로 도예 공방과 작고 아담한 도자기 판매점, 체험 공방, 카페들이 모여있습니다.
어디선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요.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네요.
아마도 마을 축제, 마츠리에서 할 행사를 준비하나봐요.
이제 모노레일을 타고 오모로마치역에서 내려 현립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갑니다.
'오키나와의 과거와 현재를 총망라한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 沖縄県立博物館・美術館
오모로마치역 나하메인플레이스 바로 옆에 위치한 박물관과 미술관. 건물의 외관은 슈리성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듯 심플하면서 넘볼 수 없는 위엄이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건물 내부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티켓를 별도로 구매하거나 통합 패키지 티켓을 구매할 수도 있다. 오키나와현 예술가들의 작품을 즐기면서 또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오키나와의 역사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오키나와 홀리데이 : (2023-2024 최신판) | 인페인터글로벌 저>
참고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유이레일 1일패스를 보여주면 할인 혜택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 소도시는 다 그렇더라고요.
인왕상이라든지.
궁궐의 복색을 보면, 오키나와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도를 보니 확실히 알겠네요. 오키나와는 지정학상 일본과 중국의 가운데에 있는데요. (한자로 '류구왕국'이라고 표기된 곳) 옛날에는 중국의 국력이 더 강했기에 청나라의 조공국이었답니다. 그래서 문화도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러다 청일 전쟁 후,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갑니다.
작은 섬나라기에 유난히 침탈이 심했어요.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 본토는 미국과의 지상전을 피했으나 이곳은 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패전 후 미군정 치하에서 살았습니다. 아직도 미군기지가 있고요. 전쟁은 본토인들이 일으켰는데 피해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입었어요.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겪은 건 우리도 비슷합니다. 독일은 침략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지고, 2차 대전 패전 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고 그 결과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습니다. 정작 전범국가인 독일은 통일을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분단국가입니다.
오키나와의 누군가 그랬답니다. "한국은 1945년에 해방되었지만 우리는 아직이다." 오키나와의 슬픔이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전후 폐허가 된 슈리성과 미군정 시절의 사진이 오키나와의 아픈 현대사를 증언합니다.
미술관 전시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야마시로 치카코의 '당신의 목소리가 내 입을 통해 나왔다'라는 영상 인데요. 패전 당시 사이판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육성 증언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젊은 작가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학교를 다니다 갑자기 전쟁에 끌려간 늙은 학도병의 증언, 그 위로 젊은 작가의 얼굴. 전쟁에서 스러져간 젊은 넋을 위로하다 마지막에 가서는 오키나와가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재화는 평화라고 생각해요.
오키나와 여행기, 다음 편에서 슈리성 걷기 여행으로 이어집니다.
'짠돌이 여행예찬 > 짠돌이 세계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번째 찾아간 도시, 프라하 (8) | 2024.01.10 |
---|---|
나뜨랑 호핑 투어 (7) | 2023.12.13 |
비엔나 여행기 (11) | 2023.11.29 |
스위스 인터라켄 여행기 (15) | 2023.09.20 |
올랜도 디즈니월드 매직킹덤 방문기 (10) | 2023.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