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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김동식 작가의 인생 이야기

by 김민식pd 2024. 9. 27.

저는 강연을 듣는 걸 참 좋아합니다. 제가 들어보고 좋은 강의는 도서관이나 학교에 추천하기도 하는데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늘 추천하는 작가님의 강연이 있어요. 저도 꼭 듣고 싶은데 한 번도 못 들어본 강연. 바로 김동식 작가님 강연입니다. 얼마 전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기린중학교에 진로 특강 갔다가 전달에 김동식 작가님이 오셨다고요. “반응이 어땠나요?” “학생들이 진짜 좋아했어요. 김동식 작가님의 책도 재밌게 읽고, 강연도 좋았다고요.” 역시! ^^ 김동식 작가님의 소설은 많이 읽었는데요. 작가님의 삶은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어요. 이번에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강연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 이래서 학생들이 좋아하는구나’ 싶었어요.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동식/요다)

중학교 중퇴 학력의 주물 공장 노동자 출신 작가로 알려진 김동식 작가님. 중학교를 중퇴하고 산업 전선에 뛰어듭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에 뜻이 없다면 돈이라도 벌어야지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답니다. 고민할 시간도, 주변에 이끌어줄 어른도 없었기에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고요. 일단 고민할 시간에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뭐가 됐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먹고살겠지, 그렇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인쇄소며 도배일이며 공사판 노가다를 다녔는데, 기술이 없는 10대의 노동자에게는 다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무거운 걸 들지 않아도 되고, 종일 서 있지 않아도 되고, 먼지로 콜록거리지 않아도 되니까 할 만하네요. 비록 시급이 1900원밖에 안 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피시방에서 3년 가까이 일했는데요. 3년간 시급이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답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게 그래요. 나라에서 올려주지 않으면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당시 한 달에 대충 60만 원을 벌면 20만 원은 방세를 내고, 20만 원은 부산 집에 보내주고, 나머지 2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았답니다.

그때 마침, 서울의 외삼촌이 주물 공장 자리를 소개해줬어요. 주물 공장의 일은 앉아서 할 수 있었고, 무거운 걸 들거나 다칠 만한 상황도 많지 않았습니다. 물론 피시방 알바에 비해 500도의 뜨거운 쇳물을 곁에 두고 일하는 게 위험하긴 했지만 그건 본인이 조심하면 되니까요. 첫 달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는 순간, 김동식 작가는 이 공장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60만 원을 받다가 130만 원을 받으니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마음 편히 피자나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었고, 대형 마트에 갈 수 있었고, 저축도 가능했어요. 심지어 피시방 시절과 달리 월급이 매년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축복이지요. 

주물 공장을 정말 열심히 다녔습니다.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결근을 한 적이 없고, 지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요.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 만큼 아마도 평생 이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돈벌이는 되었지만 주물 공장의 일은 너무 단조로웠어요. 쇳물의 위험성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일하느라 대화가 힘들고, 쇳물이 튈까 봐 자리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출근해서 벽만 보고 기계처럼 단순 반복 작업을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10년간 김동식 작가가 한 일의 전부라고요. 

공장에서 20대를 다 보내고 서른을 맞이한 게 8년 차, 소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하는 정신적 탈진 상태가 찾아옵니다. 그만 둘 생각도 차마 못해요. 매일 똑같은 단순 반복 작업이 아무리 지겨워도, 어차피 살면서 본 노동자 중에 일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일은 원래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평생 한 번도 일을 좋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서른두 살에 기적처럼 좋아하는 일이 찾아왔습니다. 

2016년 5월 16일, 저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당시 자주 가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누구나 창작 글을 올리는 걸 보고 별다른 생각 없이 심심풀이로 써본 것인데요. 10년간 벽을 보며 떠올린 망상들이 있었어요. 초능력이 생긴다면? 로또에 당첨된다면? 돈과 양심 중 선택해야 한다면?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만든다면? 등등. 평소 일하면서 떠올린 잡생각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의 엄청난 반응이 돌아옵니다. 재미있다는 댓글은 기본이고, 기발하다, 천재다, 영화 같다, 감사하다, 지하실에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다, 보다가 지하철 하차역을 지나갔다 등등. 기분 좋아지는 댓글들이 쏟아집니다. 살면서 그렇게 기분 좋은 적이 없었고요, 공장에 출근하면 노상 벽시계만 쳐다보던 저자가, 글쓰기를 시작한 후로는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상상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구상한 이야기를 퇴근하자마자 쓰기 시작하여 잠들기 직전에 업로드했는데, 아침이 오는 게 기다려집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사람이 밤새 달렸을 댓글 생각에 벌떡 일어났답니다. 기분 좋게 출근을 했고, 일하다가 지친다 싶을 때 휴대폰으로 댓글을 확인하면 곧바로 웃음이 나왔어요. 

제가 2017년 MBC 송출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드라마국에서 쫓겨나 유배지에서 일할 때인데요. 아마 피디로 살며 가장 힘든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저를 괴롭히기 위해 회사에서 인사 이동을 시켰지요. 드라마국에서 쫓아내 송출실에서 주야간 교대근무로 일했어요.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2시에 나가는 프로그램에 예고 자막을 흘렸어요. 오후 5시 반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일하는 야간 근무는 정말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 시절에 저는 졸릴 때마다 인터넷에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리뷰를 찾아 읽었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요. ‘아, 내가 이러려고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올렸구나.’ 블로그에 달리는 독자들의 응원도 제게는 큰 힘이 되었고요.



김동식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쓴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무언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그랬던 이유는, 그 자체가 놀이처럼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찾은 좋아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좋아하기만 하던 그 일은 『회색 인간』(요다, 2017)이란 종이책을 내면서 돈을 받는 일이 되었다. 지금도 글쓰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지치지도 않고 항상 즐겁다. 난생처음 보람과 자부심도 느낄 수 있고, 이 일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내 것이란 감각이 만족스럽다.’

블로그가 제게 준 기쁨도 같습니다. 드라마 피디로 일할 때, 혼자서 온전히 내 것을 만든다는 느낌은 없어요. 저는 타인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편입니다. 대본을 쓴 작가의 의도를 살피고, 연기를 하는 배우의 감정을 존중했어요. 물론 그 덕에 무난하게 사람 좋은 연출이라는 평가는 들었지만, 그렇게 만든 드라마가 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냥 협업의 결과인 거죠. 그런데 블로그는 달라요. 오로지 제가 기획, 연출, 각본, 모든 걸 혼자서 해냅니다. 소재를 잡고,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고 고르고 글을 올리는 모든 과정이 100% 혼자서 해내는 일이니까요. 송출실에서 일할 때는 거대한 방송 시스템의 일부였는데요, 블로그를 할 때는 오롯이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어요.

김동식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물 공장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는 희미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몰랐고 그걸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나’라는 존재감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선명해졌다. 나의 일부를 떼어서 글을 내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돌아와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갔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찾았고, 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전보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 몰라도,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저는 중고등학교 진로 특강 갈 때마다 아쉬워요. 2000년에 제가 청춘시트콤 <뉴논스톱>을 만들 때 주시청층은 중고생이었어요. 그때 제가 중학교에 특강을 갔다면 인기를 끌었겠지요. 아이들이 논스톱 촬영 에피소드를 들려달라며 눈을 빛냈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시절에 밤을 새워 촬영하고 편집하느라 학교 진로 강연을 갈 수는 없었어요. 이제 은퇴하고 여유가 생겨 학교에도 가는데요. 요즘 중고생들은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한 일에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 사서 선생님께 김동식 작가의 강의를 추천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중고생 아이들도 김동식 작가의 초단편 소설은 재미나게 즐길 것 같았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던 분이라 쉽고 재미나게 읽히고요. 독서 동아리에서 같이 읽고 난 후, 친구들과 토론을 하기도 좋아요. ‘수능 만점을 받는 대신, 일주일 중에 하루를 공부 귀신에게 내어줘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내가 주인공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끝으로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의 위대함’이란 글을 소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가 시간인 것 같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힘이 있다. 집에서 발견한 벌레를 죽이려다가도 누군가 “100년 동안 산 객체예요”라고 말하면 못 죽일 것 같다. 별것 아닌 것도 ‘시간’이 더해지면 대단해진다. 
 
“저는 세 잎 클로버를 모아요.”
“에이, 세 잎 클로버를 왜 모아요?"
“30년 동안.”
“우와아….”

나도 지금 초단편 소설로 시간의 위대함을 쌓아가는 중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초단편 소설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용 스낵 컬처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10년, 20년이 넘으면 인정 안 하기가 힘들 거다. 게다가 난 이 시간의 힘을 가속하는 비법도 알고 있다. ‘많이’다. 양의 힘도 시간의 힘만큼 강력하다.
 
“그 작가 인터넷 게시판에 1년 반 동안 글을 올려서 데뷔했다네.”
“그래? 글을 잘 썼나?”
“1년 반 동안 소설 300편을 썼대.”
“헐….”
그동안 초단편 소설만 1000편 넘게 썼다. 어디 가서 이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대단하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초단편 하면 김동식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몇십 년을 써야 받을 수 있는 인정을 1000편이라는 다작으로 당겨 받은 거다. 그래서 난 내가 어떻게 잘됐는가를 묻는다면 두 가지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꾸준히, 그리고 많이. 이것이 내가 살면서 깨달은 성공의 진리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해 불안하다면, 지금 난 시간의 위대함을 쌓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제가 중고생 아이들에게 김동식 작가를 추천한 건 재미난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이제 보니 좋은 어른을 한 분 소개한 거네요. 아이들이 보고 배울 점이 참 많은 어른이라고 느낄 것 같아요. 언젠가 저도 김동식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는 책을 읽으며 배움을 청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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