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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아이들의 스마트폰, 어찌하면 좋을까요?

by 김민식pd 2024. 9. 23.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어느 섬마을 중학교에 진로 수업을 갔습니다. 서울에서 반나절 걸려 찾아간 그곳에서 제가 만난 어느 아이의 모습은 충격이었어요. 아침 10시 수업인데 아이는 밤을 샌 사람처럼 퀭한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냥 하루 이틀 밤을 샌 게 아니라 몇날며칠을 날밤을 샌 모습이었어요. 집에서 돌봐주는 어른이 없는 걸까? 학교에 괴롭히는 아이가 있는 걸까? 왜 저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내내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걸까?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사춘기가 되면서 남자는 주체성, 여자는 융화성을 발달하는 방향으로 성장합니다. 주체성은 개성을 추구하고 자신을 확장하려는 노력, 효율성과 역량과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려는 속성을 포함합니다. 융화성은 남을 배려함으로써 자신을 더 큰 사회적 단위에 통합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며, 박애와 협력성, 공감 같은 속성을 포함하지요. 서구 사회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 중 하나는 최근에 여자 청소년의 우울증, 자살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겁니다. 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를 보낸 여자아이의 정신 건강이 더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4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유 1. 여자아이는 시각적 사회 비교와 완벽주의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늘 드는 예시가 있어요. 우리가 100년 전에 태어나 살고 있다면, 평생 살면서 내가 보는 가장 매력적인 이성은 누구일까? 아마 나는 평생 내가 태어난 곳 반경 50 킬로미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 겁니다. 그 안에서 보는 동네 사람 100명 중 내 또래는 몇 되지 않겠지요. 그 중에 잘 나고 예쁜 사람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었겠어요. 그런데요, 요즘 스마트폰을 지닌 여자 청소년은 남자 청소년에 비해 자신의 외모와 신체에 대해 더 신랄하고 끊임없는 판단에 노출됩니다. 소셜 미디어 안에는 수천만 인구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들이 끊임없이 가장 매혹적인 포즈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스마트폰 속 인플루언서의 모습과 거울 속 나의 모습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하고요. 이게 아이들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이유 2. 여자아이의 공격성은 더 관계적입니다

다들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남자아이들의 육체적 폭력을 떠올립니다. 요즘 아이들은 점점 더 영리해지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금세 드러난다는 걸 알아요. 폭력은 흔적을 남깁니다. 그래서 영악한 친구들은 교묘하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육체적 폭력보다 더 사람을 아프게 하는 건 정서적 폭력이에요.

사춘기의 여자아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큽니다. 그래서 다른 여자아이에게 정말로 타격을 주는 방법은 그 아이의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을 퍼뜨리고, 그 아이의 친구들을 돌아서게 만들고, 그 아이가 지닌 친구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지요. 사회적 가치 추락을 느끼면 아이는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따돌림을 당한 십대에게 신체적 죽음은 고통을 끝내는 수단인 반면, 사회적 죽음은 살아 있는 지옥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유 3. 여자아이는 감정과 장애를 더 쉽게 공유합니다
행복은 전염성이 있어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퍼져갑니다. 우울증은 행복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합니다. 게다가 여성에게서만 전파된다는 특징이 있어요. 한 여성이 우울증에 빠지면, 가까운 친구들(남녀를 불문하고)도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142%나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남성이 우울증에 빠졌을 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서 측정 가능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유 4. 여자아이는 약탈과 괴롭힘에 더 취약합니다

최근 딥페이크 사건으로 우리가 다시 깨달은 점이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성적 약탈과 성적 대상화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여자아이와 젊은 여성은 남성보다 온라인에서 훨씬 경계심을 높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가상 세계에서 방어 모드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요. 젊은 여성들 사이에 불안 수준이 급등하고 우울증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스마트폰의 해악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저자는 네 가지 개혁을 제안합니다. 

  '1.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9학년(대략 만 14세) 전까지는 기본 휴대폰만 제공함으로써 아동이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

  2.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 금지. 사회 비교와 알고리듬이 제공하는 인플루언서의 파이어호스에 접하는 시기를 아동의 뇌 발달 과정에서 가장 취약한 시기가 지난 뒤로 미룬다.

  3.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교에서 등교 후부터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학생의 휴대폰과 스마트워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밖의 개인용 전자 기기를 로커나 잠금 장치가 있는 가방에 보관하게 한다. 이것은 학생들끼리, 그리고 교사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4.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한다. 이것은 아동이 사회성 기술을 자연스럽게 발달시키고 불안을 극복하고 자립적인 영 어덜트로 성장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우정은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가장 행복한 아이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절친’뿐이라 하더라도 늘 자신을 강하게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열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몰려가면서 생기는 일. 오프라인에서 한두 명의 특별한 친구와 함께 놀고 긴 대화를 나누는 대신 온라인에서 일시적이고 믿을 수 없고 어려울 때 등을 돌리는 ‘친구’와 팔로워와 지인의 광대한 바다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아이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고 100년 이상 노력해왔어요. 20세기 초에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수만 명의 어린이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안전벨트(1960년대)와 유아용 의자(1980년대)를 의무화했습니다. 저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에는 많은 또래 학생이 담배를 피웠는데, 담배는 자판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고요. 미국은 결국 어른 흡연자에게 불편을 강요하면서 담배 자판기를 금지했고, 이제 어른은 가게 점원에게 나이를 확인받으면서 직접 담배를 구입해야 합니다.

다시 그런 결단의 시기가 왔어요. 어른들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더 늦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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