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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경제 공부

Winter is coming!

by 김민식pd 2024. 8. 14.

저에게 있어 연금은 저축의 한 방편입니다. 저축은 현재 나의 소득을 미래의 나에게로 보내주는 일입니다. 미래의 나도 여럿이 있어요. 당장 다음 달에 급한 일이 생겨 비상금이 필요한 나도 있고요, 2년 후 전세 만기가 돌아오면 보증금을 올려야 하는 나도 있어요. 즉 저는 시기별로 다양한 나를 위해 여러개의 통장을 만들어둡니다. 그중 가장 길게 보고 하는 저축이 연금 저축입니다. 먼 훗날의 나에게 돈을 보내주는 건데요,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나라에서도 장려하는 금융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연금 저축에는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이 주어지지요. 회사를 다니며 연금 저축을 들 때는 신경 쓸 일이 없어요. 그냥 일정 금액을 급여에서 빠져나가게끔 해두면 되니까. 퇴사하고 퇴직 연금 상품을 가입하려니 이건 신경이 꽤 쓰이네요. 

<마법의 연금 굴리기> (김성일)라는 책이 있어요. 직장인들에게 연금을 저축으로 접근하지 말고, 투자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더 적극적으로 관리 운용하라고 조언하는 책입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런 말을 했답니다. “글을 모르는 것은 사는 데 다소 불편하지만, 금융을 모르는 것은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금융맹이 문맹보다 더 무섭다.” 저는 생각이 달라요. 정보화 시대에 글을 모르는 사람은 다소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돈을 벌기가 어렵습니다. 금융을 몰라도 작은 부자로 만족하고 사는 건 가능해요. 평생 그렇게 생각하며 재테크를 멀리하고 살았는데요. 문맹은 사라지는 추세이니, 앞으로 개인의 경쟁력은 금융 이해력의 차이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 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OECD 평균인 64.9점(2015년)보다 낮답니다. 노후와 은퇴 대비에 ‘자신 있다’고 답한 비중은 16.3%로 ‘자신 없다’(31.1%)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요. 소득이 높을수록 금융 이해력이 높다고 합니다. 소득이 높고,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1%의 금리 차이도 큽니다. 100억 원의 1%면 1억 원이나 되기 때문이지요. 반면 사회 초년생, 저소득층의 경우 1%의 차이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100만 원의 1%는 1만 원밖에 안 되기 때문이지요. 부자가 되려면 수익률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복리로 쌓이는 수익률이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모인 돈이 적으면 더욱 금융 지식이 필요합니다.

21세기에 찾아오는 3가지 변화, 세계화 정보화 고령화, 이 중 개인에게 중요한 건 고령화입니다. 세계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보화는 기업이나 조직의 차원에서 대응이 가능합니다. 고령화는 각자가 준비해야 합니다. 스스로 금융 지식을 쌓아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다양한 연금 상품과 절세 상품을 적극 활용해 수익을 올려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책은 김성일 저자가 자신과 같은 월급쟁이들이나 우리 주위의 자영업자들을 위해 썼습니다. 다양한 절세 상품을 이용해 ETF로 자산배분하여 투자한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도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요. 저자는 연금 저축에는 당근과 채찍이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연금저축이나 IRP는 일종의 강제 저축이다.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대신 최소 5년 이상 적립해야 하고,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만약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거나 연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수령하면 인출 금액 중 세액공제 받은 금액과 운용 수익에 대해서 높은 세율의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세액공제가 노후 대비 저축을 유도하는 ‘당근’이라면 중도해지할 때 납부해야 하는 무거운 세금은 일종의 ‘채찍’인 셈이다.’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원빈의 명대사가 있어요.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을 만나면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저, 예전에 이 영화 보고 좌절했어요. 난 내가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저렇게 젊고 잘생긴 원빈이 아저씨라고? 그럼 나는 뭐지? 감히 내가 원빈이랑 같은 아저씨일 수는 없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하루하루 죽지 못해 근근이 살아가는 삶을 표현한 말인데요. 영화 속 원빈이 연기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짐승이라 여긴 것 같아요.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여기서 나옵니다. 사람은 내일을 보고 살고요, 짐승은 오늘만 보고 살아요. 

과거에는 사람도 짐승처럼 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렵채집을 하던 원시인이 그랬지요.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할 때는 오늘 하루만 보고 삽니다. 문제는 그렇게 살다보니 배고픈 시절이 옵니다. 겨울이 그래요. 겨울에는 동물들도 굴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고요, 열매나 잎을 뜯어 먹을 수도 없지요. 굶어죽기 딱 좋은데요.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가을에 추수하니 겨우내 배불리 먹을 수 있어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일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는 맞지 않아요. 봄 여름에는 그냥 눈앞에 보이는 사냥감을 쫓거나 열매를 찾아 헤매는 게 맞지요. 다만 그렇게 살면 겨울에는 먹을 게 없어 굶어 죽기 십상이에요. 고기와 열매는 금세 상합니다. 하지만 벼와 보리 같은 낟알은 오래 보관하고 탄수화물이 풍부해 에너지원으로 적합합니다. 겨울을 버티기 위해 사람은 농사를 짓기 시작해요.

고령화 시대에 청년과 중년의 삶이 봄과 여름이라면, 노년의 삶은 겨울입니다. 봄 여름에 들어오는 꿀같은 월급을 당장 쓰고 싶지요. 이해할 수 있어요. 노후대비 투자는 장기 투자입니다. 사람의 원초적 욕망은 장기 투자를 싫어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보상보다는 현재의 확실한 만족이 더 나아 보입니다. 그래서 저축보다는 소비가 더 쉬운 겁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는 알아요. 우리의 노후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긴 겨울이라는 것을. 고령화 시대의 노후는 무척 깁니다. 마치 <왕좌의 게임>에서 찾아오는 그 혹독한 겨울 같아요. “Winter is coming.” 제가 좋아하는 스타크 가문의 가훈인데요. 우리도 이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겨울이 옵니다.’ 

길고긴 노후라는 겨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지금의 노인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반면교사 삼아 오늘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 내일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서도 연금 저축을 장려하려고 당근과 채찍을 쓰는 겁니다. 세제 혜택이 크면서도 당장 해지하기는 불편한 연금 저축과 IRP 덕분에 우리의 노후는 풍족해질 것입니다.



연금 투자를 할 때 목표 수익률은 얼마로 잡으면 좋을까요? 당연히 수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요. 그런데 목표 수익률이 높을수록 손해 볼 가능성이 커집니다. 왜 그럴까요? 목표 수익률이 50%라는 건 50%의 변동성이 있는 투자 상품이라는 뜻입니다. 수익이 나도 50%, 손실이 나도 50%. 수익 50%와 손실 50%는 같은 것일까요? 첫해에 수익이 50% 나고 다음 해에 손실이 50% 발생했다면 원금은 그대로일까요? 플러스 50%에 마이너스 50%이니까 합치면 0%. 그러니 본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이 책에서 나온 결과를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50%의 변동성이 있는 투자 대상에 1,000만 원을 넣었다고 쳐요. 다음 해에 예상대로 50%가 올랐습니다. 수익은 투자금 1,000만 원의 50%인 500만 원이고, 잔금은 1,500만 원이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다음 해에는 50%가 떨어졌습니다. 평균으로의 회귀라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으니까요. 이때 손실은 투자금 1,500만 원의 50%인 750만 원입니다. 잔고는 1,500만 원에 손실 750만 원을 뺀 750만 원이 되고요. 50%가 올랐다가 50% 떨어졌는데 원금도 못 건졌네요.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첫해 1,000만 원을 넣었는데 50% 손실이 나요. 그럼 잔고는 500만 원이지요. 다음 해에는 50% 상승을 했습니다. 500만 원의 50%인 250만 원 수익이므로 잔고는 750만 원입니다. 올랐다가 떨어지거나, 떨어졌다가 올랐거나, 두 경우 모두 원금에서 250만 원 손해 본 750만 원입니다. 왠지 많이 억울하지요?

목표 수익률을 10%로 잡고 변동성이 10%인 상품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1000만 원을 투자해서 10% 올라서 1년 후 1100만 원이 되었다가, 그 다음 해에 다시 10% 떨어져 110만 원이 줄어들면 990만 원이 됩니다. 변동성이 100%라면, 수익과 하락이 반복하면 잔고가 0원이 됩니다. 첫해에 100% 수익이 나서 2000만 원이 된다고 해도 다음 해에 100% 손실을 입으면 2000만 원 전액이 날아가기 때문이지요. 다시 투자를 시도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1000만 원을 투자한 경우, 2년간 같은 폭의 수익과 손실이 반복된다면 변동성 10%의 경우 990만 원이 남고, 50%의 경우 750만 원, 100%의 경우 0원이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가 2021년 1월에 퇴직 연금 주식 펀드를 사고 6개월 만에 30%의 손실이 났다고 이야기하면, 주식을 좀 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그 이후에 다시 장이 좋아졌으니 원금을 회복하지 않았냐고 물어요. 1000만 원에서 30% 손실을 봐서 700만 원이 되면 다시 30% 올라봐야 910만 원인데요, 제가 종목 선택을 잘못해서인지 30% 상승도 못했어요. 30% 수익을 본 펀드라면 30%의 변동성이 있다는 뜻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지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노후대비를 위해 연금으로 투자를 할 때 목표 수익률이 높을수록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이러니지요? 높지 않아야 벌 수 있어요. 개인투자자의 목표 수익률의 최저값은 물가상승률입니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수익이 나야 돈의 가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적정한 목표 수익률은 물가상승률 플러스알파로 잡는 게 좋습니다. 은행 금리보다는 1~2%포인트 높은 수익. 운이 따라준다면 4~5%포인트 높은 수익이 날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목표 수익률은 낮게 가져가는 게 안전합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돈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한번 손실을 보면 복구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김성일 저자는 올웨더 포트폴리오를 추천합니다. 올웨더 All-weather란 모든 계절을 잘 견딘다는 의미입니다. 레이 달리오라는 투자의 귀재가 만든 개념인데요. 경제 환경을 4개의 상황으로 나누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그리고 각각이 기대보다 높을 때와 낮을 때로 나누어 각 상황별로 좋은 자산이 다르다고요.
 
경제성장률이 기대보다 높을 때는 주식, 회사채, 원자재/금, 신흥국 채권 등이 좋고, 그 반대일 때는 미국 국채, 물가연동채권이 좋답니다. 물가상승률이 기대보다 높을 때는 물가연동채권, 원자재/금, 신흥국 채권의 성과가 좋고, 낮을 때는 주식,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게 낫다고 합니다. 레이 달리오의 주장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고요. 미래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레이 달리오는 4개의 경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각 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동일하게 25%라고 가정하고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짜라고 합니다. 그게 올웨더 포트폴리오에요. 김성일 저자는 오랜 연구와 실험 끝에 한국의 개인 투자자에게 적합한 K-올웨더 포트폴리오를 소개합니다.

‘투자 포트폴리오의 기준으로 삼는 모델 포트폴리오의 자산군은 크게 주식, 국채, 대체투자 3개로 나눈다. 포트폴리오의 전체적인 수익을 담당할 주식 자산군에 비중의 50%를 할당한다. 그리고 주식 변동성을 커버해줄 국채와 대체투자에 각 30%와 20%를 배분한다. 
주식 자산군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선진국과 신흥국에 절반씩 나눈다. 2010년대 이후로는 미국 시장의 독주 덕분에 선진국 지수가 더 좋은 성과를 보였으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미래에는 어느 쪽이 더 좋은 성과를 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투자 자산으로 금을 추천했는데 금 ETF 중에서 선물이 아닌 현물 가격을 추종하는 ‘ACE KRX금현물’ 상품을 선정한다. 
국채는 국내 상장되어 활발히 거래되는 한국 국채와 미국 국채에 절반씩 배분한다.’

아, 모든 상황에 다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군요. 책의 마무리 부분에 가서 저자는 모든 월급쟁이라면 1년에 연금저축에 600만 원, IRP에 300만 원을 넣으라고 권합니다. 더 남으면 다시 연금저축에 900만 원. 그러고도 남으면 ISA에도 넣으면 된다고요. 연금 계좌에만 일 년에 1,800만 원을 넣는다면 월 150만 원인데요. 쉽지 않은 금액이지요. 그래도 일단 작게라도 시작하자고 합니다.

매달 수입의 5%를 넣는 거죠. 월급이 200만 원이라면 10만 원만 눈 딱 감고 연금 계좌에 넣습니다. 연금저축과 IRP에 5만 원씩 나눠서 넣어요. 계좌를 나누는 이유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급한 일이 생기면 계좌 하나만 해지하면 되니까요. 연금 저축은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목표 수익률은 높을수록 위험하지만, 목표 가입 기간은 길수록 유리합니다.

수렵 채집인처럼 오늘만 보고 살지 말고, 고령화 시대 기나긴 노후도 대비하면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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