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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경제 공부

경제 공부, 뼈 때리는 책

by 김민식pd 2024. 8. 5.

사학도 출신, 국내파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독서를 통해 경제를 공부하고 국내 최정상 이코노미스트가 된 홍춘욱 박사님, 이 분이 쓰신 책은 참 많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를 제일 좋아합니다. 홍춘욱 박사는 연간 200여 권의 책을 읽고 50권 이상의 서평을 작성하며 수백 편의 해외 논문과 경제 전문지를 탐독하는 문자 중독자이며 책 애호가인데요. 평생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수천 권의 책들 가운데 저자를 이코노미스트로 이끈 책들, 입맛 까다로운 이코노미스트의 서재에서 끝내 살아남은 인문학과 경제학책을 소개해주십니다. 2016년에 나온 책이지만 이 책에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고요. 지금 읽어도 머리를 치는 탁견과 혜안이 가득합니다.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항상 미국 연준의 행보에 신경을 집중합니다. 연준이 통화 정책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경제의 방향이 순식간에 달라지니까요. 저자는 연준이 강력한 이유를 폴 크루그먼의 명작 <불황의 경제학>을 읽고 깨달았답니다. 1998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미국에 출장 갔던 담당 임원이 사 온 것을 번역서가 나오기도 전에 직접 번역해서 공부할 정도였다고요. 

불황은 과소비가 아니라 저소비로 촉발됩니다. ‘불황’을 그간 누린 방종에 대한 도덕적 징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불황은 대부분 소비자와 기업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어 저축을 더 늘린 결과랍니다.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인 결과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도 하나의 답이랍니다. 각 경제의 주체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신이 모은 저축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면 문제가 술술 풀립니다. 기업이 투자를 재개하고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는 순간, 경제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돌아가니까요. 코로나로 세계적인 불황이 예견되자 미국 연준이 선제적으로 양적 완화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불황을 막는 데는 통화 팽창으로 돈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게 즉각적인 처방이거든요.

저자는 행동경제학 입문서로 제이슨 츠바이크의 <머니 앤드 브레인>을 추천합니다. 인간은 단순한 패턴을 감지하여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능력 덕분에 우리의 조상들은 포식자들을 피하고, 식량 및 안식처를 찾아내고, 농사를 짓기 시작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자연에서 패턴을 찾는 데 뛰어난 종족입니다. 그러나 투자의 경우 이런 습성 때문에 흔히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질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내가 사면 하한가, 내가 팔면 상한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제이슨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평균 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주식이나 펀드는 조만간 거의 반드시 평균치를 향해서 뒷걸음질 친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반전하는 이런 경향을 우리는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이 없다면 기린은 대를 이어서 점점 더 커지다가 마침내는 심장과 엉덩이가 과도한 긴장으로 파열되고 말 것이다.’

이게 제가 퇴직 연금을 시작할 때 했던 착각이지요. 2020년 하반기 6개월 동안 수익 30퍼센트를 낸 펀드라니, 대박인걸? 앞으로 매년 30%씩 수익을 창출하면 남은 평생 놀고 먹을 수 있겠는걸? 네, 평균으로의 회귀 때문에 6개월간 플러스 30을 기록한 펀드가 제가 매수하고 6개월 동안 30%의 손실을 기록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거죠. 이게 모든 인간이 흔히 범하는 오류라니 쓰라림은 조금 덜...하기는커녕 다시 생각해도 또 억울한 걸요? 왜 나는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지?


 
그렇다면 부동산은 어떨까요? 6개월간 미친 듯이 집값이 올랐다면 6개월이 지나면 오른 만큼 다시 떨어질까요? 이게 참 어렵습니다. 아마 부부 싸움의 단골 레퍼토리가 아닐까 싶어요. 집값이 갑자기 많이 오르고 있으니 이제라도 사자는 쪽, 오를 만큼 올랐으니 이제 다시 떨어질 거다 그럼 그때가서 사도 늦지 않다고 하는 쪽. 박원갑 박사의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집값 하락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다면 단독주택에 사는 부부가 많이 할까, 아니면 아파트에 사는 부부가 많이 할까? 아파트에 사는 부부다. 아파트는 쉽게 가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가격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보기술의 혁명 덕분이다.

가격을 자주 확인하면 할수록 불행해지며, 그리고 불행해지면 잘못된 거래를 하게 된다.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매매에 많은 비용이 드는 자산이며, 더 나아가 깔고 앉아서 살고 있으면 상당한 사용가치(주거)를 제공하는 자산이다. 따라서 장기 투자 하기 쉬운, 어떻게 보면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자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기 투자 전용 자산을 쉴 새 없이 사고팔게 만들어 결국은 중개업자와 정부만 좋은 일 시키는 짓이 바로 ‘시세 확인’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정말 글이 뼈 때리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2010년에 분당 아파트를 팔아버리는 뼈아픈 실수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2007년에 산 이후 몇 년 째 계속 가격이 내려가니까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 시절에 저는 인구 변동으로 아파트값이 일본처럼 대폭락할 거라는 책들의 주장을 믿었어요. 해리 덴트, <2018 인구 절벽이 온다>면서요. 김수현의 책 <부동산은 끝났다>을 보면 주택 시장은 수요보다 오히려 공급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특히 1990년대 일본의 주택 가격 하락을 주택 공급에 포커스를 맞춰 분석하는데요.
 
일본에서 1986년에서 1989년까지의 버블로 상승했던 주택 가격이 1990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공급이 늘고 경제가 악화하면 공급 물량이 해소될 때까지 한동안은 신규 공급이 제한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분명히 주택 가격이 폭락했는데도 착공은 전혀 줄지 않고 꾸준했어요. 아무도 주택 구입을 하지 않는데 일본은 꾸준히 주택 공급을 계속했어요. 그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로 이어집니다. 왜 그랬을까요?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 압력을 물리치기 위해 재정을 쏟아부었는데요. 재정지출의 상당 부분이 지방의 건설·토목 사업에 투입됐습니다. 일본 자민당에는 대를 이어서 지방에서 꾸준히 당선되는 의원들이 많아요. 그들은 지역의 지주이자 토호들이고요. 그들은 자기 지역에 건설이나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는 ‘공급 과잉’에 따른 추가적인 주택 가격의 폭락이 온 거죠.
 
결국, 경제 문제는 정치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한데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일본의 뒤를 따를지 어떨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섣불리 대세 하락론을 이야기하기엔 두 나라의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네요.

경제공부를 하면서 가끔 드는 궁금증이 있어요. 지난 수십 년 사이 한국은 경제적인 면에 있어 가장 놀라운 성공을 거둔 나라입니다. 후진국에서 이렇게 빠르게 선진국으로 도약한 예가 없을 정도입니다. 강력한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 덕분에 산업화에 성공한 우리가 왜 지금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불행해 하고 인구 감소를 맞게 된 것일까요? 

<한국형 시장경제체제>라는 책을 보면 한국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 중 하나가 ‘숙련 편향적인 기술 진보’랍니다. 2000년 전후 정보통신 혁명의 결과로, 기술 수준이 높고 또 인터넷 등 신기술을 빠르게 습득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소득이 증가하고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도태되는 현상을 뜻하는데요. 다른 나라들은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고 또 사회 변화 속도가 더딘 편이지만, 한국은 1960년대 이후 불과 5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다 보니 사회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많은 사람이 ‘숙련 편향적인 기술 진보’로 인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신속하게 반응하기 어려운 고령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고요. 이례적으로 높은 노인 빈곤율은 많은 이들에게 불안을 안겨줍니다. ‘나도 노후에 저렇게 되는 거 아냐?’ 

저는 운이 무척 좋았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여 영어를 공부하고,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의 1차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각각 통역사와 피디라는 직업을 얻게 되었어요.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영어와 고학력에 대한 가중치를 높게 잡게 되었다는 거죠. 그 결과 우리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영어 공부와 수학 선행 학습에 내몰리게 됩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어려서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많은 압박을 받으며 살게 된 겁니다. 저는 학부모 강연에 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공지능이 활약하고 로봇이 일하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신 좋은 태도를 기르게 도와주시라고요.

앞으로 취업에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하정필의 <취업의 정답>에는 이런 글이 나온답니다. 
 
‘회사는 스펙을 과감하게 버린다. 실제로 일을 하면서 능력을 발휘하는 데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기재된 객관적인 스펙은 별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규모 회사라도 신입사원을 채용하고서 바로 일을 시키지는 않는다. 작은 조직은 통상 1개월, 대기업 같은 큰 조직은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은 지나야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여긴다. (···) 
그렇다면 회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성이다. 회사는 지원자의 스펙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성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여긴다. 반대로 스펙은 엉망이지만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고 있다면 OJT 기간을 통해서 얼마든지 업무수행 능력을 키워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본다.’

경제를 처음 공부하시는 분에게 이 책은 무척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어떤 책을 읽고 성장했는지 보여주고요. 다양한 식견을 접할 수 있거든요. 전문가가 우리 대신 책을 읽고 옥석을 가려주시니 이것이 정말 시간 투자 대비 효율이 높은 독서지요. 가성비 최고의 경제 교과서입니다.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저는 제 방식대로 소개했는데요. 이 책 만큼은 꼭 한번 찾아서 직접 읽고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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