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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딴따라 PD가 파업 선봉에 나서게 된 이유

by 김민식pd 2012. 3. 27.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이 나를 보며 의아해한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딴따라 어쩌다 선봉에 서게 됐지?'

'집회에도 안 나오던 날라리가 어쩌다 노조 부위원장을 하고 있지?'

사람들이 변한 내 모습에 신기하다고 할 때, 난 내 과거를 돌아봤다.

'내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았나?

 

작년 1월, 이번 MBC 노동조합 집행부가 꾸려질 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도 정말 하기 싫었다. 왜? 이번 집행부 임기는 2년이다. 그 2년은 이명박 정권의 남은 임기와 정확하게 맞물린다. 현정권이 임기 내내 보여준 행태를 미루어볼 때, 남은 2년, 특히 총선과 대선이 있는 2012년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언론 장악이 한층 더 악화될 게 뻔했다.

 

이번 집행부의 운명은 처음부터 둘 중 하나였다. 망가지는 MBC를 지켜보며 2년을 버티던가, 끝내 못견디고 일어나 정권으로부터 철저하게 응징 당하던가. 싸우지 않고 2년을 버티면 어용 노조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싸우겠다고 일어나면 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야 할 것이고...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 둘 중 무엇도 감당하기 싫었다. 

 

그럼, 나는 왜 노조 부위원장이 되었을까?

 

정영하 위원장 때문이다.

 

내가 뉴논스톱 연출로 데뷔할 때, 더빙 엔지니어가 정영하 선배였다. 연출은 정말 외로운 자리다. 어두컴컴한 더빙실에 앉아서 편집이 끝난 화면을 볼 때, 가장 불안하다. '이게 재밌을까? 이게 재밌을까?' 특히나 망해가는 시트콤, 시청률 7% 나오는 시트콤을 맡은 초보 피디의 불안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때, 내 등을 지켜준 사람이 정영하 선배다. "민식 씨, 이번 주 꺼 재밌어. 양동근이 하는 거 그거 웃기니까 유행어로 밀어봐." 

 

정영하 선배는 많은 연출자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스탭이었다. MBC에서 소리를 가장 잘 다룬다는 평을 듣던 정영하 선배가 노조 위원장이 된다고 했을 때, PD들은 다 아쉬워했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현업에서 빠지게 싫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곧 그의 책임감에서 나온 것이란 걸 알기에, 위원장을 맡은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연락이 왔다.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10년전 더빙실에 앉아있는 나의 등은 무척 초라했을 것이다.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맡아 처음 PD가 되었는데, 시청률은 바닥이었다. 낯선 신인들만 나오고, 이상한 엽기 코미디만 하고... 그때, "민식 씨, 이 프로, 잘 될 거야. 지금 잘 하고 있어."라고 등 두들겨준게 정영하 선배다. 

 

10년이 지나, MBC가 가장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정영하 선배가 있다.

 

이제는 내가 그의 등을 지켜야 할 차례다. 

 

 

나는 딴따라다.

 

사랑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연출가다.

 

내가 아는 사랑이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를 지키는 것이다.

 

 

                          사진의 가운데 키크고 안경 낀 사람이 정영하 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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