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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어제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

by 김민식pd 2012. 3. 24.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지난 1년, 매일을 하루같이 글을 쓴 제가, 어제는 쓰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으나, 무엇을 써야할까? 생각하니 참 막막하더군요.

어제는 경찰 출석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경찰서에 출두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참 싱숭생숭하더군요. 살면서 이런 일도 다 겪는구나... 누군가 내가 죄를 지었다고 고한 일도 처음이고, 내 죄를 가리기 위해 경찰에서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은 일도 처음입니다. 

'내 죄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글은 쓰지 못하고, 다시 컴퓨터를 덮었습니다.

오후에 노동조합 집행부 동료들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MBC 앞에서 택시를 잡고 "영등포 경찰서로 갑시다." 했더니, 기사님이 우리를 흘끗 보더니, "취재 가시는 건 아닐테고, 무슨 일로 가십니까?" 묻더군요. 앞자리에 앉은 동료가 "조사 받으러 갑니다." 하고 씩 웃었습니다. 

그러자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미터기를 꺾었습니다. "고생하시는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군요. 요금은 안 받고 모셔드리겠습니다."

기사님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 MBC가 53일째 파업 중이란 소식을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십시오. 많은 분들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기사님의 말씀에 저와 동료들은 숙연해졌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먼저 온 동료가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묻더군요. "아니, 어떻게 휴무 중인 택시를 잡아 타고 왔대?" 그제야 돌아보니, 미터기를 꺾고 달린 택시에는 휴무 표시가 뜨더군요.....

그 전날에는 회사로 맹인 안마사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MBC가 파업을 하는 건, 장애인이나 빈민같은 약자들도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싸우시는 겁니다. 그런 여러분을 위해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습니다." 머리 희끗희끗한 맹인 안마사분들에게 어깨를 맡기면서, 몸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이름 모를 택시 기사님 덕분에, 경찰서로 향하는 저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선생님의 귀한 뜻, 무겁게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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