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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우울감을 어찌할 것인가

by 김민식pd 2024. 5. 20.

좋은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우울하지 않은 삶일까요? 살면서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우울감을 겪는 것은 우리 인체의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거든요. 우울감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울감은 지금까지의 궤도를 수정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우울증과 트라우마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편견이 두려워 정신과에 선뜻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님이 쓰신 책을 통해 마음의 우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백종우 /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우울하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우리 뇌와 몸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귀를 잘 기울인다면 잘못을 바로잡고, 궤도를 수정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적당한 우울은 생각지 못한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우울한 감정을 잊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일에 몰두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동안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저는 대학 시절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 우울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영어공부고요. 회사 다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우울할 때 독서를 하며 우울감을 잊었어요.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힘들 때는 글을 쓰면서 작가로 살기 위한 인생 이모작 준비를 했고요. 영어, 독서, 글쓰기, 다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새로운 삶의 경로를 고민하다 찾은 습관들입니다.

만약 우울감이 길어지고 무기력한 시간이 몇 달씩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아플 때 정신과를 찾는 걸 어려워합니다.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도 신경 쓰이고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우울증 치료율은 다른 선진국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매우 낮습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선진국 중 하나인 덴마크는 국민 7명 가운데 1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습니다. 덴마크가 삶의 조건이 열악한 나라여서가 아니에요. 국민 행복지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산업화하고 핵가족화된 선진국은 저개발국가보다 우울증 유병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적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플 때 전문기관에서 치료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쉽게 병원을 방문하고요. 모든 질병은 조기에 치료할수록 빨리 호전됩니다. 이것이 바로 덴마크의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어요. 그러므로 내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위 눈치를 보지 말고 전문기관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울증의 깊은 수렁으로부터 나 자신을 살리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우울증으로 진단받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상담과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고요. 일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대한 정신건강 의학과 의사회에서 권유하는 조언이 있어요.

첫째. 부정적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지금까지 모든 일이 잘 안 되었고 앞으로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났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한다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은 실제 상황과는 다르며 우울증 치료와 함께 좋아집니다. 절대로 당신의 부정적인 생각에 따라서 성급히 판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둘째.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너무 큰 목표를 세우거나 실제 여건보다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큽니다. 소소한 목표를 통해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게 더 낫습니다.

셋째. 가능하면 여러 사람이 모이는 기회를 자주 가지세요. 단지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여럿이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운동, 영화나 전시회 감상, 종교 활동 등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해보세요. 단, 너무 무리하거나 억지로 할 필요는 없고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 중요한 결정은 당분간 다음으로 미루세요. 우울증에 걸리면 증상 때문에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직장 및 사업문제, 결혼, 교육 등 중요한 것을 잘못 결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다섯째. 치료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병도 그렇지만, 우울증 치료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꾸준히 치료를 받다 보면 어느새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2’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살자 수는 1만 2,000여 명 가까이 됩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3,000명대인 것과 비교하면 3배 가까운 엄청난 숫자인데요.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1993년만 해도 1만 3,429명이나 되었어요. 이걸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 겁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교통 관련 법규와 제도를 고치고 중간 분리대를 설치하고 과속 방지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교통사고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시행한 결과입니다.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에 담당실이 있고 교통안전공단에서 일하는 인력만 해도 1,762명이나 됩니다. 지방경찰청, 지자체에 담당과가 설치돼 민관이 협력해 노력합니다. 자살예방도 비슷한 처방을 할 수 있어요. 2011년 영국 정부는 ‘정신건강 없이 국민건강은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국가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영국은 2018년 국민의 외로움을 다루는 고독부를 신설한 것에 이어 자살예방 부장관직까지 만드는 등 전 국민의 정신건강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 행정력을 동원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전 세계가 인정한 명실상부한 선진국입니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핵가족화와 산업화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가 급증하는 시기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슬프게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이제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게다가 사회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면서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졌어요. 어려서부터 학업 경쟁에 시달렸고, 취업 스트레스 또한 심한데, 코로나 이후 자산의 격차가 늘어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지난 수년간 청년 우울증 진료 환자가 170% 이상 증가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정신건강의 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이제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이 겪는 위기를 각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국민의 신체 건강만큼 정신건강도 더불어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공동체의 책임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내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 백종우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왜 진료실을 나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을까요? 그가 우리에게 간곡하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요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어요.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악순환을 끊고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인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가슴에 품고 사는 글이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부어의 〈평온을 위한 기도〉지요. 만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포기해버리고, 바꿀 수 없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꿀 수 없는 일을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일에는 ‘전념’하는 것이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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