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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자연과의 조화, 담양 여행

by 김민식pd 2024. 5. 8.

(오늘의 담양 여행기는 많이 깁니다. 제게는 여행과 글쓰기가 공부의 방편인데요. 적고 되새기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그래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4월 30일 저녁 순창군립도서관에서 <말하기의 태도> 저자 합동강연회가 열렸습니다. 강연 초청 메일을 받고 교통편을 고민했어요. 서울에서 순창에 바로 가는 교통편은 마땅치가 않네요. 저녁 9시에 강연이 끝나는데 그날 돌아오기도 쉽지 않은 일정. 음, 기차에 렌터카를 결합해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와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침 10시, 수서역에 갔어요. 어, GTX 열차가 개통했네요?

3월 30일에 개통한 GTX 수서 - 성남 - 동탄 구간. 우리나라 교통은 정말 편해요. 지하철로 강원도 (춘천)까지 갈 수 있는 시대에요. 덕분에 저는 전국 방방곡곡을 편하게 다니고요. 홍보관을 둘러보다 TBM공법이란 설명을 봤어요.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은 소음, 진동 발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도심지 지하나 화약 발파 작업이 불가능한 지역, 즉 지반이 약한 하저, 해저 구간의 터널을 시공할 때 쓰이는 방법이라는데요. 대학 시절 배운 석탄채굴학이 잠시 떠올랐어요. 음... 우리가 편안하게 전국을 다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지하에서 터널을 뚫기 위해 일을 하시고 있구나... 새삼 감사한 마음...

수서에서 동탄까지 21분 밖에 안 걸린다니, 나중에 한번 타봐야겠네요. 

자, 이제 고속철도를 타고 광주송정역을 향해 달려갑니다.

기차 여행이 좋은 이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날은 <강신주의 장자 수업 2권>을 읽으며 내려갔어요. 이 책의 리뷰는 나중에 올릴게요.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예약해둔 쏘카를 타고 광주호 호수생태공원으로 갑니다. 

물가에 난 산책로를 걷는 걸 무척 좋아해요. 바닷가 (제주도 올레코스나 소무의도 누리길)도 좋고 강가 (한강 산책로)도 좋고 호숫가 (춘천 의암호 둘레길), 다 좋아요. 

걷기 좋은 길이 이제 전국 곳곳에 있어요.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제자 중에 광주가 고향인 친구가 있어요. 광주에 가면 광주천을 걷는 걸 좋아한다고 했더니, "교수님, 다음에는 광주호도 한번 가보세요. 거기도 산책하기 좋아요." 그런데 광주호는 외곽에 있어 차로 가는 게 편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렌터카를 빌린 김에 광주호로~

저는 평소 사람을 만나면 항상 물어봐요. "최근에 읽은 재미난 책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가본 좋은 산책로는 어디일까요? 최근에 해 본 일 중 재미난 건 무엇인가요?" 이게 저의 공부입니다. 덕분에 제 삶은 날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지지요. 

광주호 가는 길에 이정표를 보니 근처에 소쇄원이 있네요. 차로 7분 거리. 바로 달려갑니다. 소쇄원 입장료, 2000원.


담양 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스승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정원을 지었는데,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소쇄(瀟灑)’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조광조는 성리학적 도학 정치 이념을 구현하려 했으나 훈구 세력의 반발로 실패한 분이지요. 1519년 반정공신들의 사주를 받은 궁인들에 의해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자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역모로 몰렸다가 죽음을 맞은... 그걸 본 제자는 물러나 초야에 묻혀 여생을 삽니다.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며 살아요. 그들이 남긴 자취는 한국 가사문학관에 오롯이 남겨져 있습니다. 

소쇄원을 둘러보셨다면 근처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 방문도 권해드립니다. (무료입장)

1층 전시실에서 상영되는 <사유의 정원 소쇄원을 거닐다> 영상을 보니, 소쇄원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참 공들여 잘 만든 영상이네요. 보고 나니 알고 싶어지고, 알고 보면 더 잘 보입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고요. 

이제 일하러 갑니다. 순창 군립도서관에 도착.

정성껏 만들어주신 포스터를 보니 흐뭇합니다. 

강원국 작가님과 합동강연회라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덕분에 강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 매번 행복합니다. 

그날 강연에서 강원국 작가님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는데는 8단계가 있다고 하셨어요.
1단계, 공부입니다. 읽고 듣기를 통해 아는 바를 늘리는 것.
2단계, 생각하기. 배운 것에서 사색을 통해 내것을 만들어보는 일. 
3단계, 메모하기. 그렇게 떠오른 영감을 자유롭게 적어보기.
4단계, 아내에게 말해보기. 메모로 정리한 내용을 옆사람에게 말해보기. 상대가 '오, 그 좋은 아이디어네!'라고 긍정해주면, 다음 단계로... 
5단계, 글쓰기. 1~4단계를 거쳐 강작가님이 쓴 글이 10년간 2만개가 넘어요.
6단계, 강의. 강의를 다니며 그 말을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배움이 단단해지고 이는 다시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7단계, 기고. 원고 청탁이 오면 6단계까지 거쳐 단단해진 나의 앎을 글로 정리합니다. 
8단계, 책 집필. 그런 글들을 모아 흐름을 잡고 책으로 구성해 만듭니다.

저는 블로그 덕분에 3, 4, 5단계를 같이 해봅니다. 찾아주시는 독자분들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저도 공부를 하지요.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강의를 마치니 밤 9시가 넘었어요. 제가 하루 일과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루틴은 수면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대신, 점심 먹고 낮에는 30분 정도 낮잠을 자고요. 밤에는 10시 이전에 잠듭니다. 지역에서 저녁 늦게 일이 끝나면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잡니다. 저는 10시 이전에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거든요. 회사에서 핍박 받던 시절, 야간 근무 교대조로 발령이 나 밤을 새워 일을 해야 했어요. 그 시절에 결심했지요. 언젠가 퇴사하면, 잘 먹고 잘 자는 걸 하루의 목표로 삼아야겠다. 그 이상의 행복이 없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순창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담양 메타세쿼이아랜드에 갑니다. 

코로나 시절, 이곳에 있는 에코교육관에서 사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독서 예찬론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한번 가서 풍광이 좋다는 걸 눈여겨 본 곳은 꼭 다시 찾습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니까요.

메타길이라고 황토로 조성한 흙길이 있는데요. 셀카로는 표현하기 힘든 멋진 풍광. 그래서 지나가는 어르신께 부탁드렸더니... 이렇게 찍어주셨어요. 아이고. ^^

그래서 다른 분에게 다시 부탁해서 한 장 건졌어요. 이게 제가 인생을 사는 방식입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시도해봐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요. 대신 저도 다니면서 틈만 나면 다른 이들 사진을 찍어드리거든요. 서로 돕고 사는 게 인생이지요, 뭐. 

아침 9시 개장에 맞춰 죽녹원으로 갑니다. (입장료 3000원)

예전에 걸어서 왔을 때는 정문으로 들어왔는데요. 차로 오니까 주차장이 있는 후문으로 안내하는군요. 덕분에 후문에 있는 정자들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곳...

식영정을 재현해 둔 정자. 전날 가사문학관에서 본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에 나오는 곳이지요. 

'어떤 지나가는 손님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을 들어 보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이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만한 산중(성산)에 들어가서 아니 나오시는가.'

살다보면 세상살이에서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냥 자연을 벗삼아 잠시 외로움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소쇄원 광풍각도 여기 원형대로 재현해두었어요. 방이 참 작습니다. 옛날집은 저렇게 방이 작나?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살았던 경주집도 방이 작았고 부엌은 비좁고 천장이 낮았네요. 지금 우리의 삶은 선조들에 비해 엄청나게 물질적으로 풍요롭습니다. 이제 관건은 우리의 정신 세계입니다. 물질은 풍요로운데, 정신이 그걸 받쳐주지 못하면 괴리가 옵니다. 

얼마 전 교토를 여행하며 본 일본식 정원과 조선의 정자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일본 정원은 아기자기하게 자연을 담 안으로 가져와 인공적으로 꾸밉니다. 정자는 기둥 사이 벽을 없애 자연을 통째로 집안에 가져오는 열린 구조에요. 그러니 방이 작아도 답답하진 않았겠지요. 방은 잠만 자는 용도고요. 내 집 앞 산과 개울이 다 내 집 정원이에요.

저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내 집 평수를 넓히는 대신, 온 세상이 내 집 마당인양 활보하며 살고 싶습니다.

죽녹원을 나와 맞은 편에 있는 담양관방제림을 걷고

담양국수거리에 갑니다. 죽녹원 - 관방제림 - 국수거리가 다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있어요.

멸치 국수 한 그릇 먹습니다. 5000원

관방제림 옆 조각공원을 걷다 창고형 카페가 있어 들렀습니다.

이번 강연 여행 마지막 일정, '담빛예술창고'.

담양군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정말 멋진 공간입니다. 

대잎차 한 잔 마십니다. 5500원. 대나무의 고장, 담양이니까요. ^^
언제 어디서나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하고 싶어요. 

오전 11시, 이 멋진 공간에 나혼자라니... 담양 여행 오시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5월의 강연 일정을 소개합니다.

5월 10일에는 순천 생태 인문도서관에서 강연하고요.

5월 23일 목요일 오후 2시에는 광명시 평생학습원 강당에서 강의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나흥식 교수님과 함께 건강하게 나이 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소쇄원의 한옥 마루에 앉아 선비의 삶을 생각해봤어요. 

“행복이란 한 사람이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행복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많은 이들이 세상에서 이름을 얻고, 돈을 벌고, 권력을 얻는 걸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에요. 행복은 자신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도서관에서 책읽기를 즐겼고, 힘든 시절 도서관에서 글을 쓰다, 이제는 전국의 도서관으로 강연을 다닙니다. 공부와 일과 놀이가 어우러지는 삶. 이것보다 더 바라면 욕심이지요. 도서관이야말로 제게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오늘도 모쪼록 여러분의 본성과 조화로운 하루를 보내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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