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대를 졸업하고, 영업사원, 통역사, 예능 피디, 드라마 피디, 작가, 교수 등의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경험했기에 중고등학교 진로 특강에 자주 가는데요. 요즘 저는 학부모 강연도 자주 합니다. 아이들의 진로 지도를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미국에서는 벌써 이런 전망이 나옵니다. “대다수의 미래 일자리는 대학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학사학위 소지자의 3분의 1이 불완전 고용 상태다.” 앞으로 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노동시장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의 노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일자리의 미래 : 왜 중산층의 직업이 사라지는가> (엘렌 러펠 셸 지음 / 김후 번역/ 예문아카이브)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경제 성장기, 인구 팽창기를 살아왔어요. 어떤 분야에서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직업의 사다리를 올라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던 시절이었지요. 인구와 경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지속적으로 성장한 덕분에 아이들은 훗날 부모 세대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기 내내 이런 기대는 맞아떨어졌어요.
21세기에 들어서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산업사회 이후의 ‘디지털 경제’는 소수의 고소득 일자리와 다수의 저임금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어려서 열심히 공부하고 나이 들어 열심히 일한다면 당신이 원하거나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대전제는 이제 깨졌습니다.
인공지능(AI)과 관련한 사실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기계가 하기에는 어려운 작업이 있는 반면, 인간에게는 어렵지만 기계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손톱이나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일이나 식당 테이블에 물 잔을 놓는 일은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기계로서는 난이도가 높은 작업에 속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어 번역, 기업 회계, 법률 분석처럼 높은 수준의 논리 추론이 요구되는 일은 인간에게는 어렵지만 기계 입장에서는 쉬운 작업입니다. 이런 이유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저임금 일자리보다는 나름의 기술 역량을 요구하는 중간 수준 임금의 일자리들이 크게 줄어들고요. 이는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디지털 시대의 자본주의가 고용 기회를 양극화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상층부에는 소수의 일자리, 하층부에는 상당수의 일자리를 추가하고 있는 반면, 그동안 허리를 견고하게 유지해왔던 중산층의 일자리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일자리는 보수가 낮은 간호조무사, 노인요양사, 간병인, 보육 도우미, 잡역부 등입니다. 일자리의 가장 활발한 증가는 최상층 직업에서 일어나지 않고 급여 수준이 가장 낮은 3분의 1구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6년 미국 정치인들은 금융위기 때 치솟았던 실업률이 다시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고 자축했는데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즐거워하지 않았어요. 늘어난 일자리의 58퍼센트 이상이 시급 7달러에서 13달러 구간에서 이뤄진 반면, 중간 소득군에 해당하는 시급 13달러에서 21달러 사이의 일자리는 60퍼센트가 사라졌거든요. 마치 파도가 해안을 덮쳐 수백만 개의 나쁜 일자리를 쏟아놓고는 수백만 개의 좋은 일자리를 끌어내 바다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패스트푸드 식당 체인들은 버거를 만들 때 자동으로 패티를 뒤집는 기계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도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패티를 뒤집는 일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며, 강력한 노조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이상 이런 일에서 고임금을 받아야 일하겠다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초기 비용을 감수하고 기계를 들여놓을 필요성을 못 느꼈습니다.
하지만 심장 수술을 한다든지, 변호사로서 이혼소송을 담당한다든지, 금융 전문가로서 재정적인 충고를 한다든지, 건축을 설계한다든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달라요. 이런 일자리들의 경우 그들의 높은 임금을 상쇄시킬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비용은 금세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임금이 낮으면서 반복적으로 단순한 작업을 하는 일자리들만이 자동화에 취약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모두 집어삼킬 겁니다.
예전에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할수록 소득이 올라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어요. 이제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최소한 하나의 대학 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노동자와 고등학교만을 졸업한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2000년 이래로 점점 좁혀지다가 이제는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정체한 상태입니다. 대학 졸업자 중에서 하위 25퍼센트의 평균소득은 고등학교 졸업자들의 평균소득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 중퇴자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자들보다 적은 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대학 진학률 세계 1위 한국은 전 세계에서 대학 졸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실업인구 가운데 50퍼센트 이상이 대학 학위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교육 프리미엄’이 사라졌어요. 한국 대학 졸업자들의 평균 평생 소득은 최근 들어 고등학교 졸업자의 소득 수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의 대략 35퍼센트가 학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데요.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 내 일자리 중에서 학사학위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20퍼센트가 채 되지 않습니다. 노동통계국은 2026년 최소한 64퍼센트의 일자리는 고등학교 졸업장 이상의 다른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비해 25퍼센트의 일자리에서만 4년 이상의 대학 학위가 필요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한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 어쩌면 우리의 미래 세대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교육은 물론 중요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최고의 자원을 준비해주는 일이지요. 젊은이들을 위해 활기, 창의성, 겸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에 대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할수록 소득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한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기대와 너무나 많은 부채를 안겨주기 때문이지요.
교육과 전문성은 중요하지만, 지식과 기술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을 기계보다 한 걸음 앞서도록 교육하는 일은 헛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리는 일로부터 진정한 가치를 도출해내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일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보다 태도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옵니다.
미국의 한 교수가 병원 청소부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어요. 모든 청소부들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별 차이 없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일에 대해 느끼는 건 달랐습니다. 그들 중 절반 정도는 그 일을 싫어하고 자신들의 일을 비숙련 노동으로 묘사했습니다. 상사들과의 갈등, 피곤한 근무 시간, 갖가지 많은 위험성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절반은 반대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어요. 그들은 일을 즐겼으며 그 일을 고도의 숙련 노동으로 묘사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그룹에서 드러난 태도의 차이가 너무나 극명했기 때문에 이들이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연구진은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아냈어요.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영진이 요구하는 일 그대로만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병원을 깨끗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눈과 귀를 자신들에게만 돌렸어요. 두 번째 그룹은 그들의 일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병원을 깨끗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며 침대 옆에 서성거리면서 환자들을 위로하고 심리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들은 병실을 청소할 때에도 침대 심장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간호사들에게 알렸습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나이든 환자들을 위로했어요. 그들은 자신들 역시 치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살피고 있는 환자들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어요. 병원은 이런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두 번째 그룹의 청소부들은 크게 야단을 맞았고 청소 일이나 잘하라는 주의와 비아냥거림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후자야말로 자신의 일자리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좋은 일자리는 점점 더 희귀해집니다. 그런데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하며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가 의미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해서는 여러 이유로 힘들고 고달픕니다. 그 고정관념을 버려야 해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일을 대하는 좋은 태도와 나쁜 태도가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보람을 찾고 사회적 의미를 찾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일자리의 미래, 저는 일의 의미는 누군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터득하고 느끼는 것이라 믿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간의 평가와는 관계없이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사람인가, 그걸 찾아보는 게 평생의 공부라 생각합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살면서 일에서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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