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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까

by 김민식pd 2023. 12. 22.

오래된 물건일수록 표면에 긁힌 자국이나 부딪힌 흔적이 많이 남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래 살수록 우리는 마음에 상처가 늘어납니다. 다만 평소에는 그 상처를 숨기며 살지요.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있어요. 그 상처로 인해 우리 삶에 우울과 불안, 외로움, 분노, 공허, 무력감 등이 찾아올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그 답을 찾는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 테라코타)

정신분석가 이승욱 선생님이 2011년에 쓴 책인데요. 오랜 시간, 마음을 치유하려는 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우리는 마음을 돌봐주실 분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정신분석이란 모르고 있던 상처를 들춰내는 일이라 무척 고통스러운 작업이거든요. 이 책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섯 사람이 저자를 만나 긴 시간 정신분석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 냅니다.

요즘 우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울로 힘들어하는 건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분노로 힘들었다는 뜻이에요. 자기 인생을 힘들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제대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다들 화가 나도 참고 살지요. 그렇게 참은 화는 결국 자신으로 돌아오고요.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 우울이 됩니다. 우울한 사람은 사실 분노하고 있는 거예요. 왜 누구에게 분노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납득하지 못한다면 우울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생긴 분노가 개인의 우울로 이어지고, 엉뚱한 곳에서 화풀이로 터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 중 하나는 단정적인 말투입니다. 자녀나 배우자나 친구들을 대하는 자신의 말투를 들여다보며, 상대방에게 얼마나 여지를 주고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여지를 주지 않는 단정적인 말투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상대도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자기 기분대로 상대의 행동을 판단한다면, 경계선 성격 성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팽창시켜 상대의 감정 턱밑에까지 들이대는 행위입니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배우자들이, 또는 친하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관계는 대체로 이럴 때 불화하고 고통을 겪습니다. 

말할 때나, 감정교류를 할 때 우리는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내게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그의 감정이 자유롭게 전해질 수 있도록 채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가 내 기분대로 해주지 않아도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내 뜻대로 해 주지 않을 때, 사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실망감 때문에 좌절합니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 그 사람을 증오하는 거지요. 이런 심리적 기제를 잘 모르면 내가 왜 화가 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고로 한쪽 손을 잃은 중년 남성이 있어요. 한쪽 손을 잃고 나서 몇 차례나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날마다 술을 마셨고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잘려 나간 한쪽 손을 보며 삶을 증오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 중 잃어버린 그 하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죽는 사람, 투자한 돈을 날렸다고 죽는 사람, 세무조사 들어온다고 죽는 사람, 일자리를 잃었다고 죽는 사람,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그것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했기에 삶의 의미도 함께 상실하는 거지요. 기능공으로 삶을 꾸려 가던 남자에게 손은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했겠지요.

그런데 죽지 못해 목숨을 이어 가던 어느 날, 술병을 따고 있는 자신의 남은 한 손이 눈에 들어왔어요. ‘만약 이 손마저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남은 한쪽 손 역시 목숨처럼 소중한 자신의 일부라는 깨달음이 찾아오고요. 발 한쪽, 눈 한쪽,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자신의 생명이고, 잃어버린 손 못지않게 소중한 것들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 있어요. 이제 신체를 강하게 단련하기 시작합니다. 맨손으로 과일을 깨뜨리고 못을 박을 수 있을 만큼 한 손의 힘을 기릅니다. 그 결과 한 손만으로도 두 손이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낼 수 있게 되었고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이제 죽을 때까지 자기 몸을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지요. 신체 기관 하나하나를 자기 목숨처럼 건강하게 지키며 살겠다고요. 

저는 진로 특강을 많이 다닙니다. 진로를 탐색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원하는 직업을 찾는 일인데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자신의 근원적인 결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풍요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핍을 채우는 방향을 택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 결핍을 만회하기에 가장 부합하는 직종이 있다면 그게 가장 적절한 진로입니다. 삶은 만회하고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거든요. 진로를 반드시 일이나 직업에 연관시켜 생각하면 장래를 너무 한정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적절한 진로탐색입니다. 

자녀가 자신의 진로를 찾아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요. 자식이 부모를 떠나 독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자기만의 삶을 살려고 하면 “넌 아직 못한다, 너는 아직 부족하다, 너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 너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 온갖 핑계를 대며 성인 자녀를 여전히 어린 자녀로 ‘발달 지연’시켜 놓습니다. 자녀를 독립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식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살면서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평생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상처를 어떻게 잘 보듬고 살고 떠나보내느냐가 중요하지요. 그걸 해나가는 게 한 사람의 독립된 성인의 몫입니다.

인간에게는 완전한 수용과 전적인 인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인정을 갈구하는 존재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인정이고요. 성인이 되면 한 여자로서, 한 남자로서 인정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육체적 매력을 포함한, 한 여성으로서 인정받는 경험, 그건 연애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사랑받음으로써 자기 안의 여성과 남성을 확인하고, 인정받음으로써 그가 날 사랑한다고 확신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연애는 아직 덜 자란 소녀와 소년을 여성과 남성으로 성장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외로운 것이 아니라 심심한 것입니다. 그 심심함이 반복되면 불만이 쌓입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녀에게 놀아 달라고 요구하지요. 여의치 않으면 친구나 이웃,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 심심함을 달랩니다. 그 순간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요. 하지만 깊은 외로움은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이란, 내가 말할 대상이 없는 데서 비롯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도 말 걸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됩니다. 말 걸어지는 대상이라는 것은, 존재감의 확인이거든요. 우리에게는 말 걸어주기를 진정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대체로 부모님들이지요. 그분들의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수용적이어야 합니다. 어루만지는 말이어야 해요. 그것이 최선입니다.

많은 부모가 따듯하지도 부드럽지도 수용적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말은 걸어줍니다. 이것은 차선입니다. 말을 걸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일부만이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어중간한 외로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드러운 말과 어루만지는 대화와 수용되는 느낌을 원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주어야 해요. 그래야 받을 수도 있거든요. 

마음이 슬프고 우울하고 아프다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고통의 근원을 찾아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던 여섯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슴 깊고 오래된 상처를 떠나보내고 아프지 않은 오늘을, 흔들리지 않을 내일을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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