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독서 습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 읽기입니다. 예전에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라는 책을 읽고 그 저자인 정희원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 여겨 그 분의 첫 책까지 찾아 읽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나이듦> (정희원 지음 / 두리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는 정희원 선생님은 책에서 초고령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 노화와 노쇠,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노화와 노쇠의 정의부터, 노화가 일어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 그리고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노화를 늦추는 방법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실생활에서 노화를 늦추는 방법으로 저자는 뭐든 과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넘치는 것은 줄이고, 부족한 것은 더하는 것이 좋고요. 득이 되지 않는 단순당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는 과잉인 경우가 많고, 양질의 수면이나 휴식, 근육과 뇌를 모두 쓰는 운동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몸과 마음 전반에서 이런 높은 엔트로피 상태는 악순환을 부르게 되고 결국 생물학적으로는 가속 노화를 불러옵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고 거꾸로 돌려 풀어내야 할까? 그 답이 책 속에 있습니다.
노쇠가 생겨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활력이 떨어져서 운동량이 줄면 만성 질병 관리 상태도 나빠지고, 자연스레 식욕도 떨어져 먹는 양도 줄고, 결과적으로 근육량이 줄게 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지러움을 느끼고, 머리에 안개 낀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러다 보니 움직이다 넘어질까 두려움이 들면서 또 활동량이 줄어드는데, 이걸 노쇠의 악순환이라 합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면 2,3년 사이에 근육이 다 빠져버리고 종국에는 스스로 옷을 입고, 씻고, 먹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기능마저 잃어버리고요. 결국 24시간 돌봄이 필요하게 되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그걸 막으려면 젊어서부터 잘 먹고 잘 움직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나이듦을 위해 저자는 우선 3차원 절식을 권합니다.
첫째, 단순당과 정제 곡물 줄이기.
문제는 일상생활을 하며 이 두 가지를 줄이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겁니다. 온갖 음식들에 숨어있거든요. 일단 청량음료나 주스는 없는 음식이라 여기라고요. 단순당은 노화를 가속시킵니다. 혈당을 올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키고, 염증을 올리고, 배가 나오게 하고, 심지어 도파민 경로에도 영향을 줍니다. 식욕을 증진시켜 음식을 많이 먹게 만들거든요. 국수, 빵, 흰밥도 줄이는 편이 좋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요즘 식사할 때 밥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였습니다.
둘째. 시간제한 다이어트.
12시간 동안만 먹기, 8시간만 먹기, 같은 간헐적 단식을 제안하십니다. 저는 살이 너무 빠져서 간헐적 단식은 이제 안하는데요. 그럼에도 저녁 8시 이후 야식을 먹는 것만큼은 철저하게 피하고 있어요. 야식만 줄여도 시간제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셈 아닐까요?
셋째, 전체적인 영양과 열량을 조망하기.
첫째와 둘째를 실천하면 식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집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몇 그램씩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 채소, 견과류, 올리브오일, 두부, 달걀, 달지 않은 과일을 더 챙겨 먹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습관을 만들면, 돈 내고 사 먹지 않아도 되는 음식들을 그동안 굉장히 많이 먹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 있어 중요한 건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어요. 먹는 것도, 번뇌도, 스트레스도, 영양제도,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내 몸의 노화 속도에는 이득이 됩니다. 줄여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입니다. 대신 늘려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잠, 운동, 섬유질 채소, 머리 비우는 시간 등이요.
노년 내과를 찾는 환자분에게 저자가 “운동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대답은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걷거나 실내 자전거를 탄다고 답하신답니다. 물론 안 걷는 것보다는 낫지요. 하지만 노쇠의 진행을 거꾸로 뒤집기 위해서는 걷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추가로 근력 운동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평생 하는 근력 운동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서는 정선근의 <백년운동>이나 김헌경의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 등을 읽으라고 권해주시는데요. 둘 다 제가 <꼬꼬독>에서 소개한 책이라 반가웠습니다. 저도 그 책들을 읽고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많은 이들이 다가올 고령화의 시대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가지고 삽니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면서,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도 하지요. “100세 시대에 60세에 은퇴하면 40년 동안 아프고 가난한 노후를 보내야 합니다.”라는 말은 사실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노인 세대와 베이비부머와 86세대가 65세를 넘기는 시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빈곤의 정의는 중위 소득 절반 미만의 소득을 가진 상황을 뜻하는데요, 자산과 현금 흐름을 가장 폭넓게 확보한 지금의 중년이 65세를 넘기는 시점에는 노인 빈곤율이 지금보다는 떨어지게 됩니다.
저자는 1950년에서 196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긴 건강 수명을 기록하는 인구 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대는 어린 시절 당분과 가공식품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요. 주로 밖에서 활동적으로 놀았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생부터는 어려서부터 활동 저하와 과잉의 열량에 시달리며 살았어요.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자랐고요. 당분 폭탄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3시에 힘이 빠지면 당분이 들어있는 간식을 하고요. 편도 한 시간 반 걸리는 지옥 같은 퇴근길에 시달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누워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잡니다. 이런 생활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가속 노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자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앞으로 계속 늘어난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하네요.
전체 인구로 보아 중위 연령 도달 시점이 1976년에는 20세, 1997년에는 30세, 2014년에는 40세였는데요. 2031년에는 50세가 된답니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중위 연령이 넘어야 사회에서 말을 해도 되는 사람이 됩니다. 그전까지는 주로 듣고 받아 적기를 위주로 해야 하지요. 앞으로는 더 오랜 시간 일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과거에 20년 공부하고 40년 일했다면, 이제는 30년 공부하고 50년 일하면 됩니다.
사회적 규정이 인구 구조 변화에 느리게 뒤따르고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스스로가 노쇠하지 않고 독립된 삶을 유지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일과 취미를 계속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라이프사이클 자체가 길어졌기에, 개인의 역량 또한 다양하게 포트폴리오화 해야 합니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공부와 일과 여가 활동을 적절히 배분해야 합니다.
의사가 쓴 건강서적이지만,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재테크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일단 저자는 돈을 열심히 모으는 것이 성공적인 노화 지연을 위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평생 쓸 수 있는 자금이 정해져 있다’라는 생각으로 과시적 소비,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자산군을 잘 나누어 장기적으로 투자하라고 권합니다. 욜로와 파이어, 그리고 고성장 기술주가 유행하지만, 이런 버블 시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여러 면에서 균형 잡힌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결국 나이가 듭니다. 장수라는 것은 평생 건강하게 잘 살아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안티에이징이라는 단어는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연령주의적 사고가 반영된 단어입니다. 노화라는 현상은 ‘안티’의 대상, 약으로 없앨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잘 매만지고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이 답답해서 욜로를 할 필요도 없고, 희망이 없다고 N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천천히 스스로를 가꾸다 보면 덜 노쇠한 노년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65세가 된다고 사회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킬 필요도 없고요. 질병과 노쇠, 장애를 갖고도 더 나은 삶의 질을 꿈꾸며 살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삶, 균형 잡힌 삶 속에 지속가능한 나이듦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배울 점이 많은 저자를 만나면 이렇게 책을 이어서 읽습니다. 그럼 또 새롭게 깨치는 점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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