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종일 성우리조트에서 혼자 보드를 탔습니다. 파업하느라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보드 타면서 한 방에 날렸어요.

고향이 울산인데, 울산은 남쪽 바닷가 도시라 거리에 눈이 쌓이는 건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중학교 때는 서울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친구들이랑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달려갔어요. 옹기종기 앉아있다가 서울에서 오는 트럭이 오면, 그 트럭 지붕에 가득 쌓인 눈을 보며, 다들 일어나 환호를 질렀어요. "와! 눈이다! 눈이다!" 그런 남쪽 바닷가 촌놈이 강원도 설산의 스키장을 처음 갔을 때 얼마나 신이 났던지!


생각해보니, 저는 인생을 사는 비법을 스키 타며, 보드 타며 배웠습니다.

스키를 잘 타려면, 턴을 잘 해야 합니다. 턴을 하려면, 업다운을 정확히 해야합니다. 이때 업 동작은 일어나며 산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최상급 코스로 갈수록, 경사가 심해집니다. 경사가 심할수록 무서워서 엉거주춤 몸을 사리면 턴도 안되고, 스키나 보드에 체중이 실리지 않아 엣지가 먹지 않습니다. 몸을 사릴수록, 오히려 위험하고 사고 날 확률이 커집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몸을 던져야 쉬워집니다. 연애든, 취직이든, 영업이든,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되는 일은 없습니다.

보드나 스키를 배우는 것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꾸 넘어져봐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잡고 그냥 내려가면, 오히려 큰 사고 납니다. 속도를 제어할 수 없을 때, 균형을 잃었을 때는 바로 넘어져야 안전합니다. 스키 타다 넘어져도 눈이 푹신해서 다치지 않습니다. 그걸 몸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넘어져도 죽지 않는구나.' 

초보 시절, 넘어지면 쪽팔립니다. 다들 '쪽팔려서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진짜로 쪽팔려서 죽은 사람은 못 봤습니다. 넘어지면 어때요, 초보 시절엔 누구나 다 그러는데. 

보드를 배울 때,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겠어!'라고 결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넘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마음 편하고 즐겁게 배우더라구요. 연애도 마찬가지에요. '차이지 않는 법을 배우겠어!'라고 하지 말고, '차여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겠어!'라고 해야합니다.  

슬로프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니 겁이 납니다. 그럴때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몸을 아래로 던집니다. '경사가 급할수록 몸을 던지는 것이 살 길이다. 넘어진다고 죽지는 않아!'

MBC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저희 노조 집행부에 대한 회사의 압박이 조금씩 강해집니다. 소심한 딴따라 겁먹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보드를 즐겁게 탔더니, 해법이 떠올랐습니다.

'위험할수록 몸을 던져야 산다.'
'넘어진다고 죽지는 않아!'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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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ystal 2012.02.12 0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들의최후의몸무림이라생각하고힘내세요!!!!!!!

  2. 암요! 2012.02.12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보가 넘어지는 게 쪽팔린 게 아니라 5년, 10년 탔는데 넘어지는 게 쪽팔린 거죠. 그 5년, 10년을 제대로 많이 넘어졌어야 하는데 못나게 어디 가서 자신의 경력을 줄여 마땅한 게 쪽팔린 거 아니겠어요? 모르긴 해도 김재철 사장님 나중에 어디 가서 MBC사장이었다, 혹은 나 김재철이다 말하는 게 쪽팔린 순간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힘 내세요! 세상에 영원한 고통도 영원한 기쁨도 없다는 거 알려주신 분이 피디님이잖아요! 단지 다 나같지는 않다는 거, 그거에 상처 받지 마시길 바래 봅니다~ 결과가 어떻든 MBC노조가 어떤 과정을 밟았나 시청자로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홧팅!

    • 김민식pd 2012.02.13 0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맞아요, 제일 큰 상처는 사람에게 받죠. 역으로 나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