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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진정한 해방은 무엇일까

by 김민식pd 2023. 5. 26.

저는 지방에 강의하러 출장 갈 때 재미난 소설을 읽으면서 갑니다. 그러면 3시간씩 걸리는 기차 여행이 지루하지 않아요. 부산 가는 길에 어떤 소설책을 읽었는데요. 아,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자꾸 폭소를 터뜨렸어요. 정숙한 열차 분위기를 방해하는 것 같아 다른 책을 읽었고요. 부산 도착해서 전철 타고 다시 읽었는데, 또 웃겨서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렸더니, 옆자리 앉아계시던 분이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옮기시더라고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작가님의 입담이 너무 재미나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읽은 책을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창비)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정지아 작가님이 무려 3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장례식장 풍경을 보여주는데요. 해방 이후 70년 한국 현대사의 기쁨과 슬픔이 오롯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어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고요.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합니다. 아버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습니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살다 노동절 새벽에 하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아버지. 죽음도 약간 허무 개그 같은데요, 3일 동안 찾아오는 문상객들이 들려주는 일화는 완전 시트콤입니다.

소설 속에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온 친구가 나오는데요. 보수적인 학교 선생이에요. 빨치산에다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와는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에요. 아버지는 박선생이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빼앗아 보고는 박선생에게 휙 집어던지며 그럽니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
두 노인네가 매일 정치 이야기로 투닥거리며 늘그막을 보내는 걸 보다 짜증이 난 딸이 그래요.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아버지의 말씀,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제가 탁구를 치는데요. 저랑 같은 탁구장에 다니는 분 중에는 저와 정치적으로 성향이 다른 분도 있어요. 저는 그분과 매주 같이 시합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놉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우리가 무슨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 성향이 다른 게 무슨 상관입니까? 사람만 좋으면 되지? 만나서 재미지게 놀면 되지? 나이 들어 즐거운 삶을 사는 첫 번째 비결은요, 재미나게 노는 게 우선이지, 사람을 정치로 편가르지 않는다, 아닐까요?

아버지는 젊어서는 혁명가였지만, 나이 들어서는 동네 홍반장 같은 사람이 됩니다. 누구든 힘든 일이 있으면 달려가 팔을 걷어부치고 돕습니다. 언젠가 모내기 철에 동네 사람끼리 품팔이를 하는데 맨 마지막으로 주인공네 집 다락논에 모를 심기로 한 날입니다. 새벽 한시쯤 전화벨이 끈질기게 울려요. 남의 집 모를 심고 돌아와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졌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말끔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습니다. 같은 동네 사는 한씨인데요. 사위가 전날 회식을 하고 음주운전을 하다 트럭에 깔려 즉사했다는 소식이었어요. 

대충 옷만 챙겨 입고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붙잡습니다. 
“아이고, 이리 가불먼 우리 모내기는 워쩐다요?”
“당신은 사램이 죽었다는디 시방 고런 소리가 나온가!”
“아이고, 주인이 지키고 서 있어도 넘의 일은 대충대충 허는 것이 사램 심보요. 나는 집에서 새참 준비해야 허는디 누가 일꾼들을 본단 말이요?”
어머니는 서운해요. 당신을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 돕느라 달려나가는 남편이. 그때 아버지가 그럽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게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고요.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아요.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립니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지만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요.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 한들 상처받지 않았답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나이 들어 즐겁게 사는 두 번째 비결, 내가 도와준 사람이 도와준 사실을 잊어도 서운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닐까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의외의 손님이 나타납니다. 유달리 피부가 가무잡잡한 열여덟 살 앳된 여자아이예요.
“우리 아버지를 알아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여요.
“어떻게 아는데요?”
아이가 머뭇거리다 하는 말.
“……담배 친군디요.”
여든 넘은 아버지의 담배 친구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교복 입고 담배 피우다가 할배헌테 들케가꼬 꿀밤을 맞았그마요. 양심 좀 챙기라대요. 최소한 교복은 벗고 피우는 것이 양심이라고……”
“그래서? 담부터는 양심 챙겼어요?”
“아니요. 학교를 때려쳤는디요?”
학교를 때려친 아이와 여든의 할아버지는 같이 담배를 피우며 친구가 되었어요.
“할배가 그랬어라. 엄마 나라는 전세계에서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라고. 긍게 자랑스러워해야 헌다고. 애들은 천날만날 놀리기만 했는디……”

엄마가 베트남 출신인 어린아이를 데리고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게 빨치산 출신 아버지답네요.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담배를 피우고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이가 겪어왔을 세월을 아버지는 알았을 테고 아버지 방식대로 위로했을 것이라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버지식의 위로였답니다. 그 위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잘 먹혔다고요.

‘대학 시절, 한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어릴 때 심한 화상을 입어 오른쪽 검지 한마디가 뭉그러졌다. 군대는 언제 가냐는 아버지 질문에 친구가 화상 입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좋겄네. 군대는 안 가겄그마. 새끼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으먼 워쩔 뻔봤능가? 그랬으먼 군대도 가야 했을 판인디……”
친구를 볼 때마다 손가락 때문에 조심스러웠던 나는 아버지 말에 밥을 먹다 말고 사레가 들렸다. 친구는 느닷없이 박장대소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그랬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한 게 우리 아버지가 처음이라고. 어쩐지 아버지 말에 지금까지의 모든 설움이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고.’ 

나이 들어 즐겁게 사는 세 번째 비결, 누구를 만나든 나이를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대하는 것 아닐까요?

일제 치하에 태어나 식민지 시절을 보내고, 전쟁통에 가난을 겪고 살아온 분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해방공간에서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갈립니다. 친일파냐 아니냐, 좌파냐 우파냐, 총구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살아야 했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3.8선이 그어지고, 사상의 경계가 나누어지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는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간을 살고 있는지요. 필요 이상으로 나와 타인 사이를 구분 짓는 선을 그으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진정한 해방은 나라의 해방이 아니라, 개인의 해방입니다. 세대나 이념을 초월해 박애주의자로 살다간 어른의 삶을 통해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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