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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우리는 열대우림에서 사는 선인장이다

by 김민식pd 2023. 4. 28.

제가 새로 낸 책 <외로움 수업>을 소개하기 위해 다양한 유튜브 채널에 나가고 있어요. 영상에서 오랜만에 제 모습을 본 지인들이 연락을 합니다. “살을 어떻게 그렇게 뺐어?” 조회수 200만을 넘긴 <꼬꼬독 노화의 종말> 영상을 추천해주지요. 코로나 터지고 73킬로그램까지 체중이 늘었던 제가 간헐적 단식 덕분에 3년째 체중 63킬로그램 정도의 유지어터로 살고 있어요. 나중에 친구를 만났더니 그러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고 시도해봤는데, 야식을 끊는 게 너무 힘들다고요. 제가 그랬어요. “응, 우리가 열대우림에서 살고 있는 선인장이라서 그래.”

선인장은 비가 잘 오지 않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도록 진화했습니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굶주린 상태에서 빨리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는데요.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문명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싸고 간편하게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사막에서 물이 없어도 생존하게끔 진화한 선인장이 갑자기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열대우림에서 살게 된 거죠.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은 그 답을 책에서 찾아봅니다.

<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 흐름출판)

사람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위를 하면, 기쁨이라는 보상을 얻고요, 불리한 행위를 하면 고통이라는 벌을 받습니다. 이때 우리 몸에서 나오는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입니다. 도파민은 특정 행동이나 약물의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됩니다. 약물이 도파민을 함유하는 게 아니라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뜻이지요.

요즘은 사방에 도파민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집니다.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 하니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납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어요.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SNS 등등, 오늘날 쾌락이라는 보상을 주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습니다. 손쉬운 쾌락을 추구하다 우리는 어느새 무언가에 중독되는 도파민네이션에서 살고 있어요.

신경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쾌락과 고통은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고, 저울의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합니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끼지요.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가 있습니다. 저울은 수평 상태, 즉 평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하고요.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 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어떤 쾌락 자극에 비슷하게 반복해서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집니다. 반면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져요.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신경 적응neuroadaptation이라고 부르는데요. 쾌락을 느끼기 위해 중독 대상을 더 필요로 하거나 같은 자극에도 쾌락을 덜 경험하게 되는 것을 내성tolerance이라고 합니다. 중독이 심해지는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쾌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금단에 따른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피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희망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립니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지요. 이제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중독을 끊는 자기 구속의 3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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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물리적 구속.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여정에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는데요. 그중 첫 번째가 반은 여인, 반은 새인 세이렌들이었어요. 세이렌의 마법 노래는 뱃사람을 꾀어 인근 섬의 암벽에 부딪히게 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에게 그들의 두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범선의 돛대에 꽉 묶도록 했습니다. 자기 구속의 한 가지 형태는 말 그대로 물리적 장애물 만들기입니다. 주머니에 담배를 가지고 다니면서 담배를 끊기는 어렵지요. 나와 담배의 거리를 멀리하는 것, 물리적 거리 두기가 첫 번째 답이고요.

두 번째, 시간적 구속
시간제한과 결승선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한 번에 딱 끊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일정 기간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시간적 기회를 줄이고 사용에 한계를 두는 겁니다. 시험 기간에는 아이패드를 안 볼 거야. 주말 동안은 야식을 안 먹을 거야. 아이들과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을 거야, 이런 식으로 시간제한을 이용해 중독 대상과 거리 두기를 합니다. 

세 번째, 범주적 구속 
저자의 환자 중 스포츠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있어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도박으로 잃은 돈이 수억 원이 넘어요. 그 환자의 도박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스포츠 도박만 끊는 게 답이 아니에요. TV로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스포츠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신문에서 스포츠 뉴스 보는 것까지 그만두어야 합니다. 스포츠 도박이라는 자극과 관련이 있는 모든 행위에 범주적 구속을 가한 끝에야 겨우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답니다.

범주적 구속은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을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를 금지하는 방식입니다. 야근할 때마다 야식이 당기는 사람이라면, 야근하는 습관을 줄여야 합니다. 만날 때마다 술을 권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평일 저녁 대신 주말 점심 산행 모임으로 바꿉니다. 알코올로 건강상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데도 "당장 죽는 거 아니니까 괜찮아."라며 강권하는 친구라면 그 친구와의 만남은 줄이는 게 좋습니다. 

간헐적 단식은, 물리적, 시간적, 범주적 구속, 이 세 가지 구속을 활용합니다. 제가 처음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을 때, 휴가 기간에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하며 시도했어요. 아마 회사에 다니며 저녁마다 회식이 있거나, 가족들과 함께 생활했다면, 간헐적 단식이 힘들었을 거예요. 팀원들 다 같이 회식 가는데 혼자 빠지기 쉽지 않고요. 집에서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나서 굶는 것도 힘들어요. 물리적으로 음식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입니다.

간헐적 단식은 시간적 구속이기도 합니다. 평생 굶겠다는 게 아니에요. 딱 열여섯 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할 거야. 이렇게 시간을 활용한 구속입니다. 이걸 해보면, 아무 때나 막 먹는 것보다, 공복을 유지한 후 먹는 한 끼 식사가 훨씬 더 맛있고 즐겁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먹다 보면 맵거나 달거나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는데요. 간헐적 단식을 마치고 먹는 한 끼는요, 당근 한쪽, 고구마 한쪽도 꿀맛입니다.

16시간 동안은 맹물만 마시며 공복을 유지한다, 라는 간헐적 단식의 조건은 강력한 범주적 구속입니다. 과일은 먹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하면, 과일이 없을 때 과일 주스를 찾고요, 과일 주스가 없으면 에이드로 대신하면 어때, 싶어 카페로 가고요. 자몽 에이드 딱 한 잔 마시려고 갔는데, 옆에 있는 케익이 자꾸 눈길을 끌지요. 아유, 한 이틀 간헐적 단식 했으면 이제 나 자신에게 상을 줘야지, 싶어 눈 딱 감고 주문합니다. 범주적 구속, 중독 대상에 대해 넓은 그물을 치고 멀리해야 합니다.

갈수록 삶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지요.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기분 좋은 도피라면 무엇에든 마음이 갑니다. 트렌디한 칵테일, 소셜 미디어의 반향실 효과, 리얼리티 쇼 몰아 보기, 밤에 인터넷으로 포르노 보기, 포테이토 칩과 패스트푸드, 몰입형 비디오 게임, 이 목록은 정말 끝이 없습니다. 중독성 있는 대상과 행동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을 주지만 길게 보면 삶의 문제를 키웁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대신 세상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더욱 몰입하면 어떨까요?

손쉬운 쾌락을 찾기보다, 당장은 조금 힘들지라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믿고 좀 더 버티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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